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이자 공영방송인 KBS내부에서 “KBS가 ‘최순실 국정 농락’이라는 희대의 사건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했다”며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 책임 사퇴 ▲‘최순실 국정 농락’ 관련 다큐와 토론프로그램 편성 ▲뉴스 편집에 취재·제작 실무자 의견을 반영하는 제도적 장치 마련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사진=KBS, 미디어스)

언론과 방송에서 ‘비선 실세’ 최순실씨와 관련된 의혹 보도들이 쏟아져나오며 파문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방송계에서는 종합편성채널 JTBC와 TV조선이 관련 단독 보도를 잇따라 보도하며 이슈를 선점, 이끌어 가고 있는 모양새다. 하지만 지상파이자 공영방송인 KBS는 관련 보도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내부의 평가다.

전국언론노조(위원장 김환균, 이하 언론노조) KBS본부(본부장 성재호)는 26일 성명을 내고 “‘최순실’ 국정 농락 뉴스를 보면서 정신이 아득할 정도로 끔찍하고 비참하다”며 “이 참혹한 기분은 단지 최순실 개인이 청와대와 국정을 농락한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기 때문만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언론사로서, 공영방송으로서, 그리고 한 때 가장 신뢰받고 영향력이 있는 뉴스를 만들었다는 KBS의 구성원으로서 이 희대의 사건 앞에서 KBS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쓸모없는 존재로 떨어졌음을 직접 우리의 두 눈과 귀로 확인해야 하는 현실이 우리를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고 강조했다.

언론노조 KBS본부는 “그토록 반대하고 무시하고 조롱했던 종편이었는데, KBS의 수백 명 기자들이 ‘오늘은 종편 뉴스에 무엇이 나올까?’ 긴장하며 기다리고, 베끼고, 쫓아가기를 서슴지 않는다”면서 “부끄러움도 모르고, 자존심도 버렸고, 자랑스러웠던 과거의 기억도 잊었다”고 개탄했다.

언론노조 KBS본부에 따르면, 지난 9월20일 KBS 보도 편집회의에 실무자 대표로 참석한 기자협회장은 ‘최순실’ 관련 이슈를 다룰지 의논조차 하지 않느냐며 보도 관리자들에게 항의했다. 이에 보도국장 등은 “최순실이 대통령 측근이야? 어떻게 측근이라고 장담할 수 있나?”라며 이를 묵살했다.

이외에도 10월5일 열린 노사 공정방송위원회에서 KBS본부 관계자는 ‘최순실’ 비리 의혹에 대한 전담TF를 구성하고 심층 취재에 나설 것을 사측에 요구했다. 그러나 보도본부장은 ‘특정 정치 세력의 정략적 공세에 불과하다’며 이를 일축했다.

침묵하던 KBS 보도책임자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불법행위 엄정히 처벌’ 발언이 있었던 20일 자사 기자들에게 ‘최순실 의혹’에 대해 독자적인 취재를 주문했다. 그리고 24일과 25일 종편과 신문의 보도로 대통령에 대한 ‘하야’와 ‘탄핵’ 얘기까지 흘러나오자 26일 아침 ‘최순실’ 사건 전담 T/F를 구성했다.

언론노조 KBS본부는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언론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길 바란다’는 보도본부장의 당부는 무능함인가? 뻔뻔함인가? 아니면 교활함인가?”라고 물으며 “KBS는 저잣거리의 안주로 전락했고, KBS 기자들은 손가락만 빨며 종편 기자들에게 귀동냥해야 하는 참담한 현실임에도 그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또한 동료 기자와 PD들에게도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지만 우리가 정말 공영방송 언론인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자기검열에 빠져 안주하고 있지는 않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자그리고 제작 현장에서부터 당당하게 요구하고 싸워나가자”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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