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묵의 사전적 의미는 ‘생선의 살을 뼈째 으깨어 소금, 칡가루, 조미료 따위를 넣고 나무 판에 올려 쪄서 익힌 일본 음식’이다. 물론, 사전적 용례은 규정적 질서일 뿐이어서, 칡가루가 들어가고 나무 판 위에서 쪄낸 어묵이 얼마나 흔한지는 알 수 없다.

2.

▲ 6월 29일자 중앙일보 12면.
MB가 시장 떡볶이집에서 어묵을 자셨다. MB는 단순히 배가 고파서 ‘생선의 살을 뼈째 으깨어 소금, 칡가루, 조미료 따위를 넣고 나무 판에 올려 쪄서 익힌 일본 음식’을 자신 것은 물론 아니다. 바쁜 시간을 쪼개 저 멀리 이문동까지 찾아가, MB가 자시고자 한 것은 ‘생선의 살을 뼈째 으깨어 소금, 칡가루, 조미료 따위를 넣고 나무 판에 올려 쪄서 익힌 일본 음식’이 아니라 ‘그것을 먹는 모습을 담은 한 장의 사진’이었다.

3.
MB가 ‘‘생선의 살을 뼈째 으깨어 소금, 칡가루, 조미료 따위를 넣고 나무 판에 올려 쪄서 익힌 일본 음식’을 먹는 모습을 담은 한 장의 사진’을 언론이 맛깔나게 소화한 이후 ‘‘생선의 살을 뼈째 으깨어 소금, 칡가루, 조미료 따위를 넣고 나무 판에 올려 쪄서 익힌 일본 음식’을 먹는 모습을 담은 한 장의 사진’을 언론이 맛깔나게 소화한 그 행위의 의미에 관한 논쟁으로 분분하다. MB는 벌써 소화 다 됐을 텐데….

4.
여의도 정가에선 이를 작심하고 ‘떡볶이(집 어묵) 논쟁’이라고 부르기로 한 모양이고, 떡볶이집 아들은 그런 여의도 모두를 질타했지만, 논쟁은 사그러 들지 않고 있다. “내가 무엇을 하든 서민을 위한 것이거든”을 외치기 시작한 정부의 수준에 딱 들어맞는 작명이자, 나라 돌아가는 꼬락서니의 단면이 적나라하게 절개된 것이 아니라 할 수 없는 논쟁이다.

5.
무릇, 모든 요리에는 레시피가 있고, 어떤 논쟁이라도 기승전결과 점입가경은 있는 법이다. 떡볶이집 어묵 논쟁 역시 마찬가지이다. 며칠 전부터 시장에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이 돌아다녔었다는 어느 상인의 증언이 이번 논쟁의 기구(起句)쯤 될 것이다. 검은 양복이 시장통을 훑으며 일으켰을 위압감의 기운이 이번 논쟁의 전체 시상을 불러일으킨다. 장학사님 오신다고 아예 학교 전체에 왁스를 먹이다시피 했던 기억도 떠오르고, 얼핏 ‘스타’가 오신다고 진입로 전체를 화단으로 꾸몄다는 무용담도 겹쳐진다.

6.
승구(承句)는 바로 ‘‘생선의 살을 뼈째 으깨어 소금, 칡가루, 조미료 따위를 넣고 나무 판에 올려 쪄서 익힌 일본 음식’을 먹는 이미지’를 MB가 왜 필요했는가의 문제이다. 앞서 말한 ‘서민’ 놀음이다. 선거철도 아니건만 여론조사가 횡행하더니 정치권은 일제히 서민 놀음에 빠져들었다. 이는 10만이 모여도 할 게 없더라는 광장의 벅차오르는 허무감이 정치적으로 수렴되는 방식이자, 정치적 지지를 모조리 잃어버린 정부가 막연한 구체성으로 국민을 감싸안는 척하기이기도 하다. ‘중도’ 강화 놀이, 모로 가도 ‘실용’ 뿐 따위의 언설도 비슷한 놀음이다.

7.
MB가 어묵을 자신 이후, 그 재래시장 곁에 대형마트가 들어선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MB의 떡볶이집 어묵이 외려 장사를 방해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지난 번 가락시장 머플러 증정 사건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너무 낡은 방식의 퍼포먼스에 역풍이 불어왔다. 바로 이때, MB는 장면과 논란을 새롭게 전환시켰다.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것이 대운하인데 그건 하지 않겠다고 치고 나왔다. 청와대 게시판에 글을 남긴 이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정부에 대한 불신과 오해가 있다고도 했다. 검찰이 그들에 대한 수사에 나서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하여간, 4대강은 살리되 대운하는 않는다는 그 묘한 뒤틀림에 뒤통수가 뻑적지근해진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어묵은 먹되 서민 정책은 없는 비판을 잠재우기 위해 4대강은 하되 대운하는 아니라는 너스레를 떨고 있다.

▲ 조선일보 6월 26일자 1면.
8.
그럼에도 불구하고, MB의 행보에는 거침이 없다. 오늘(30일)은 서민생활대책을 발표했고, 며칠 전부터 서민을 위해 사교육비를 잡겠다는 설레발이 사납다. 죽지도 않은 4대강을 살리는 22조로 죽어가는 서민부터 살리라는 요구가 일자, 윤증현 장관은 ‘감세 기조를 유지하되 서민 지원은 확대하겠다’며 걱정 말란다.

9.
당분간은 계속될 테다. MB는 자신의 진정성을 몰라줘 답답하다고 했다. 그 심정 십분 이해한다. 서민을 생각하는 MB의 심정이 거짓이라고 나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뭔가를 생각하기엔 너무 낡았고, 그를 지배하는 서민의 기억은 너무 오래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서민을 설득하기 위해 대한늬우스 따위를 만들라고 한 자신의 지시가 어디서부터 문제이고 어디까지 낙후된 것인지조차 돌아볼 겨를이 없는 게다. 이 대목이야 말로 우리 시대가 불행한 이유다. 추위가 닥치면 대통령이 가락시장을 찾고, 농번기가 오면 대통령이 논두렁을 찾고, 서민을 위하기 위해 대통령이 재래시장을 찾으면 된다는 발상이 물 흐르듯 시대를 건너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것은 20년 전쯤의 풍경인데, MB는 여전히 그것을 주요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시간의 차이, 메워지기는커녕 MB가 무엇을 할 때마다 벌어지고 있는 간극 말이다.

10.
그래서 우리 모두는 논쟁은 고사하고, 떡볶이집에서 파는 ‘생선의 살을 뼈째 으깨어 소금, 칡가루, 조미료 따위를 넣고 나무 판에 올려 쪄서 익힌 일본 음식’에 체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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