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국회가 이렇게 지루하게 흘러가기는 아마 처음일 듯. 그동안 국회를 향해 ‘제발 싸움 좀 그만하고 민생 챙기는 일 좀 해라’며 싸우는 국회를 향해 비난할 줄 알았지, 그들이 왜 싸우는지, 싸우지 않으면 왜 안 되는지에 대해서 눈 감고 귀 막고 살았는데, 7월 임시국회 내내 국회가 우리들의 삶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 절감하며 산다.

비정규직들의 입장에서는 비정규직 법안의 향배에 따라 삶의 질과 인생의 현재와 미래가 결정될 수밖에 없는 상황. 지금 국회에서 벌어지는 국회의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비수가 될 수도 있고, 따뜻한 보금자리가 될 수도 있다.

지금 미디어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민주주의의 안착과 풍성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민주주의의 발전을 꿈꾸던 사람들, 이미 단두대에 올라 목 잘리면서도 미래를 포기할 수 없는 비정규직들, 용산에서 갖은 수모와 멸시를 받으며 오늘을 버텨내는 철거민들, 하루에도 몇 번씩 농약을 보면서 갈등하는 피폐해진 농민들, 새벽마다 웅성거리며 오늘도 허탕 치지 않을까 걱정하며 서 있는 ‘직업소개소’ 앞의 일용노동자들, 이미 신체 기능 일부가 마비된 채 어렵게 이 땅의 으슥한 모퉁이에서 신음하며 살아내야 하는 장애인들 등등의 미래는 없다.

▲ 야4당 의원들과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이 지난 26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단독국회 규탄, 언론악법·비정규악법 저지'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김영호 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 이강래 민주당 원내대표,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 유원일 창조한국당 의원,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 오마이뉴스 남소연
서민행보를 아무리 외치며 시장통에서 떡복기 먹는 사진을 언론에 뿌려도 저들은 결코 서민이 될 수 없는 사람들. 서민행보라며 대서특필해 주며 살아있는 권력에 꼬리치는 조중동을 비롯한 수구언론들이 ‘서민’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다. 단지 상업적 이익을 위해서 ‘서민’이라는 대상을 이용한 ‘동정심리 자극’이라는 일회성 기사나 시리즈를 잊을 만하면 ‘역사기록용’ 혹은 '서민들의 세상을 대비한 알리바이 구성’을 위해 보도해 줄 수는 있겠지.

하지만 일상에서 제도적으로 서민들의 삶, 사회적 약자들의 고난을 조명하고 대안을 제시하며, 법과 제도 그리고 정부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집요하게 보도하는 주류 언론은 사실상 말살되고 만다. 이것이 언론악법이다.

한데 지금 한나라당은 다음주 월요일(13일)이나 화요일(14일)에 언론악법을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장기집권을 위한 언론환경 정비. 서민이나 사회적 약자들보다, 있는 사람들, 자신들과 거의 매일 붙어서 노는 사람들, 자신들에게 돈 대주는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저들이 봉사하고, 자신들은 국회의원직을 고수하며 어쩌면 장관이나 더 크게 대통령 꿈을 꿀 수 있는, 될 때까지 할 수 있는 언론환경을 만들고자 무리수를 끊임없이 두고 있는 것.

둘째, 조중동에 대한 정치적 보은. 수십 년 동안 한 번도 자신들을 배신하지 않았고, 수십 년 동안 선거 때마다 자신들보다 더 열심히 선거운동을 해 준, 때로는 정치와 선거의 싱크탱크로서, 때로는 대대적인 선전선동까지 마다하지 않았던 조중동을 곁에 두기 위해서 조중동의 요구인 방송진출 방송장악을 법제화시켜주는 것.

셋째, 대기업에 대한 정치적 보은. 조중동과 마찬가지로 아낌없이 퍼주는 대기업을 위해 한 번쯤은 제대로 된 보은을 할 수 있는 기회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 바로 언론법이다. 비판적인 여론에 의해 대기업들이 하고 싶었던, 법만 고치면 떼돈을 벌 수 있는 수많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입바른 소리를 곧잘 하는 방송들 때문에 고비 때마다 주저앉아 분루를 삼켜야 했던 삼성 현대를 비롯한 대기업들이 방송을 차지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 이들은 다시 방송을 소유함으로써 한나라당의 안정적인 정치여론을 형성해 줄 터이고, 한나라당은 이들 방송이 시키는 대로 법제화해 주면 저들의 입장에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 될 터.

▲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 ⓒ여의도통신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가 지금 비정규직법보다 언론악법에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있고, 더 강경하게 구는 이유는 단순하다. 언론악법이 악법인 것도 안상수 대표는 알고 있을 터. 하지만 조중동이 방송을 소유하고 경영하게 되면, 일등공신은 정치적 미래를 크게 그리고 있는 안상수 대표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그림은 훨씬 더 뚜렷해지고 실현가능성 높은 상태로 돌릴 수 있다고 판단, 비정규직법은 어지간하면 합의처리하려는 시늉을 내고 있지만, 언론법에 관해서는 일절 불통이요 일방통행이다.

안상수 대표는 자신이 대중적인 정치인으로 정치인생의 첫발을 내딛도록 해 준 곳이 다름아닌 바로 방송이기 때문이다. 안상수 대표의 전임자인 홍준표 전 원내대표도 마찬가지.

‘설마 민주당이 받으랴’ 하는 심정으로 언론법 강행처리를 위한 절차적 알리바이를 마련하기 위해 제안했던 ‘여·야 4자회담’을 민주당이 덥석 받으니까, 한나라당은 꼬리에 불난 도둑고양이처럼 도망가서 숨어버렸다.

냉정하게 따지면 이명박 대통령은 조중동의 은혜를 입었지만, 더 이상 그렇게 큰 은혜를 입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안상수 원내대표는 다르다. 그래서 지금 한나라당 지도부가 그렇게 목숨걸고 밀어붙이는 이유의 핵심은 안상수 원내대표에서 찾아야 한다.

안상수 원내대표의 개인적인 정치적 야망을 위해서 국회는 파행과 공전을 거듭하고 있고, 국민들은 숨죽이며 안상수 대표가 밀어붙이는 욕망의 끝을 지켜보고 있다. 욕망의 끝은 파멸일 테지만, 확인은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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