“지나간 그 여름 바닷가에서 꿈처럼 눈부신 그녈 만났지
믿을 수가 없어 아름다운 그녀 내겐 너무 행운이었어
별이 쏟아지던 하얀 모래위에 우린 너무 행복했었지” <여름 이야기>

피서지에서 만난 매력적인 그/그녀와의 뜨거운 만남. 세상 모든 남녀의 여름 바람 중 하나이다. 여름은 욕망을 부채질하고 이성을 마비시킨다. DJ. DOC의 노래는 그래서 좋다. 그들은 걱정일랑은 붙들어 매고 다 함께 놀아보자고 유혹한다. 먼 곳으로 가지 못하면 가까운 수영장도 좋다. 아리따운 그/그녀가 수영장에 있고 폼 나게 음료 한잔 손에 들며 흥겨운 음악에 몸을 맡길 수 있다면 그것으로 O.K.이다. 그래서 오늘과 내일 모 호텔의 수영장에서 열리는 그들의 콘서트는 <Poolside Party>이다. 흥청망청하며 무념무상으로 리듬에 몸을 맡겨 보잔다.

▲ DJ DOC의 콘서트 포스터

“오늘밤 Friday night it's the night come on and boogi night
let's do it let's do it let's do it do it do it
이리와 느껴봐 이 rhythm에 너를 맡겨봐” <Boogi Night>

<Boogi Night>과 더불어 DJ. DOC 5집의 대표적인 파티 송으로 <Run to you>를 꼽아본다. 나와 함께 몸을 튕겨 보자는 그들의 노랫말은 여름의 열기를 한껏 달아오르게 한다. 이즈음 되면 이미 몸은 홍건하게 땀으로 젖어있고 숨은 턱밑까지 차오를 것이다.

“마주선 다가선 너와의 뜨거운 시선 피할 수 없어 내 맘을 숨길수가 없어
느낄 수가 있어 니가 원하는 걸 이 시간을 기다려 왔어 이젠 널 갖겠어
Just two of us 우리 단 둘이서 하늘을 날았어 멈출 수가 없었어
이 시간을 꿈꿔왔어 난 정말 원했어 (Yeah Baby) I want you I need you run to you”

하지만 필자가 2009년 여름의 대표 가수로 DJ. DOC를 꼽는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다. 단순히 흥청망청, 무념무상의 ‘놀자’ 노래로만 여름 가수를 뽑았다면 꼭 DJ. DOC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엇비슷한 주제와 엇비슷한 리듬의 바캉스 노래는 부지기수다. 허나, DJ. DOC를 2009년의 오늘에 부르는 것은 그들이 소위 말해 ‘병신 같지만 멋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멋은 흥청망청 뿐만이 아니라 그들의 사회 비판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모두의 <여름 이야기>는 페이크였다. 지금부터가 바로 2009년 여름의 가수로 DOC를 제안하는 이유이다. 한국의 100대 명반에 뽑히기도 한 DJ. DOC의 5집 <THE LIFE... DOC BLUES 5%>는 9년의 시간이 지난 오늘의 여름에 꼭 들어야할 명반 중 하나이다.

▲ DJ DOC의 5집

“당신은 부자 그 덕에 땅도 사 돈 남아 돈다 집도 사 아줌마 옷도 사고 또 사도
절대로 드러나지 않는 돈의 밑바닥 얼마나 좋을까 누군 없는 것도 서러워서
허리띠 꽉꽉 졸라매고 살아가는 판에 누군 여기 펑펑 저기 펑펑 막 써대고 살아가니 얼마나
좋을까

흥청망청 아무 생각 없이 펑펑 돈 지랄한 인간들이 나라 망쳐 청춘 바쳐 몸 바쳐
열심히 일한 사람들만 피해봤어 버림받은 직장 소외된 가장 불변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
있는 놈은 항상 있지 없는 놈은 항상 없지” <부익부 빈익빈>

검찰총장으로 오는 13일 청문회를 앞두고 있는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는 강남 신사동의 82평형 30억짜리 아파트에 산다. 기업인 재력가 박 아무개씨가 15억5000만원을 저리로 빌려주어 샀다고 한다. 기업인 재력가와 검사의 관계가 수상쩍지만 당사자들은 오랜 우정이라 말한다. 천 후보자의 부인은 5800만원 짜리 제네시스를 빌려 지난 6월부터 월 170만원씩 내고 타고 다니는데, 그 전에는 이 돈을 다른 곳에서 내주지 않았는가란 의혹이 일고 있다. 이 다른 곳은 천 후보의 동생이 수 년 동안 사회이사로 재직한 곳이다. 그래서 2000년 대한민국의 여름은 있는 사람은 항상 있어 있는 사람에게 돈과 차를 나누어주는 것이 자연스러운 곳이다. 이들이 나라를 위해 온 몸을 바쳐 헌신하겠단다. 그 와중에 열심히 일한 쌍용의 노동자들과 용산의 철거민들은 거리 밖으로 내몰려 사실상의 사망선고를 받았다. 더 이상 꽉꽉 졸라맬 허리도 없는 상태이다. 여기에 래퍼 하늘이의 분노에 찬 독설을 던진다.

“YO! 니가 원하는 건 남들보다 높은 위치 그 가식으로 차지한 자리
내 눈엔 보이지 그 자릴 차지하기 위해 너의 진실을 얼마나 버렸는지도
온몸을 던져 인기를 노려 무조건 웃겨 너보다 센 놈에겐 알아서 기어
아직도 꿈을 못 깨 너네 평생 헛쓰레기 인생 너네 삐리삐리 X삐리” <L.I.E.>

검찰과 더불어 경찰도 문제다. 대한민국에 집회의 자유가 사라진 지는 오래이다. 상식을 위해, 생존을 위해, 표현의 자유를 위해 광장에 모인 이들에게 가해지는 경찰의 폭력은 대한민국에 사실상의 계엄령을 선포하였다.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가 되기보다는 권력과 자본의 몽둥이가 되어버린 것 같다. 실제로 지난 7월 8일 용산 4구역 철거 현장에서는 기인한 모습이 연출되었다. 철거민이 용역반원에게 발길에 걷어차이고 머리채를 잡혀 질질 끌려 길거리에 내동댕이쳐지는 데에도 그 자리에 있던 경찰은 수수방관했다. 심지어 용역반원이 손에 둔기를 들고 곡괭이를 들어 위협을 가하는데도 그들은 침묵했다. 집회에 나선 이들에게 가했던 무차별적 폭력은 사라지고 자본의 폭력에는 순한 양이 된 경찰이 있었다.

▲ 용역반원이 강제철거에 항의하는 전철연 여성회원을 발로차고, 머리채를 잡고 끌고가고 있다. ⓒ 용산범대위

“새가 날아든다 짭새가 날아든다 문제야 문제 우리나라 경제 X같은 짭새와 꼰대가 문제

이번엔 짭새 얘기해볼게 짭새가 우리 민중의 지팡이 X까라 가라
난 알아 나라 우리나라 정말 좋은 나라 무시무시한 정말 살벌한 조폭 형님들과
짭새들과 형님 동생하며 뒤를 봐준다며 그런지도 꽤 오래됐다며

어디선가 울려 퍼지는 너네 짭새들의 X같은 총소리에 난 깜짝 화들짝 놀라 이게 뭔 소리야?
포졸이 또 사고치는 소리야. 빵빵 여기 빵 저기 빵 빵야 (오우) X라 무섭다
야 아.. (오우) 니네 이제 총까지 쏴?(오우~) 영화 X라 많이 봤나봐 어?
근데 사람 봐가며 쏴야지 아무나 쏘면 클 나 안 되지 인간 사냥을 하시나
아 니네 서바이벌 게임하냐? 어? 병아리 잡는데 토끼를 쓰지 니네 짭새 합리화 책임회피
그럼 또 부모 눈에 피눈물이, 반성이 필요한 우리 포졸이” <포졸이>

언론 역시 문제다. 7월 10일 안장식을 치룬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는 검찰이 흘린 확정되지 않은 주장을 사실처럼 받아써 확대 재생산한 언론의 책임이 있다. 검·언 블록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 뒤에 놓여 있음은 주지의 사실. 뿐만 아니라 많은 언론들은 알려야 할 사실은 숨기거나 낮게 다루고, 알리지 않아도 될 뉴스를 주요 뉴스로 둔갑시키거나 정권의 입맛에 맞추어 윤색하기 바쁘다. 혹 비판적인 언론이 있다 할지라도 이들을 순치하려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처벌도 언론의 제 역할 수행을 막는 장애물이다. 그 결과는 쓴 소리 못하는 언론, 사탕발림으로 단 소리만 써 대는 언론, 정권과 결탁해 국민의 여론을 호도하는 언론일 것이다 그들에게 날리는 DOC의 일침!

“아직 정신 못차렸니라는 엉터리 기사에 내 가슴은 완전히 무너져버렸지.
도대체 무슨 대책이 있었길래 나란 인간 무시하는 말을 써대. 그래 써라 X발아 날려대라
그 똑똑한 그 잘난 머리 펜 잘 굴려라. 나 이제 옛날처럼 홈런 맞은 투수처럼 멍하니 가만히
그저 보고 있진 않아. 너희에게 펜 종이가 있다면 내겐 내 한 맺힌 VOICE와 MIC가 있다” <L.I.E.>

“와와 와라가라 빼라 가사 바꿔라 이래라 저래라 지지지 지랄하지 마라 방송 청취 유치의
극치
그런 당치도 않은 X소리 집어 쳐라 도대체 누가 누굴 검열한단 말인가
아직도 니네 일제시대인줄 아시나 착각하지마 그러다 다치리라 Shut the fxxk up 닥치리라” <L.I.E.>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렀다면 당연히 반성과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허나, 그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그 누구도 반성하지 않는다. 물론 작년 여름 이명박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를 하였다. “저는 취임 두 달 만에 맞은 이번 일을 통해 얻은 교훈을 재임 기간 내내 되새기면서 국정에 임하겠습니다. 국민과 소통하면서, 국민과 함께 가겠습니다. 국민의 뜻을 받들도록 하겠습니다. 반대 의견에 귀를 기울이겠습니다....이제 새롭게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두려운 마음으로 겸손하게 다시 국민 여러분께 다가가겠습니다.” 하지만 그 후 올해 여름까지의 지난 1년은 이 말이 공염불이었을 확인하는 기간이었다. 그는 누구보다 권위적이었고 불통이었다. 현재까지 각계각층에서 봇물처럼 쏟아지는 시국 선언은 오늘의 정권이 반성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는 정권임을 분명히 하였다. 도대체 이 정권은 누구를 향하고 누구를 위하고 있는지 알쏭달쏭하기만 하다.

“나리 이제 그만하쇼 SHOW좀 이제 그만하쇼 개나리 이제 그만하쇼 SHOW좀 이제 그만하쇼
당신들의 SHOW 국민들이 원한 대답 교묘하게 피해가는 거죠 머릿속을 스친
내 눈 속에 지금 비친 미친 그 모든 건 지친 국민에게 끼친 잘못 감추려는 SHOW

알쏭달쏭 알쏭달쏭 알쏭달쏭 알쏭달쏭 알쏭달쏭 알쏭달쏭 알쏭달쏭 알쏭달쏭” <알쏭달쏭>

이렇듯, DJ. DOC의 5집 <THE LIFE... DOC BLUES 5%>는 비록 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오늘의 시간, 오늘의 여름과 공명한다. 물론 잘 알다시피 이와 같은 날선 음악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D.J. DOC는 같은 앨범의 다른 노래에서는 놀고, 먹고 마시며 춤추는 무아지경의 즐거움을 권한다. 그러나 날 선 사회 비판이 함께 5집을 채우며 ‘병신같지만 멋있는’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하였다. 그리하여 이 앨범은 지난 2008년 경향신문이 꼽은 대중음악 100대 명반이 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앨범의 완성도가 높았다. 당시 100대 명반을 선정한 김학선 씨는 이 앨범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무엇보다 이 앨범의 가치는 제대로 된 ‘거리의’ 음악을 들려줬다는 사실이다. 이 앨범은 기존의 힙합 뮤지션들이 미국의 힙합을 무분별하게 수용하며 뜬구름 잡는 허세만을 얘기할 때 이들은 자신들이 거리에서 직접 겪은 이야기들과 사회에 대한 불만을 노래에 담았다.”

오늘 아스팔트를 달구는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 길거리의 사람들의 마음은 무엇을 상상할까? 한편으로는 작열하는 태양빛으로부터의 탈출과 일탈일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답답한 시국에 대한 분노와 불만일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DJ. DOC의 <THE LIFE... DOC BLUES 5%>는 이 둘을 잠시나마 해소할 수 있는 청량음악이다. 당신에게 오늘 D.J. DOC의 음악을 선물한다. .

▲'명랑히어로'에 출연한 DJ DOC의 이하늘ⓒMBC

추신. 노무현 대통령의 추모 공연이 지난 6월 21일 성공회대에서 열렸다. 당시 DJ. DOC는 추모공연에 참여한다고 하며 현 상황에 대해 ‘무언가 할 말이 있다’라고 전해 사람들의 기대와 궁금증을 낳았다. 하지만 정작 DJ. DOC는 당일 오지 않았고 이후 이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적어도 필자가 아는 한에서는) 없었다. “병신같지만 멋있던” DJ. DOC에게서 멋은 사라진 것일까? 웹진 가슴 편집인 김학선 씨는 “DJ DOC는 더 이상 이런 앨범을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스트리트 파이터’가 아닌, 자상한 애 아빠와 각종 TV 프로그램의 유쾌한 출연자가 된 멤버들을 볼 때 이런 앨범을 기대하는 건 요원한 일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과연 그런 것일까? 그렇다면 이는 DJ. DOC뿐만 아니라 한국의 대중문화에 있어서도 매우 슬픈 일이다. 9년 전의 음악으로 오늘을 달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동시대와 공감하며 함께 호흡할 수 있는 대중문화계의 분발, 실천이 필요하다. 못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더 잘해달라는 이야기다. DJ. DOC도 마찬가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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