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이냐, 유예냐가 이토록 가파르게 여의도를 가를 것을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누가 뭐래도 비정규직법안은 민주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사이좋게 합의하여 만든 것이 아닌가. 지금 제기되고 있는 모든 쟁점, 문제시되고 있는 모든 우려들은 이미 법을 만들 때부터 있어왔던 것이다. 민주당은 불가피하다고 했고, 한나라당은 민주당과 노동계의 설전을 줄곧 관망하며 불구경을 하다가, 전광석화처럼 민주당과 합의했었다.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실이 그 긴박했던 상황을 밖으로 부지런히 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비록, 그 합의가 한 장의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고 한 순간의 야합일지언정, 그 종이와 야합의 사회적 이름은 ‘법’이다.

시행이냐, 유예냐. 한쪽에선 시행은 곧 ‘대란’이라 하고, 다른 한쪽에선 유예를 전제한 논의는 죽어도 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적의에 적개심이 보태지고, 혐의에 폄하가 덧씌워지는 형국이다. 서있는 자리와 자세에 따라 신의와 합리성 같은 상식의 태도들은 가뿐히 뛰어넘을 수 있는 곳이 여의도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형편없이 겸연쩍은 짓이 아닌가.

▲ 민주당 김재윤, 민주노동당 홍희덕, 창조한국당 유원일 의원과 민주노총,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2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비정규직 해고 조장하는 정부여당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새삼, 조중동의 힘을 절감한다. 과거를 완전히 낯선 나라로 만들어버린 이 만신창이의 꼬락서니를 연출한 8할의 연출력은 조중동의 의제 장악력이었다. 6월 말쯤부터 비정규직 대량 해고에 대한 신파적 예고를 내보내더니, 요 며칠간은 완전히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해고 찾아 삼만리의 대서사시를 쓰고 계시다. 어디 가만 있을, 한나라당이랴. 누가 비정규직의 눈물을 빼는가. 민주당이다. 유예를 합의해주면 당장 울 일은 없을 것을, 하늘 아래 이런 정당은 없다고 몰아세우고 있다. 졸지에 민주당은 비정규직을 울리는 몹쓸 정당이 되어버렸고.

이쯤 되면, 논리도 필요 없다. 조중동이 비정규직을 염려하고, 한나라당이 서민의 눈물을 우려하는 아름다운 나라, 유사 ‘뿌레땅 뿌르국’에서 뭘 바라겠는가. “여러분, 대량해고 없는 나라입니다.”

비정규직법은 허깨비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논쟁은 근본도 뿌리는 물론 내용도 뭣도 아무 것도 없는 자작극이다. 비정규직법안의 취지가 비정규직의 정규직을 유도하기 위한 것인데 왜 그 법이 시행되자마자 해고 대란이 일어나는가? 법이 잘못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 법을 누가 만들었나?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함께 만들었다. 그렇다면, 왜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조중동은 유예 아니면 대란뿐이라는 선동을 하나? 궁긍적 목표가 더 오래 비정규직을 쓰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누구의? 기업들의 그것을 조중동이 나팔 불어주고 있는 것이다.

법이 시행되더라도 해고 대란은 일어나지 않는다. 무조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계속, 비정규직으로 쓸 수도 있다. 다만, 그럴 경우 근로기준법에 근거한 ‘해고’만 가능해진다. 연수에 따른 일방 해고만 불가해진단 말이다.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할까? 법의 취지가 살아날 수 있도록 계도, 유인해야 한다.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기업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 우선적으론, 공기업의 비정규직들부터 정규직화하는 선례를 만들어야 한다.

상황은 어떠한가? 정반대이다. 공기업들부터 비정규직을 해고하고 있다. 앞서, 말했다.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아도 계속 쓸 수 있다. 계약을 무기 연장하면 된다. 무기 연장은 곧 정규직이 아니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무기 계약의 경우, 정당한 사유 없이 해고할 수 없을 뿐이다. 임금이 계속 오르지 않느냐고? 당연한 얘기 아닌가. 숙련의 정도가 높아질수록 효율이 좋아지니 생산도 증가할 것이고, 그럼 임금도 올려줘야 하는 것 아닌가.

이걸, 조중동이 호도하고 있다. 무조건 잘라야 한다고 떠들면서 심금을 울리는 미담기사로 변죽을 올리고 있다. 조중동을 따라 방송 뉴스들이 흔들리고 있다. 안타깝단다. 대체 뭐가? 말린 것이다. 조중동이 만들어낸 프레임 위에서 한나라당이 작두를 타자 뭐에 홀린 듯 정말 이러다 대량해고가 일어나는 것은 아닌가 싶어 이 난리 굿판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를 MB는 무슨 부적이라도 되는 것처럼, ‘고용유연성’을 증가시키며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을 수 있는 근본적 대책을 찾을 때까지 법안을 유예하자고 받고 있다. 씨나락 까먹는 소리이다. 이는 일본 순사의 업무 효율성을 높이면서 독립군의 활성화를 동시에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말씀과 같다.

자본의 신자유주적 속성이라는 것이 법안 하나로 제어할 수 있는 문제는 분명 아니어서, 이미 단기/초단기 기간제 노동자들은 계속 고용과 계약만료의 복잡한 흐름을 갈아타고 있다. 이는 오래 전에 일상화됐다. 지금 시행하고자 하는 비정규직법은 이 흐름 전체를 돌려 세우는 극약 처방이 결코 아니다. 계속 고용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기업들에게 국가가 행사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개입이다. 이를 유예하자는 것은 결국 그마저 하지 말자는 것과 같다. 차라리, 솔직하게 얘기를 하던가. 고용 안정화 따위에 전혀 관심 없다고. 애꿎은 눈물을 팔아 제치는 비열한 신파극 꾸미지 말고.

7월 1일부터 비정규직은 정규직(화)되어야 한다. 그건 국가가 국민을 향해 최소한의 역할은 하겠다는, 해야 하는 믿음으로 구성되는 사회에서 최소한의 모멘텀이다. 그걸 깨부수면 우리가 국가라는 걸 해야 할 선의는, 해야 할 별다른 이유도 없다. 나랏돈에 기대어 있는 공기업들이 제 분수를 모르고 설레발을 쳐대는 상황은 정말 꼴사납다. 농협 같은데 말이다.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인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그냥 딱 2년 혹은 1년반만 더 이렇게 닥치고 살잔 말인가. 우선, 그러잔 뜻이고 그때 가서 또 딴소리를 할 셈인가. 대체 왜? 물론, 비정규직을 해고하는 기업이 있을 것이다. 현행법에서 그걸 제재할 뾰족한 방법이 없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 그렇다면 차라리 이제라도 그걸 어찌해볼까 하는 논의를 하든가.

조중동이 만들어내는 무의미함, 그 참을 수 없는 주술. 그럴 때마다 홀린 듯 받들며 제 살 뜯기는 줄도 모르는 난타전을 펼치는 한나라당의 투견 정신. 신났다고 책임을 은폐하고 해고에 열을 올리는 속성을 과시하는 자본. 짐짓, 점잖은 척 세상에 없는 얘기를 해대는 MB의 무능까지. 하나 같이 극하게 가관이다.

시행이냐, 유예냐로 나뉘는 촌극을 때려치워라. 모두의 과거 특히나 자신의 어제에 대한 지나친 가학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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