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배기에 펄펄 끓어오르는 김치찌개, 가슴이 아련해지는 감미로운 영화, 눈이 호사스러운 그림 한 점…. 평소 아무렇지도 않았던 일상이 요즘 들어 너무 너무 감사하고 누군가에게 송구하게 느껴진다. 방송국에 승렬씨가 다녀간 후 생긴 증상이다. 승렬씨는 전북 진안에 사는 시각장애인이다. 승렬씨와의 인연은 2 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침 방송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와 정리를 하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자신을 ‘시작장애인’이라고 밝힌 그는 <아침의 향기 - 전북>을 잘 듣고 있다며 사연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인터넷 검색하면 주소를 금방 알 수 있다’고 말하려다 퍼뜩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주소를 불러주었더니 며칠 후 편지가 도착했다. 점자 편지였다. 그냥 보냈으면 당연히 무슨 말인지 알지 못했을 터, 배려깊은 승렬씨는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아 해석(?)된 편지도 첨부한다는 친절한 설명을 빼놓지 않았다. ‘예술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소개한 그는 ‘시를 쓰고 싶고 좋은 영화도 보고 싶지만 정작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사회에 대한 불평이나 불만이 아니라 ‘단지 ○○○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었다. 편지로 소개하기엔 아쉬움이 남아 전화 인터뷰를 했다.

▲ 김사은 PD가 진행하는 <아침의 향기-전북> 프로그램 홈페이지 캡처
선천적 시각장애를 겪고 있지만 그는 매사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다. 안마시술사로 도시에서 생활하다 부모님의 권유로 몇 년전 진안으로 내려와 부모님과 함께 사는 서른다섯살 꿈많은 청년이라고 소개하는 것이 맞겠다. 목소리는 20대 후반처럼 맑고 씩씩한데 30대 중반이라는 말에 나도 깜짝 놀랐다. 아직도 개선되지 않은 사회의 부정적인 시각에 대해서는 ‘안타깝다’는 표현을 사용했고 “장애인들이 사회로부터 기대하는 게 많은데 장애인이 먼저 손을 내밀어야죠”라는 말은 신선했다. “라디오는 제 전부예요”라는 말에서는 큰 책임감을 느꼈다. 승렬씨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천성이 밝은 분 같아요’ ‘목소리가 씩씩해서 듣기 좋네요’ ‘용기를 잃지 말고 사세요’ ‘승렬씨 말에 제가 더 힘이 나네요’ 같은 문자가 쇄도했다. 남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방송 후 승렬씨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방송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제가요~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뭐든지 경험하고, 체험하고 싶어요.”

진안에서 익산은 직선거리로 1시간30여분 남짓 걸리지만 자가용이 있을리 만무한 승렬씨가 어떻게 익산까지 올지 걱정이 되었다. 장애인복지관의 차량이 승렬씨 집에서 진안 터미널에 데려다주면 진안에서 전주까지 버스로 50분, 전주 터미널에서 익산 가는 버스로 환승, 다시 50분, 익산 터미널에서 방송국까지 택시로 10분. 차량이 바로 연결되어도 어림잡아 2시간30여분은 좋이 소요되는 여정인데 장애인으로서는 더 어렵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는데 역시 경쾌한 답변. “괜찮아요. 좋은 분들이 많아서 잘 안내해주세요.”

사흘 뒤로 날짜를 정하고 달력에 표시를 해두었다. 이튿날 다시 걸려온 승렬씨의 전화. “제가 방송국에 가기로 한 날 비 소식이 있네요. 아무래도 비가 오면 장애인이 다니기에 위험하거든요. PD님 괜찮으시면 그 다음날로 잡죠.” 맞다. 비 소식이 있었다. 그것도 많은 비가 올 거라는 예보. 시각장애인은 비오는 날 거동이 더 불편하겠구나. 약속을 조정해서 그 다음날 오후 세 시로 시간을 정했다.

승렬씨가 오기로 한 날, 외부에서 점심을 하고 사무실에 돌아오니 승렬씨가 일찍 와 있었다. 목소리만 듣다가 처음 만나는 자리인데도 매우 오랫동안 친분을 나눈 사이처럼 친근했다. 내가 밀린 업무를 처리하는 동안 기획운영팀장인 김도현 교무님이 원불교 중앙총부를 안내하기로 했다. 3층을 어렵게 올라온 승렬씨가 다시 3층을 내려가야 하는 상황이 미안하다. (방송국으로 사용하는 건물은 매우 오래 전에 지어진 3층짜리 건물이라서 엘리베이터가 설치돼있지 않다.) 교무님이 어찌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데 승렬씨가 말한다. “시각장애인을 안내할 때는요, 장애인의 손이나 팔을 잡으면 안되구요, 그냥 가만히 계시면 제가 팔꿈치를 잡아요.” 나도 옆에서 배웠다.

두 시간 여 원불교 익산 성지를 돌아본 승렬씨는 조금 피곤하지만 목소리에 생기가 묻어났다. “아 정말 좋았어요. 공기도 맑고 경치도 수려하네요.” 어떻게 아느냐고 묻자 슬며시 미소를 짓는 승렬씨. “설명을 하면요, 상상을 하면서 다 볼 수 있어요.”

방송국 구경(?)을 하고 내 차로 전주 터미널까지 가는 도중 승렬씨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각장애인에 대해 몇 가지 더 알게 되었다.

점심시간 식당에 갔다가 문전박대 당한 이야기, (일부 업소 주인들은 장사에 방해가 된다며 장애인을 거부한다고 한다. 이 얘기를 하면서 승렬씨는 이런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하면서도 식당 주인들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다.) 식당에서 사용하는 용기도 장애인에게는 위협이 된다. 펄펄 끓는 뚝배기에 손이나 입이 덴 적도 많기 때문에 넓은 용기에 주면 좋겠고 반찬의 위치를 알려주면 큰 도움이 된단다. 안내견의 경우 사람들이 지나치게 반응을 보이면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주인과의 유대감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므로 쓰다듬거나 먹는 것을 줘도 안 된다. (장애인이 경제적 요인 등 안내견을 돌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으면 안내견도 유지할 수 없다고 했다.)

승렬씨는 영화를 보고 싶다고 했다. “하하~ 다 볼 수 있어요. 옆에서 설명해주면 상상하면서 볼 수 있어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니까 영화관에 못가죠. 명화, 오래된 명화나 명작을 좋아해요. 장애인들도 문화생활을 했으면 좋겠어요.”

나에겐 일상의 일들이 승렬씨에겐 매우 ‘고급스런’ 문화적 혜택이었다니…. 헤어질 때까지 “그래도 세상엔 좋은 사람이 더 많다”고 확인시켜준 승렬씨, 그가 진안행 버스에 몸을 싣고 터미널 광장을 빠져나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승렬씨는 모르겠지만.

승렬씨와 만남 이후 장애인을 위한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이 깊어졌다. 우선 전주 풍물시동인 조미애 회장과 상의를 거쳐 시각 장애인들을 위한 시낭송 CD를 제작하기로 했다. 7~8월중 풍물시동인 회원들의 시를 방송국에서 녹음할 계획이다. 그가 제안한 대로 방송에서 ‘장애인 소식’을 담은 코너도 필요하다. 라디오는 승렬씨같은 장애인에게 친구이자 전부니까. 시각장애인을 위한 영화감상은 어떨까. 상영실을 빌려 중간 중간 설명을 담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영화 관람도 승렬씨에게 기쁨이 될 듯 하다.

며칠 전 서울에 갔다가 ‘김치말이밥’을 먹었다. 얼음이 둥둥 띄워진 시원한 김치국밥은 별미였다. 승렬씨같은 시각장애인에게는 화상의 위험이 없어서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식사 후 시립박물관에서 ‘르느와르전’을 관람했다. 아름다운 빛과 색의 조화, 그 오묘한 예술의 세계에 흠뻑 젖어 행복해하다가 승렬씨가 생각났다. 어떻게 이 그림을 설명할 수 있을까. 승렬씨는 말 할 것이다. “괜찮아요. 옆에서 설명만 해주면 상상으로 다 볼 수 있어요.” 그리고 그는 덧붙인다. “제가 라디오를 좋아하는 건요, 상상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좋아요.”

시각장애인 승렬씨와 보낸 반나절은 지금도 내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1965년 볕 좋은 봄, 지리산 정기가 서린 전북 남원에서 태어났다. 원광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행정대학원에서 언론홍보를 공부했다. 전공을 살려 지방일간지 기자와 방송작가 등을 거쳤고 2000년 원음방송에 PD로 입사, 현재 편성제작팀장으로 일하며 “어떻게 하면 더 맑고 밝고 훈훈한 방송을 만들 수 있을까?” 화두삼아 라디오 방송을 만들고 있다.

지역 사회와 지역 문화에 관심과 애정이 많아 지역 갈등 해소, 지역 문화 발전에 관련된 라디오 프로그램을 기획, 제작해왔다. 수필가로 등단, 간간히 ‘뽕짝에서 삶을 성찰하는’ 글을 써왔고 대학에서 방송관련 강의를 시작한지 10여년이 넘어 드디어 지식이 바닥을 보이자 전북대학교 대학원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며 용량을 넓히려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최근 전북여류문학회장을 맡았다. 방송에서나 인간적인 면에서나 ‘촌스러움’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다. http://blog.daum.net/kse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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