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햇빛이 산중에도 여지없이 찾아왔습니다. 한낮엔 나무그늘을 찾아 이리저리 옮겨 다닙니다.

밭에 심은 채소들과 고구마는 뜨거운 햇빛과 가끔씩 내리는 소나기를 양분으로 훌쩍 훌쩍 크고 더불어 풀들도 훌쩍 자라 햇빛이 좀 잦아드는 오후엔 열심히 풀을 뽑아야 합니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 한 여름이 오기 전에 풀을 잡지 못하면 농사는 엉망이 되어버리기에 6월에는 부지런히 땀 흘려야 합니다. 농부에게 한여름은 논밭에서 흠뻑 땀 흘리고 맞이하는 계절입니다.

요즘처럼 더운 날엔 불 때서 밥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나무그늘에 있어도 덥다는 말이 나오는데 아궁이 앞에서 불 지피고 있으면 절로 땀이 납니다.

부엌에 대해 여러 해 생각을 하다 아궁이에서 음식을 하는 방식으로 바꾸었습니다. 음식 하는 데 쓰는 연료를 가스에서 나무로 바꾸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았지만 주변에 나무가 많은 산중에서 나무를 연료로 하는 것이 자연스런 일인 것 같습니다.

가마솥에 밥을 하면서 얻은 즐거움이 있습니다. 하나는 가마솥 밥이 고소해 밥맛이 좋은 것이고 또 하나는 솥바닥에 누러 있는 누룽지 먹는 즐거움입니다.

▲ 바삭한 누룽지 ⓒ지리산
어릴 때 고소하고 바삭바삭한 누룽지를 먹기 위해 밥 먹고 나면 부엌을 기웃거리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어릴 땐 누룽지라는 말을 몰랐고 ‘눌은밥’ 또는 ‘깐밥’이라고 했습니다. 눌었다고 눌은밥이라 했을 테고 깔려있다고 깐밥이라 한 것 같습니다.

눌은밥을 물에 넣고 끓인 밥도 누룽지라 부르니 바삭한 눌은밥과 구분되지 않지만 누룽지가 표준말인지 다 누룽지라 하는 것 같습니다. 가마솥에 밥을 하고부터 배불리 밥 먹고도 넷이 모여 앉아 누룽지를 달게 먹는 풍경이 생겼습니다.

밥은 불 조절을 잘 해야 설익지도 않고 타지도 않습니다. 가마솥 밥은 어릴 때 자주 불을 때 봐서 불 조절에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밥이 덜 익었을까 하는 조바심에 밥을 조금 태웠습니다.

익숙함도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 하는가 봅니다. 물이 끓어 김이 나오기 시작하면 솥으로 물방울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이 물방울을 ‘눈물’이라고 했습니다. 눈물이 흐르고 나면 밥물이 흐릅니다.

이 때, 나무를 더 이상 넣지 않고 남은 불로 밥을 익히고 뜸을 들입니다. 지금도 ‘밥물 나오면 불을 더 넣지 마라’는 어머니 목소리가 들립니다.

▲ 뜸들이기 ⓒ지리산
바삭하고 고소한 누룽지를 만들려면 먼저 밥물 나오고 나무를 조금 더 넣어야 합니다. 시간으로 말할 수 없고 나무 수로도 말할 수 없는, 오직 경험으로 터득해야만 하는 삶의 지혜입니다.

이렇게 불 조절을 하고 뜸 들기를 기다렸다가 솥에 있는 밥을 다 퍼내야 합니다. 밥이 솥에 함께 있으면 누룽지가 물기를 먹어 바삭하지 않아 맛이 떨어집니다.

고소한 누룽지를 맛있게 먹으면서 우리 삶의 한 면이 떠오릅니다. 자신을 눌러 자기 위에 있는 쌀들을 잘 익히는 누룽지는 우리 삶을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은 그렇게 바닥에 깔려 밥을 만들어 세상에 드러나게 합니다.

배부르면 잊혀지는 누룽지는 원망하지 않고 항상 바닥에 깔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런 누룽지의 마음이 있어 바삭하고 고소한 맛을 지녔는지 모릅니다.

▲ 솥에 누른밥 ⓒ지리산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