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경환 국가인권위원장이 지난 3월 30일 오후 국가인권위원회 조직 축소를 위한 직제 개정령안이 다뤄질 국무회의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대회의실에 도착하고 있다. ⓒ 권우성 오마이뉴스 기자
안경환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30일 위원장 사퇴 의사를 밝혔다.

안 위원장의 임기만료일은 오는 10월 29일이지만, 그는 “오는 8월 3일부터 ‘아시아·태평양지역 국가인권기구 포럼(APF)’ 연례총회에서 ‘세계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의 회장 후보국과 후보자가 선출되는 사실을 감안하여 조기 사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에서 조기 사퇴한다”고 밝혔다.

안 위원장은 “조속히 후임자가 임명되어 국민과 정부의 지원 아래 그동안 크게 손상된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을 회복하고 ICC 회장국직을 수임하여 인권선진국의 면모를 일신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덧붙였다.

안 위원장은 이미 이날 오전 청와대 쪽에 사의를 표명했다. 아직 청와대가 사직서를 수리하지는 않았지만, 국가인권위는 다음 주중 이임식을 치를 예정이다. 후임자 임명 때까지 위원장 직무대행은 최경숙 상임위원이 맡게 된다.

긴급 소집한 회의에서 “조직축소 와중에 고생 많았다” 격려

안 위원장은 이날 오전 10시 직접 소집한 ‘긴급 국과장 회의’에서 이 같은 사퇴의 변을 밝혔다. 그는 이 자리에서 간부들에게 “그동안 조직축소 와중에서 고생이 많았다”고 격려했다고 한다.

일부 관계자들은 “안 위원장이 최근 거취 문제로 고민했다”고 말했지만, 대부분의 직원들에게 이번 사퇴 결정은 갑작스럽다. 한 간부는 “어제(29일)까지만 해도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고 전했다.

이번 APF총회에서 한국은 ICC 회장국이 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렇게 되면 국가인권위원장이 사실상의 의장직을 수행하게 된다. 한달 안에 새 국가인권위원장이 선출되어 내년부터 ICC 의장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안 위원장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미 APF총회나 위원장 임기는 예정된 행사였고 안 위원장의 사퇴 여부가 회장국 선출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적다.

내부에서는 안 위원장이 조직 축소 이후의 심적 부담감 때문에 사퇴한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안 위원장은 지난 4월 국가인권위 조직축소가 결정된 직후에도 사퇴 의사를 내비쳤으나 주변의 만류로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국가인권위 관계자들은 “조직축소 이후 국가인권위 수장으로서 책임감을 많이 느낀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도 “남은 임기 동안 국가인권위의 독립성과 정체성을 보다 명확하게 할 수 있었을텐데 안타깝고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 관계자들의 이같은 우려는 다음 국가인권위원장은 친정부적 인사가 될 것이라는 예측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되어있다. 이미 올해 초부터 몇몇 뉴라이트단체 출신 인사나 보수 성향의 법조계 인사들이 차기 인권위원장으로 물망에 오르고 있다.

한 관계자는 “걱정이 태산 같지만 평상심을 잃지 않고 하던 대로 일하겠다”면서 “새 위원장이 온 뒤 정치적으로 (친정부적) 편향이 생기면 그야말로 국가인권위 존립이 어려워지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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