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간 덕수궁 대한문 일대에서 ‘표현의 자유를 위한 문화행동 <굿나잇 앤 굿럭>’ 행사가 벌어졌다. 이 행사는 이병박 정권의 표현의 자유 탄압을 규탄하고, 표현의 자유를 위해 직접 행동하자는 취지로 진행되었다. 행사는 영화제, 음악공연, 토론회, 전시회 등 평화적인 문화행사로 채워졌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를 위한 문화행동’에도 어김없이 경찰 폭력이 자행되었고, ‘문화행동’은 이명박 정권 하에서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탄압되고 있는지 드러내는 또 하나의 증거가 되었다. 경찰은 평화로운 광장토론회와 영화제를 불법집회로 규정하고, 참가 시민을 강제해산하고 연행했다. 마지막 날 행사인 음악공연과 문화전시회는 경찰의 원천봉쇄로 행사자체가 무산되기도 하였다.

경찰의 이런 탄압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표현의 자유는 언제 어디서나 보장되어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을 훼손한 행위다. 이는 국제인권규약에도 보장된 권리이며, 이를 위반한 이명박 정권과 경찰이야말로 국제법을 위반한 것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공평해야 할 경찰의 법집행이 표현의 정치적 성격에 따라 차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경찰은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이면 무엇이든 탄압하는 반면 정부에 동조하는 것이면 타인에게 신체적 해를 가하는 사적 폭력조차 방치하고 있다.

문화행동에 대한 경찰 탄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 자리에서 인권활동가 한낱은 이런 상황을 명쾌하게 정리했다. “지금 표현의 자유가 모두에게 금지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권력을 가진 자들의 표현의 자유는 무한대로 보장되고 있다. 그러나 표현의 수단을 제대로 갖지 못한 사회적 약자들의 표현의 자유는 무차별적으로 탄압받고 있다.”

▲ 6월 22일 진행된 '이명박 정부 표현의 자유 침해 실태 발표 기자회견',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기 위해 상자를 쓰고 온 참석자들.ⓒ나난
그렇다. 문화행동이 벌어지던 주간에도 권력자들은 그들만의 표현의 자유를 한껏 누렸다. 문광부는 2억여원의 국민세금을 들여 ‘대한늬우스’를 부활시켰다. 국민의 대다수가 반대하는 ‘4대강 살리기’를 홍보하기 위한 영상이 전국 190여개 극장에서 상영되기 시작했다. 국정원은 간첩, 좌익 색출을 위한 황당무계한 이벤트에 들어갔다. 국정원에 따르면, ‘PC방의 외진 구석에서 불순내용을 게재, 전파하고 황급히 자리를 이탈하는 사람’, ‘남북경협, 이산가족 상봉을 구실로 통일운동하자는 사람’, ‘손을 대고 은밀하게 말을 거는 사람’, 이런 사람은 ‘의심강추!’란다. “어느 누가 적일지 아무도 모른다!” 이 플래시게임에 많이 참여하면 고급 국정원 시계도 준단다.

이 정도는 적극적인 정권홍보 과정에서 나온 ‘무리수’나 ‘해프닝’으로 그냥 지나칠 수도 있다. 그러나 사태가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 이 정권은 단순히 행정집행 차원을 넘어 권력을 가진 자들의 표현의 자유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법적, 제도적 개악을 추진하고 있다. 6월 국회에서 일방처리하려는 언론악법과 사이버통제법이 바로 그것이다. 그 밑바탕에는 ‘언론자유’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정부여당의 왜곡된 인식과 철학이 자리 잡고 있다.

언론악법을 추진하는 정부여당의 머릿속에는 오직 ‘가진 자’와 ‘권력자’의 ‘언론자유’만이 똬리를 틀고 있다. 단적인 예로 언론악법을 최전선에서 이끌고 있는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은 신문방송 겸영규제를 ‘유례없는 규제의 벽’으로 묘사하며, 과도한 규제로 인해 ‘여론(방송)다양성’이 훼손되고 있다고 한다. 이는 곧 누군가의 정당한 ‘언론자유’가 침해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정부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언론악법의 핵심은 재벌과 조선, 중앙, 동아일보 등 거대신문사에게 방송진출을 허용하는 데 있다. 경제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재벌권력과 신문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신문권력이 방송마저 소유한다면 여론의 보수적 독과점은 불을 보듯 뻔하다. 현행 신방소유제한은 이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규제 장치다.

그런데 나 의원은 이를 ‘유례없는 규제의 벽’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이 때 나경원 의원이 말하는 ‘규제의 벽’은 과연 무엇을 가로막고 있는 벽인가? 시민들의 자유일까, 재벌기업과 족벌신문의 자유일까? 언론악법을 강행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언론자유’의 주체는 오직 ‘기업’과 ‘자본’뿐이다. 그러니 얼토당토않게 ‘여론다양성’ 운운하는 것이다. 양식 있는 사람들은 이런 것을 두고 ‘언론자유’라고 부르지 않는다. ‘극단적 시장자유’라는 본명을 되찾아주어야 한다.

사이버통제법을 도입하려는 ‘머릿속’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독소조항인 ‘사이버모욕죄’를 보라. 사이버모욕죄는 모욕죄를 비친고죄화하여 당사자의 고소 없이도 수사기관이 수사할 수 있고, 당사자의 반대가 없다면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과연 수사기관이 바쁜 일 제쳐두고 일반시민들이 받을 수 있는 모욕을 해결해줄까? 당연히 수사기관은 정치인, 기업인과 같은 권력자들에 대한 모욕에 수사를 집중할 수밖에 없다. 이 법의 보호대상은 명백히 ‘권력자’들 뿐이다.

반면, 한나라당은 ‘강제적 인터넷 실명제’를 확대 실시하여 일반 시민들의 ‘익명 표현의 자유’를 박탈한다. ‘익명’의 자유는 사회적 약자의 무기다. ‘익명 표현의 자유’ 박탈은 내부 고발자의 용감한 양심선언이나 사회적 약자의 비판을 위축시킨다. 자신의 신원이 드러나 불이익이 예상되는데, 누가 권력자의 비리나 정책을 비판할 수 있겠는가? ‘표현의 자유’와 ‘약자의 권리’를 이해한다면 사이버통제법은 절대 나올 수 없는 법안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언론과 미디어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이 고조되고 있다. 문화행동에 대한 경찰 탄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에서도 일부 시민들이 KBS와 YTN 기자의 취재를 방해하며 성토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왜 그런가? 직접적인 사회적 표현 수단을 갖지 못한 자들은 언론과 미디어가 자신들의 의견을 있는 그대로 진실하게 보도해줄 것을 기대한다. 강자에 맞서 약자의 편에 서는 정의로운 언론을 요청한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고, 배신감은 분노로 변하여 행동으로 표출되고 있다. 그나마 자유로운 외침이 가능했던 인터넷공간마저 이명박 정권에 의하여 2중 3중으로 족쇄가 채워졌다.

그래서 시민들은 외치고 있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비판언론’과 ‘공정한 방송’을 빼앗지 말라고. 우리의 입과 몸짓을 봉인하지 말라고. 또한 시민들은 싸우고 있다. 힘없는 약자에게는 입도 뻥긋 못하게 하는 현실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 모든 이가 표현의 자유를 평등하게 보장받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당당하게 선언한다. 강자에게만 보장된 표현의 자유는 폭력이라고. 그렇기에 언론악법을 막기 위한 우리의 저항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표현의 자유를 위한 우리의 행동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언론개혁시민연대는 언론관련 법제 개선, 미디어 수용자 운동, 대안매체 운동 등을 전개할 목적으로 1998년 8월 창립된 시민단체입니다. 41개의 단체가 참가하고 있으며, 현재 미디어행동의 사무처를 맡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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