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이 제59주년 6·25 계기 안보홍보 이벤트라며 준비한 ‘안보신권’이 초여름 더위에 일찍부터 지친 네티즌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국정원의 나라사랑 하는 마음이 절절히 담긴 ‘안보신권’, 차근히 살펴보자.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나라를 수호하는 무술비법전서가 있었으니, 사람들은 이를 안보신권이라 불렀다. 이제 국정원에서 안보신권을 전수한다.”
제1장, 열공신법
“깨달음을 통해 적을 먼저 알아야, 진정한 힘을 얻을 수 있다! 열공신법으로 적을 제압하라!”
1. PC방 등지의 외진 구석에서 인터넷을 이용하여 불순내용을 게재, 전파하고 PC작업 후 황급히 자리를 이탈하는 사람이다. 등지고 PC로 작업하는 모습이 캐릭터의 특징이다.
첫 단계부터 난항이다. 캐릭터의 특징만으로 ‘색출’해 낼 수 있는 경지라고 하는데, 아무나 도달할 수 있는 경지는 분명 아니어 보인다. 시작부터 불안하다. PC방 알바 경험상 황급히 자리를 뜨는 손님의 8할은 ‘야동’매니아 분들이었는데… 그렇다면, 여태 숱하게 봐 온 야동 마니아들이 실은 암약하는 간첩, 주요 부위 모자이크 처리된 화면은 간첩 기호를 은폐했던 것이란 말인가. ‘야동’으로 이룩되는 간첩 교육, 성인 좌익사업 주의하자~!
2. 남북경협·이산가족 상봉 등을 구실로 통일운동을 하자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손을 얼굴에 대고, 은밀하게 말 거는 사람이다.
오호라, 통재여. 간첩이 내 주변에 있으심이다. 친한 후배 중 한 명이 민간 단체에서 대북 지원 사업을 담당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이걸 어쩐단 말인가. 슬슬, 초조해진다. 그러고 보니 그 아이 술자리에서 ‘통일’에 대해서도 여러 번 이야기했었다. 뭐야 ‘간첩이었어?’ 그럼 난, 그 아이에게 밥도 술도 여러 번 사줬는데, 이거 혹시 간첩 공작금?
지난 6월 10일, ‘반정부’ 집회가 한창이었던 시청 근처에서 봤다. 그래그래. 막대기를 들고 있었고, “조폭도 자기 구역을 위해 쇠파이프를 드는데, 민주주의를 위해 쇠파이프를 왜 못들어!”라고 고래고래 소리치던 대여섯 명의 아저씨들을 만났었는데. 이들이 간첩이었나. 그 모양새를 보고 난 ‘경찰프락치’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때 신고를 했어야 했다.
4. 김일성 부자 등을 게임캐릭터 등에 사용하면서 찬양하는 사람, 김일성 love가 쓰여진 피켓을 든 사람이라고?
어쩌지. ‘닌텐도’를 뛰어 넘는 확장 불가 ‘명텐도’는 본 적이 있는데. 김일성, 김정일이 캐릭터로 등장하는 게임은 아직 본 적이 없다. 무엇보다 큰 깨달음은 간첩도 ‘음지’에서 게임을 하는구나.
5. 군사, 산업시설 등을 촬영하거나 경비실태를 탐문하는 사람. 카메라를 가지고 몰래 찍는 모습을 포착하면 된다는데.
이상하다. 비무장지대와 대인지뢰, 민통선 지역을 대상으로 작품활동을 한 이시우 ‘평화’사진작가에 대해 경찰이 ‘국가보안법 제5조(반국가단체 자진 지원 등) 및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는데, 법원 1심은 물론 검사 항소심에서도 무죄 판결이 난 적이 있는데. 군사시설 촬영한다고 국가보안법 위반이라고 하면 이건 무고죄에 해당하는 범죄인데. 어떻게야 하는 거지.
제2장. 의심강추
“어느 누가 적일지 아무도 모른다. 정신을 집중하여 수상한 기운을 알아채라!”
보통, 표시가 될 만한 지점에 표시를 하는 건 당연한 행위, 동어반복이 아닌가. 그리고 그건 보통 애들이 많이 하던데, 역시 간첩은 이미 교육에 스며들었단 뜻인가. 보물찾기 못하고, 스쿠버 다이빙 못하고, 책도 못 보고, 스터디도 가려서 해야 하면 대체 누가 적이라는 소리야? 이것저것 못 하게 하는 사람이 간첩이야 이들의 주변에 있는 사람이 간첩이야
제3장. 즉시신공
“한 손가락에 내공을 모아 귀신 같은 스피드와 파워로 적을 제압하라!”
국정원의 안보신권을 터득하기에 내공이 부족한가 보다. 도통 권법마다 이해되지 않고, 아무도 의심되지 않는다. 관두련다. 연마를 마치면 선물도 준다던데. 넷북 정말 필요했는데, 적도 아닌 사람들 무고하게 111로 신고하면서까지 득템할 것은 못된다 싶다.
늘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국정원의 실체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았는데, 이제야 알겠다. 음지에서 무술을 연마하고 있었다는 것을. 21세기, 유비쿼터스 시대와는 어쩐지 어색한 조합이기는 한데. 그래도 ‘음지’에서 오래 계셨으니까.
아, 그래서 내공이 부족했구나. 음지에서 일하는 분들과 달리, ‘음지를 지양하고, 양지에서 살고 있’는데 어찌 ‘안보신권’ 따위를 터득할 수 있었겠어.
잃어버린 10년을 찾겠다고 그렇게 아등바등하더니만 잃어버린 10년, 국정원과 문화부에서 찾은 것이 고작 ‘대한늬우스’에 반공 영화 버금가는 ‘안보신권’인가. 케케묵은 ‘대한 늬우스’와 예로부터 전해 내려온다는 무술비법전서인 ‘안보신권’에서는 새까만 먼지가 풀풀 날릴 뿐이다. ‘녹색 성장’이라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한켠에서 오염물질 가득한 유물들을 굳이 꺼내들 바에, 그냥 ‘음지’로 다시 들어가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