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우리에게 역사의 심판을 약속했습니다. 대통령 각하, 우리는 당신을 역사의 심판에 넘깁니다. 역사는 당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말해줄 것입니다.”

프랑스의 지성 에밀 졸라가 <로로르>지에 보낸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의 한 대목입니다. 이보다 3년 앞서, 에밀 졸라는 드레퓌스 재판의 실상을 폭로하는 ‘나는 고발한다’를 이 신문에 실었습니다.

올해 2월, 제가 몸 담고 있는 잡지에서는 ‘나는 고발한다’는 제목의 커버스토리를 진행했습니다. 아이디어는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가 주셨습니다. 조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진보나 보수 입장을 떠나, 공법학을 전공하는 입장으로 봤을 때도 현재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보면 법의 근본적 원칙이나 가치와 어긋난다는 생각이 든다.”

법학뿐 아닙니다. 인수위 시절부터 불거졌던 ‘아륀지’ 발언을 과연 영어영문학자나 영어교육자는 반길까요?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4대강마스터플랜에 대해 건축학 전공자나 토목공학 전공자는 과연 환영할까요. “닌텐도 같은 거 한번 만들어보지”라는 발언에 대해 IT관련 교수는 과연 동의할까요. ‘역사교과서 편향성 논란’에 대해 과연 역사학계에서는 동의할까요. 행정학자는 이명박 정부의 고소영 인사정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까요.

그래서 11개 분야 전공자들을 찾아 각각의 ‘전공자’ 관점에서 이명박 정부를 진단하는 기획을 진행했습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학계 인사들의 ‘분노’는 상당했습니다.

교육철학을 전공하신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는 ‘나치’가 대두될 당시, 당시 상황을 ‘오판’한 지식인의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나치, 즉 국가사회주의자들은 어느날 갑자기 국가권력을 장악한 것이 아닙니다. 총통제도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마련한 것이지요. (그전, 중고등학교 사회교과서를 검토한 기획이 있어 살펴보니 이 이야기는 이미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는 이야기더군요.)

현 정부를 과연 민간독재로 규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 시민사회나 학계에서도 논란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6월10일 서울광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듯, 87년 6월 항쟁 이후 22년 만에 민주주의의 위기가 가장 높은 위험수위에 도달했다는 데엔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지식인의 분노’를 취재할 3개월 전만 하더라도 전국적인 이슈가 된 교수시국선언은 대운하 시국선언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봇물이 터진 시국선언.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시국선언에 참여한 교수는 전체 교수에 비해 얼마 안되는 것으로 안다”고 이 사태에 대응하는 가이드라인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조선일보는 ‘전체 교수는 몇 명인데, 시국선언에 참여한 사람은 얼마’ 식으로 이 가이드라인을 구체화했지요. 보수언론은 지금도 이 포지션을 유지합니다. 전국적으로 번진 교수들의 시국선언을 “친노·좌파 성향의 교수들이 뭉친 것”으로 폄훼하고 있습니다. 익숙한 풍경입니다. 1987년 이른바, 4·13 호헌선언 뒤 시국선언에 대해 당시 당국이 쏟아붓던 비난도 유사했습니다.

시국선언 정국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나는 고발한다’ 기획을 진행하던 당시, 편집을 맡으셨던 부장은 제목을 이렇게 뽑았습니다. ‘청와대는 들으시오! 111년 전 에밀졸라의 경고를’. 하지만 청와대의 귀는 아직도 닫혀 있는 것 같습니다. 답답한 현실입니다.

경향신문이 발행하는 시사주간지 Weekly경향의 기자다. 사회팀장을 맡고 있다. 시민단체 KYC 등과 함께 풀뿌리공동체를 소개하는 <도시 속 희망공동체 11곳-풀뿌리가 희망이다> 책을 냈다. 괴담&공포영화 전문지 또는 ‘제대로 된(또는 근성 있는)’ 황색잡지를 만들어보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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