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기라는 유언을 남기고 우리곁을 떠나셨다. 서슬퍼런 MB정권의 공권력을 앞세운 먼지떨이식 보복 수사와 조중동의 하이에나식 물어뜯기 보도 앞에서 노 전 대통령은 너무나 미약한 존재였다. 사랑하는 가족과 자신을 도와준 후원인들을 일방적으로 수사하고 구속하는 엄혹한 정치적 탄압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은 구차한 변명 대신 온 몸을 던져 항거했다. 너무 슬퍼하지도 말고, 미안해 하지도 말고,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는 몇 마디 말과 함께….

MB정권 집권 이래 민주주의는 후퇴 정도가 아니라 초고속으로 역주행을 거듭하고 있다. 엄연히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집회, 결사 및 표현의 자유가 무력을 앞세운 공권력에 의해 원천 봉쇄당하고 있다. 민중의 지팡이 경찰은 시민들이 다니는 인도를 무단으로 점거한 채 시민들을 향해 되레 욕설을 하며 진압봉을 휘두르기까지 하고 있다. 정치적 중립을 생명처럼 여겨야 할 검찰은, 최근 퇴임한 임채진 전 검찰청장의 고백대로, 정권의 주문에 이리저리 휘둘리며 충견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정부 기관과 정책 연구기관들은 청와대의 독선적이고 일방적인 정책 추진에 대해 일언반구 못하고 ‘MB어천가’를 부르고 있다. 국회 다수를 차지한 한나라당은 청와대의 지원을 등에 업고 민심에는 등을 돌린 채 소수 기득권층의 이익만을 위한 각종 법안들을 일방적으로 강행처리하려 하고 있다. 이렇듯 군사독재정권하에서나 있을 법한 일들이 국민의 직접 투표로 출범시킨 정권하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의 작은 저항은 MB정권의 폭압에 의해 위축되었던 민심을 요동치게 만들었고, 작년 여름 경찰의 무차별적 강제 진압과 물대포로 꺼진 줄로만 알았던 촛불을 다시 점화시키면서 절망에 빠져있던 민주시민들에게 희망의 단비가 되고 있다.

그동안 수많은 피와 땀으로 힘겹에 쌓아 온 민주주의의 가치가 MB정권하에서 순식간에 와해되는 것을 지켜만 보던 시민들의 우려와 분노가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표출되기 시작했다. 서울대 교수들을 필두로 지성 집단의 시국선언이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초대의장 강희남 목사는 현재의 시국을 개탄하며 올곧은 생을 자결로 마감함으로써 남은 자들에게 울분과 함께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결연한 투쟁 의지를 북돋워주었다.

MB정권에 대한 비판 여론이 요동치자 정치권에도 변화가 일기 시작하고 있다. 대선과 총선 패배 이후 지금까지 무력감에 젖어 있던 민주당은 5년 만에 당 지지율이 한나라당을 앞서기 시작하자 MB악법 저지를 위한 장외투쟁을 선포하는 등 전의를 불태우며 일전불사를 결의했다. 또한 6·10 민주항쟁을 기념하는 범국민대회마저 불법 정치집회로 규정하고 서울광장 사용허가를 내주지 않는 MB정권과 서울시를 상대로 전날부터 서울광장에 천막을 치고 밤샘농성을 진행했다. 민주노동당은 MB정권의 쇄신을 요구하며 청와대까지 3보1배와 단식투쟁을 병행하며 정부 여당을 압박하고 있다. 여당인 한나라당에서는 쇄신파들이 당지도부 교체와 조기 전당대회 개최를 주장하면서 이를 둘러싸고 내홍이 일어났다. 비록 쇄신파들이 박희태 대표의 조건부 수용을 받아들이면서 잠잠해지는 듯하지만 최근의 여론악화와 당지지율 급락 등 민심이반의 심화에 따라 계파간 당내 갈등의 소지는 여전해 보인다.

이렇듯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수많은 국민들이 MB정권의 독선과 오만에 대해 분노하면서 민주주의 회복을 향한 염원을 불태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화산처럼 끓어오르는 민심을 헤아리기는커녕 한나라당 의원보다 더 한심한 작태를 연출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은 바로 미디어발전 국민위원회(미디어위원회)의 한나라당 추천 위원들이다.

모두가 주지하는 바대로 한나라당이 추진하려는 언론법 개정의 핵심은 사회 의제 설정과 여론 형성이 가능한 ‘뉴스를 할 수 있는 방송’ 즉, 지상파 방송, 종합편성채널, 뉴스전문채널 등을 신문사와 일반 사기업이 소유하고 경영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문제는 다른 법들과는 달리 언론관계법은 한 번 시행되면 다시 되돌리기가 거의 불가능한 비가역적 법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정을 추진함에 있어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고 사회적 합의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것이다.

기존 법안을 개정하는 것에 찬성하는 위원들이 개정이유에 대해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국민들을 설득하는 것이 상식임에도 불구하고 어찌된 일인지 저들은 그렇게 하고 있지 않다. 국민 여론을 파악하기 위한 여론조사는 고사하고 사사건건 말꼬리나 붙잡으면서 위원회를 파국의 나락으로 몰아가고 있는 여당 추천위원들의 작태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전인 지난달 19일부터 22일에 걸쳐 언론인과 언론 학자를 대상으로 언론법 개정에 관하여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조사 대상의 절대 다수가 한나라당의 언론법 개정에 반대하고 있음이 다시 한 번 밝혀졌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절반에 가까운 국민들이 서거 책임이 조중동 등 수구족벌언론에 있다고 인식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국민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실시한다면 그 결과는 불문가지다.

▲ 5.19~22 언론인, 언론학자 대상 언론법 관련 여론조사 결과(한국리서치)
한나라당 추천 미디어위원들은 위원회 출범 초기부터 방송사의 1인 소유지분 상한을 외국인에 대해서도 30%까지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방송에 참여하는 대기업의 기준제한을 아예 없애자고 하는 등 한나라당이 제시한 개정안보다 더욱 파격적인 내용을 주장하는 황당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이는 사회적 합의안 도출을 위한 발언이라기 보다는 한나라당의 언론법 개악을 실질적으로 측면에서 지원하는 행보라고밖에 볼 수 없다. 또한 지난주 금요일(5일) 한나라당 추천 위원과 일부 야당 위원이 대부분의 야당 추천 위원을 배제한 채 전체회의를 개최하여 기 합의된 여론수렴을 위한 모든 일정마저 일방적으로 파기해 버리는 등 독선적이고 야만적인 자세로 위원회 활동에 임하는 것을 보면서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실낱같은 희망마저 버리게 되었다.

어제(9일) 여당 추천 운영소위 위원들의 이유없는 불참으로 인해 민주당과 창조한국당 추천 위원들만의 운영소위가 개최되어 향후 일정 조정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결정된 내용은 기존의 합의안을 토대로 서거 국면으로 순연된 일정을 소화하자는 것이다. 대전지역공청회(6.17), 종합지역공청회(6.19), TV토론회 개최, 여론조사(수용자 인식조사) 실시 및 워크숍 개최 등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위원회에서 국민의 여론을 수렴하기 위해서 마땅히 수행해야 할 업무들이다. 야당 추천 위원들은 여당 추천 위원들에게 순연된 일정과 관련해 내일(11일) 오전까지 일정 소화 의지에 대한 답변을 주문했다. 여야 간사 합의로 활동 종료 시점도 6월25일로 연기된 만큼 마다할 이유가 없다. 보고서는 활동 종료 이후에 별도의 기간을 정해서 작성해도 무방하다.

지금까지 미디어위원회 활동 과정을 지켜 본 사람들이 여당 추천 위원들이 위원회 활동을 발판삼아 향후 개인적인 영달을 추구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렇지 않다면 지난달 8일 최상재 위원과 양문석 위원이 제안했던 향후 일정 기간 미디어 관련 임명직 비진출 결의 제의를 수락하지 못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미디어위원회에 참여하는 모든 위원은 지금이라도 위원회 활동 종료이후 일정기간 동안 미디어 관련 임명직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윤리 선언을 함으로써 자신들에 대한 국민들의 의구심을 해소시켜야 할 것이다.

일정 소화에 대한 의지도 없고 윤리 선언에 대한 소신도 없다면, 이제는 모든 논의를 중단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올 때다.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최상재)은 전국 150여개 언론사 노동조합과 조합원 1만8000여명이 속한 전국 단위의 산별노조입니다. 분야별로는 신문, 방송부터 인터넷매체, 출판, 인쇄, 광고, 언론관련기관까지 다양합니다. 언론노동자의 권익 향상은 물론 언론자유 및 국민의 알권리 보장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며 싸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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