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환 위원장의 갑작스런 사퇴로 인권위가 뒤숭숭합니다. 사실 결국 올 것이 온 것입니다. 이명박 정권 출범 초기부터 인권위는 줄곧 독립성과 관련한 ‘위기상황’을 경험했습니다. 그 첫째는 대통령 직속기구화 시도였습니다. 인권단체들의 반대농성이 이어지자 청와대는 발뺌했지요. 비공식적으로 들리는 청와대 쪽 이야기는 “대통령 직속 기구화가 되면 오히려 더 힘이 강해지는 것 아니었겠느냐”라는 익숙한 ‘오해’ 타령이었습니다. 둘째 국면은 이른바 대과대국주의에 의한 인권위 체제 개편. 이에 앞서 인권위 위원장에 대한 개인정보 제출 요구와 강도 높은 감사원의 감사. 이 모든 칼날의 끝은 안경환 위원장을 겨누고 있었습니다. 안 위원장은 여러 경로를 통해 청와대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결국 안 위원장이 물러날 때까지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그를 한번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촛불시위 직권 조사 결과 발표 후 경찰과 검찰, 법무부는 일제히 인권위의 권고를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사실상 이미 인권위가 무력화된 것이지요. 안 위원장의 사퇴는 시간문제였습니다.

지난해 저는 인권위와 관련한 기획기사를 몇 차례 썼습니다. 촛불시위 때 ‘촛불시위 인권유린 현장에서 인권위가 과연 제 역할을 하느냐’는 비판이 많았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공식국가기구인 인권위를 불신하고, 엠네스티와 같은 단체로 달려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던 때이지요. 인권위는 그때 앞에 거론한 이명박 정부의 ‘전방위적 압력’에 전전긍긍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여러 내부문제도 있었지만, 이 자리에서 그것을 거론하기는 적절하지 않을 것 같고요.) 그중 하나가 경남 진주 출신의 김○○ 목사의 비상임위원 임명이었습니다. 제가 취재에 들어간 시점은 김 목사의 인선이 거의 마무리되고, 김칠준 인권위 사무총장과 면담까지 마친 상황이었습니다.

▲ 뉴스메이커(현 위클리경향) 기사 화면 캡처.
하지만 인권위도, 인권단체의 그 누구도 도대체 김 목사가 인권과 관련해 무슨 일을 했었는지는 몰라 답답해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가 특정지역 출신이라는 것과, 인천에서 개척교회를 했다는 것 이외에 주어진 정보도 거의 없었습니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연락이 된 김 목사가 쏟아낸 말은 ‘충격’ 자체였습니다. “지금의 인권위는 너무나 좌경화되어 있다”, “교도소에서 너무 인권을 따지면 폭동이 일어난다. 교도소 재소자 인권이 있으면 직원들 인권도 있다”, “부모는 자녀의 일기장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그냥 어느 술집에서 범부가 술김에 평소 인권위에 가지고 있는 ‘불만’을 쏟아낸 것이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문제는 그가 인권위법 5조 2항에 규정되어 있는 인권위원, 즉 “인권문제에 관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고 인권의 보장과 향상을 위한 업무를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자”로 그 자리에 섰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가 인권과 관련한 활동 경력이라고 밝힌 것도 모두 수준미달의, 인권위원의 ‘전문성’과 거리가 먼 것들 뿐이었습니다.

Weekly경향과 경향신문의 김○○ 위원 보도 직후 청와대는 “그런 사람을 인선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습니다. 인권단체 사람들뿐 아니라 인권위 직원도 다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해 거짓말을 한 것이죠. 김○○ 위원 문제가 어느 정도 잠잠해진 후 다시 청와대가 인선한 이가 현재도 비상임위원으로 활동하는 김양원 위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취재 결과 많은 문제가 있는 인사였습니다. 저는 김양원 위원이 운영하던 복지재단에서 나온 이들의 증언을 통해 그의 ‘반인권적 행적’을 재구성해 보도했고, Weekly경향의 보도에 분노한 장애인 단체들의 김 위원 인선 반대 시위가 잇따랐습니다. 보도와 반대시위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금까지 비상임위원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지요. 두 비상임위원 케이스에서 공통된 문제는 ‘인사검증시스템의 부재’였습니다. 한 인권단체 활동가는 “‘나눠먹기식 구조’가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안경환 위원장의 후임으로 여러 사람들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법에 따르면 30일 이내에 대통령이 지명하게 되어 있습니다. 두 명의 비상임위원 임명 ‘소동’을 지켜본 한 인권위 핵심인사는 “(그런 문제 많은 사람을 인권위원에 임명한 것을 보면) 청와대가 ‘인권’을 얼마나 가볍게 생각하는지를 엿보는 것 같아 서글펐다”라고 술회했습니다. 인권단체들은 위원장 및 인권위원 임명 때 인사청문회와 같은 검증절차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지켜보겠습니다. 청와대가 얼마나 ‘인권’에 신경을 쓰는지.

경향신문이 발행하는 시사주간지 Weekly경향의 기자다. 사회팀장을 맡고 있다. 시민단체 KYC 등과 함께 풀뿌리공동체를 소개하는 <도시 속 희망공동체 11곳-풀뿌리가 희망이다> 책을 냈다. 괴담&공포영화 전문지 또는 ‘제대로 된(또는 근성 있는)’ 황색잡지를 만들어보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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