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한 달 가량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필자로서는 이 글이 결국 반성문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반성문은 쓰되 왜 ‘반성문’을 써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독자들에게 보고해야 할 것 같아 이 글을 올린다.

일부언론의 평가와는 달리, 결코 정당 대리전이 아니었다. 민주당 추천위원들이 오히려 민주당을 끌고 가는 형국이었다. 민주당 문방위 소속 의원들만이라도 ‘국회의원 배지를 걸고’ 언론악법 저지투쟁에 나서겠다고 최근 이종걸 의원이 밝힌 것처럼, 민주당 전체 의원들이 생각밖에 ‘언론악법저지투쟁’에 대해서 소극적이던 분위기를 민주당 문방위 소속 의원들이 아주 적극적으로 ‘저지투쟁’의 입장을 밝힘으로써 민주당 전체의 분위기를 일신하고 있다.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민주당 추천위원들과 민주당 문방위 소속 위원들의 10차례 가량의 연석회의가 산출한 결과물이라고 자부한다.

▲ 지난 3월23일 출범한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회의에서 위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여의도통신
또한 민주당 원혜영 원내지도부와 더불어 이강래 원내지도부에게 수차례 연석회의를 제안하고, 이 회의에서 민주당이 혹여 오판하여 ‘임시국회 개원’을 동의할까봐 당부하고 또 당부했다. 임시국회는 이미 한나라당 의총에서 결의한 바와 같이 ‘긴급민생법안으로서 언론관계법’을 반드시 관철시키겠다며 여는 것이어서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이다. 미디어위 민주당 추천위원들의 강력한 요구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민주당은 개원 조건으로 ‘언론관계법 입법처리 불가약속’을 내걸었고, 임시국회의 개원은 여전히 안개 속에 있다.

한나라당 추천위원들과 전혀 다른 행보를 해 온 것이다. 한나라당 추천위원들의 경우, 여론조사를 하느냐 마느냐 하는 결정조차 한나라당 문방위 소속 의원들에게 물어보고 와서 입장을 밝히는 수준이었다. 심지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인한 추모기간 1주일을 100일의 시한부 활동 기간에 넣을 수 없다는 민주당 추천위원들의 입장에 대해서 한나라당 추천위원들은 결국 한나라당에 가서 물어보고 오겠다며 결정을 미루었고, 그 결과 2주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이런 해프닝을 벌여 110일로 활동기간이 연장되었지만 그들은 부끄러워할 줄 몰랐다.

‘위원회’라는 조직은 그야말로 스스로 결정하는 독립기구의 성격을 가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 추천위원 일부는 끊임없이 한나라당의 허가를 취득해야 움직이는 꼭두각시 놀음에 빠져 있었고, 스스로 꼭두각시임을 내외에 과시했다. 회의 공개, 회의 중계, 공청회, 여론조사, 실태조사 등 어느 하나 스스로 깔끔하게 결정하여 합의한 경우가 없었다면 이해할 수 있을 터.

그래서 미디어위 민주당 추천위원들은 ‘정당의 대리전’이라는 양비론에 대해서 결코 수용할 수 없는 것이다. 위원회라는 조직위상에 걸맞게 독자적인 판단과 결정을 해 왔지만, 한나라당 추천위원들은 일부가 여론조사 실태조사 또는 다른 운영에 관한 사안 몇몇에 대해서는 받아들일 수 있다는 개인적인 의견을 피력하다가도 한나라당 추천위원간 회의만 하고 오면 기존의 입장을 포기하는 사태가 줄을 이었다.

▲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 ⓒ여의도통신
이것을 밖에서 미디어위원회를 지원할 때는 몰랐다. 하지만 들어가서 보니 민주당 추천위원과 논의하는 파트너는 한나라당 추천위원이 아니라 한나라당 문방위 소속 의원들, 특히 나경원 의원이었던 셈이다. 나경원 의원이 ‘여론조사 안돼. 여론조사는 맹점과 허구성이 많아’ 하고 공개발언을 하면 한나라당 추천위원들은 비슷한 논리로 ‘안돼’를 주장했다. 나경원 의원이 ‘어떻게 입법과정을 여론조사를 통해서 결정할 수 있느냐’고 발언하면 한나라당 추천위원들이 앵무새처럼 유사한 발언을 쏟아내곤 했다.

그런 논리가 얼마나 억지인지조차 검토하지 않는 한나라당 추천위원들의 모양은 사나웠다. 언제 여론조사 결과로 언론관계법을 결정하자고 했는가? 그리고 사회적 논의기구로서 여론수렴의 과정을 활동의 핵심 기능으로 부여받은 미디어위에게 언제 기존에 발의된 법안의 개폐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는가? 미디어위가 부여받은 임무는 단지 여론조사, 지역 공청회, 전문가 공청회 등을 통해서 국민들의 생각이 어디 있는지, 어떻게 판단하고 평가하고 있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언론관계법에 대한 여론을 수렴해서 국회에 전달하는 일이 핵심 활동이고, 그 후의 문제는 국회에서 논의하고 실제로 개폐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은 마치 미디어위가 여론조사를 하면 그것이 곧 발의된 한나라당 법안의 개폐 여부를 결정하는 것인양 거짓선동을 일삼았고, 이를 한나라당 추천위원들은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그대로 읊어댔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언론학자나 신문방송 현업종사자들의 80%가량이 반대하고, 일반국민 70%가량이 반대하는 법안을 내놓은 나경원 의원은 국민들의 여론이 무서웠을 터. 결국 회피의 억지 논리를 만들어내고 한나라당 추천위원들이 이를 진리인양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민주당 추천위원들 대부분이 마지막까지 이런 한나라당 추천위원들을 대상으로 설득에 설득을 거듭했다. 애초 시작 때부터 나왔던 ‘미디어위에 기대할 것이 없다’는 지레짐작을 혁파하고 합의라는 교집합을 만들기 위해서 분투했다. 이미 판이 깨졌으면 벌써 깨졌어야 했는데, 민주당 추천위원 다수는 여론조사가 가능한 마지막 며칠이 남을 때까지도 설득하자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이미 20일 가량 남겨두었을 때 민주당 추천위원들을 설득하며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으니 그냥 정리하자’는 입장을 분명히 했으나, 민주당 추천위원들의 인내심은 상상 밖이었다.

‘혹시나’가 ‘역시나’로 끝났다. 하지만 민주당 추천위원들이 마지막까지 꼭두각시 한나라당 추천위원들을 파트너로 인정하며 설득하려 한 과정은,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불만이었지만, 결코 무시하거나 폄훼해서는 안되는 소중한 민주적 태도였다. 대부분이 ‘기대할 것 없다’고 평가해 왔고, 결과적으로 ‘기대할 것 없는 상태’로 파국을 맞았지만, 그 과정에서 민주적 원칙에 입각한, 필자를 제외한, 민주당 추천위원들의 노력은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곱씹어 볼 만한 민주적 태도로 기억하고 싶다.

▲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전체회의.모습. ⓒ여의도통신
100일 중 거의 30일을 끌면서 회의 공개, 회의 중계 등의 합의를 끌어내었던 초기 미디어위를 보면서 기대할 것도 있었고, 판을 깨지 않아도 될 것 같았는데, 결국 판은 깨졌고, 민주당 추천위원들이 먼저 판을 깰 것이라는 예상도 맞아 떨어졌다. 행위로 보면 민주당이 자리를 박차고 먼저 일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활동한 기간이 한 달 가량에 불과하지만, 소통의 조건과 불통의 조건 차이는 뚜렷했다. 소통의 조건은 스스로 자율적인 결정이 가능한 사람들이 하나의 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회 내에서 결정된 내용이 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율적인 결정이 아니라 배후의 특정인이 조정하고 지침을 내리지 않으면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과 자율적인 결정을 내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만났을 때는 결코 소통이 아닌 불통의 불만만 누적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학습한 기간이었다. 한나라당 추천위원들의 배후에는 나경원 의원이 버티고 있었고, 우리는 나경원 의원과 직접 토론하지 못하고 엉뚱하게 나경원 의원의 지침을 받는 한나라당 추천위원들과 논의하는 우를 범한 것이다.

4월8일 당시, 미디어위에 참가하지 않은 채, 프레시안에 ‘창비주간논평’으로 “미디어국민위, 힘들지만 전진하고 있다”는 글을 올렸던 필자로서는 독자들에게 낙관적인 전망을 유포함과 더불어 미디어위에 기대할 것 없다는 독자들의 주장에 반론을 펼쳤던 것을 사과드린다. 밖에서 봤던 미디어위와 안에서 겪었던 미디어위는 다른 세상이었다.

상식과 몰상식의 전선에서 상식이 몰상식에게 어이없이 질 수 있다는 체험은 개인적으로 오래오래 곱씹어야 할 화두로 삼고 숙고하고자 한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