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을 재개해 무대의 전면에 등장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사실상 통계적으로 의미없는 지지율이 나오는 판국이지만 국민의 지지가 없더라도 강제로 나라를 끌고 가겠다는 식의 욕심과 고집으로 일관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욕심과 고집은 5%라는 최악의 지지율이 나오는 와중에도 여전히 자신은 살아있는 권력이라는 걸 과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6일 부산 해운대 엘시티 비리 의혹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지시한 것이다. 청와대 정연국 대변인의 발표에 따르면 대통령은 “가능한 수사 역량을 총동원해 신속 철저하게 수사하고, 진상을 명명백백하게 규명해 연루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단하라”고 했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 (연합뉴스)

공교롭게도 이 날은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검찰의 수사 요구를 사실상 일축한 날이기도 하다. 검찰은 뒷통수를 맞은 격이 됐고 수사 일정은 미궁에 빠졌다. 친박계를 제외한 여야의 정치인들도 모두 당황했다. 네티즌들은 자신은 수사를 받지 않겠다면서 다른 비리를 수사하라고 지시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오만을 일제히 비판하고 있다.

대통령, 혹은 그를 보좌하는 어떤 참모 내지는 실세가 아무런 정치적 계산 없이 비난 받을 것이 뻔한 메시지를 내놓도록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의 엘시티 비리 의혹 수사 지시는 첫째로 검찰에 대한 견제구로 이해된다. 검찰이 감히 대통령을 언제 어디로 오라 마라 하는 위세를 과시하고 있으나 여전히 검찰의 머리 위에는 대통령이 있으니 시키는 일이라 제대로 하라는 것이다.

대통령은 여전히 임기를 채울 의지를 갖고 있고 김수남 검찰총장의 임기는 내년 11월 말까지다. 대통령이 임기 중 검찰에 대한 마지막 인사를 행사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검찰에는 상당한 압박이 된다. 대통령이 의지만 있으면 김수남 검찰총장의 목도 언제든지 날릴 수 있다. 이 정부에 밉보여서 인생이 꼬인 검사는 언론을 통해 드러난 사례만 봐도 한 손으로 꼽기 모자란다. 게다가 전설적인 검사 출신인 최재경 민정수석이 청와대에 버티고 있다.

압박을 받는 것은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여당은 이중 삼중의 갈등에 노출돼있다. 여전히 여당으로서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대통령을 지켜야 하는 운명을 지고 있다. 야권과의 이런 저런 충돌은 예정된 일이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정권재창출을 위해 이 사건을 유야무야 넘어가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딜레마 속에 빠져있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이정현 대표는 올해 말이 되기 전에는 사퇴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비박계는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탈당 예고를 해가며 분당을 위한 준비를 착착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엘시티 비리 의혹은 계파를 막론하고 다수의 정치인들이 연루돼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야의 유력 대권주자들까지 여기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추측이 언론 지상에도 보도되고 있다. 이 사건이 모든 정치인들이 안고 있는 ‘폭탄’과 같은 것이라면 그 중 어느 것을 터뜨릴지는 사실상 청와대의 마음에 달렸다. 청와대가 실제 어떤 계획을 실행하지 않더라도 이런 사실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정치권은 긴장할 수밖에 없게 돼있다.

특히 새누리당 내에서 반란을 준비하는 비박계 인사들로서는 거사 일정을 짜는 과정에 엘시티 비리 의혹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친박계는 “집 나가봐야 시베리아”라며 분당 가능성을 일축해왔는데, 비유하자면 이제는 시베리아로 나가더라도 암살자가 따라붙을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과거 친박을 자처했으나 이제 비박으로 입장을 바꾸려 하는 ‘배신자’들은 특히 간담이 서늘해져 있을 것이다. 당장 서병수 부산시장의 측근이 이 의혹의 중심에 있다는 보도가 나오는 게 그렇다.

박근혜 정권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강행과 사드 배치의 기정사실화 역시 ‘국정 재개’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16일 각 언론은 국방부가 사드를 배치하기로 한 성주 골프장 부지 확보를 위해 남양주의 유휴 예정 군용지를 내놓기로 하고 감정평가를 실시하기로 롯데와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성주 골프장을 현금으로 매입할 경우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데, 그럴 경우 국회의 비준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일종의 ‘현물 거래’를 하겠다는 셈이다. 이 일정대로 하면 사드의 한반도 배치는 내년 하반기 정도에 완료된다.

한일정보보호협정 체결과 사드 배치는 동북아 정세의 상당한 변화를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특히 중국, 일본에 대한 외교적 대응이 시급하다. 내년 초에는 대선에서 승리한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공식 취임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장 물러날 생각이 없다면 이런 문제들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 원수로서 나름의 일정을 수행해야 한다. 16일 박근혜 대통령은 외교부 제2차관 인사를 단행했다. 다음 달 도쿄에서 예정돼있는 한중일 정상회담 일정 역시 예정대로 수행하겠다는 입장이다.

결국 야권이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어떤 형태로든 공식적으로 요구하게 된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외치든 내치든 포기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16일 하루 동안 보여준 셈이다.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면 5%까지 떨어진 지지율도 최소한 20%선까지는 금방 회복될 수 있고 흩어진 ‘콘크리트 지지층’도 완벽하겐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복원이 될 것이다. 이 동력이 있으면 만신창이인 상태여도 어쨌든 임기를 마칠 수 있고, 이 기간 동안 차기 정권을 잡을 세력과 어떻게든 퇴임 후 검찰 수사 등에 대한 정치적 ‘거래’를 끝마치면 되는 것이다. 언론은 박근혜 대통령이 곧 국무회의를 주재할 가능성마저 점치고 있다.

이를 가만히 두고 보아야 할까. 일각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을 유도하는 것이라는 지적을 내놓고 있으나, 이를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이미 대한민국의 절대 다수 국민들은 민주주의의 위력과 효과를 체험하였다. 이대로 가면 오히려 거리에서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장담할 수가 없다. 그러니 정치가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성난 민심을 대변해주는 사람과 세력이 있어야 최소한의 제도적 해결이 가능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씨를 ‘선생님’으로 지칭하며 연설문의 ‘컨펌’을 받도록 했다는 등 헌법 정신을 쓰레기통에 구겨 넣은 증거가 하루가 멀다 하고 보도되고 있다. 청와대는 “의혹만으로 퇴진할 수는 없다”고 하지만 그 의혹의 진상을 밝히는 데 최소한의 협력조차 하지 않는 상황을 그대로 납득할 국민은 없다. 이제는 교과서적인 행동 방침이 필요한 때다. 근대의 정치사상은 헌정을 짓밟는 권력에 대한 국민의 저항권을 전제한다. 우리 헌법의 전문에는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는 대목 역시 포함돼 있다. 헌정을 수호하기 위한 국민의 마지막 권한이 발동돼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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