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하러 간 거면 애도가 맞는데, 선교하러 간 거면 죽어도 할 말 없다.”

고 엄용선씨 사망 기사에 올라온 댓글입니다. 비판하는 분들의 초점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알려진 것처럼 엄씨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입니다. 비기독교국가에 자원봉사하러 갔다면 선교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입니다.

2007년, 저는 샘물교회 피랍사건과 관련한 취재를 했습니다. 기사는 총 세 개를 썼는데, 첫째는 아프간피랍사태와 관련한 언론보도 태도에 대해 네티즌의 비판을 어떻게 볼 것인가였고, 둘째는 그렇다면 비난이 집중되고 있는 박은조 목사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그리고 셋째 기사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한민족복지재단 의료봉사팀’과 ‘샘물교회 단기선교팀’ 사이의 간극문제를 다뤘습니다.

세 기사에 대한 네티즌 반응은 극에서 극이었습니다. 첫 번째와 세 번째 기사는 비교적 호평을 받았습니다만, 두 번째 기사는 ‘샘물교회로부터 돈 받고 기사를 썼냐’, ‘기자가 개독이냐’ 식의 비난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나중에 한 기독교 NGO가 샘물교회 피랍사태와 관련한 자료집을 발간하면서, 제 기사를 신문사의 허락 없이 재수용했는데, 덕분에 일부 네티즌으로부터는 ‘피랍사태 관련 5적’으로 제 이름이 거론되기도 했습니다.

‘봉사냐 선교냐’라는 쟁점은 사건 초기부터 취재에 나선 언론들이 모두 혹했던 점이었습니다. 다만 납치된 사람들의 목숨이 달렸기 때문에 일종의 ‘엠바고’가 걸려있었지요. 샘물교회나 한민족복지재단 측도 언론에 적대적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언론은 “돌아오기만 해봐라…”는 식으로 벼르고 있었고, 실제 피랍된 분들이 한국으로 돌아온 뒤 일부 언론은 그동안 준비했던 특집기획을 쏟아냈었습니다.

네티즌은 “개독교가 다 거기서 거기 아니냐”라는 생각을 하는 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만, 샘물교회 사건을 취재하면서 제가 가졌던 궁금함은 교회개혁을 주장하는 ‘복음과 상황’, ‘뉴스앤 조이’의 발행인을 맡았던 박은조 목사가, 단기선교를 위해 신자들을 파견했다면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파견했는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네티즌과 일부언론에서 박은조 목사가 뉴라이트전국연합 공동대표를 맡았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평소 뉴라이트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이들 매체관련자가 거론되는 이유도 궁금했습니다.

역설적으로 ‘박 목사와 뉴라이트가 관련 없다’는 것을 밝힌 것은 당시 보수인터넷 매체에 기고하던 전경웅씨(최근 진중권씨와 변희재씨 사이의 논란에서 이 분의 이름이 다시 거론되더군요)와 제 기사였습니다.뉴라이트전국연합 쪽은 ‘네티즌들의 비난 여론에 얽혀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반응이었습니다.

그 뒤 박 목사가 취한 행보 등에서 비판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취재결과 물의를 빚어온 대형교회의 비리와 박 목사를 같이 거론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었습니다. 물론 봉사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단기선교 문제는 남습니다.

한국의 개발NGO 상당수가 종교적 베이스를 깔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이들이 진행하는 긴급구호나 현지 활동에서 종교적 색채를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이건 기독교든 불교든 마찬가지입니다. 더 확장해서 말한다면 엄밀히 말해서 한국의 KOICA나 일본의 JAICA와 같은 공식기구의 활동 역시 ‘국익’이라는 목적과 구분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현지의 급진적인 단체들은 NGO의 활동 역시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것이 사실이지요.

이번 엄씨의 피살을 두고선 그때처럼 많은 논란이 벌어지진 않는 것 같습니다. 일단 납치에서 살해당하기까지 기간이 짧았고, 한국팀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닌 국제팀의 일원이었다는 점도 한 이유인 것 같습니다. 올해 1월 마지막으로 업데이트된 고인의 블로그를 살펴보면(오늘 다시 확인해보니 임시 제한접근 조치가 취해졌군요), 사회 주요 이슈에 대한 고인의 생각은 보통 블로거들과 다를 바가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 고 엄용선씨의 블로그 화면 캡처
동아·조선일보 등을 보면 ‘MK사역’ 등을 거론하며 엄씨가 선교훈련을 받고 갔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김선일씨 케이스나 아프간 피랍사태 당시 확인되지 않은 수많은 ‘~카더라’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중 일부는 실제로 확인된 사실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다 까발리는 것이 언론이 해야 할 책무일까요.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뱀발로 덧붙이자면, 어린시절 부활절 달걀에 혹해서 교회를 간 적은 있습니다만, 현재 저는 기독교를 믿지 않습니다.

경향신문이 발행하는 시사주간지 Weekly경향의 기자다. 사회팀장을 맡고 있다. 시민단체 KYC 등과 함께 풀뿌리공동체를 소개하는 <도시 속 희망공동체 11곳-풀뿌리가 희망이다> 책을 냈다. 괴담&공포영화 전문지 또는 ‘제대로 된(또는 근성 있는)’ 황색잡지를 만들어보는 것이 꿈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