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미래창조과학부는 플래그십 프로젝트 추진과 지능정보기술에 최적화된 연구를 수행하겠다며 기업·대학·연구소 등 민간주도의 'AIRI(지능정보기술연구소) 설립을 발표했다. 3월에는 대통령이 주재하는 민관합동 간담회에서 '지능정보산업발전전략'을 발표하며 민간공동투자에 의한 지능정보기술 연구소 설립을 추진하기로 했다. 민간 주도의 자율적 연구소를 만들겠다는 취지였다. 이에 삼성, LG전자, SKT, KT, 네이버, 현대자동차, 한화생명 등 7개 기업이 각각 30억 원씩 총 210억 원을 출자해 AIRI 설립했다.

그러나 민간주도의 자율적 연구소를 만들겠다고 했던 것과는 달리, 사실상 미래부에 의해 만들어진 '관제특혜연구소'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심지어 AIRI에 특혜를 주기 위해 미래부가 수차례 불법을 저질렀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AIRI 추진단은 미래부 소속?

최양희 미래부 장관은 지난 3월 당시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부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소장인 김진형 씨를 'AIRI 추진단'의 단장으로 위촉했다.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연합뉴스)

민간기업들이 상호 자율적으로 출자해 회사를 만든다더니, 설립을 추진하는 단장을 장관이 위촉장을 수여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위촉장을 주려면 출자사 대표들로 구성된 회사 발기인 대표가 위촉장을 주는 것이 상법상 주식회사 설립취지에 맞다는 얘기다.

AIRI 추진단장으로 위촉된 김진형 씨는 지난 4월 NIPA 부설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IITP)에 AIRI 추진단장 명의의 공문을 보냈다. 공문의 내용은 AIRI의 운영을 위해 선임연구원급 이상 1명을 파견해 달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당시 NIPA 부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소장이었던 김진형 씨는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직원 1명을 임의적으로 파견해 근무시키고 있었다.

이렇게 구성된 AIRI 추진단의 실무진에 NIPA 인사만 4명이다. 여기에 AIRI 추진단에 공식적으로 파견 나간 미래부 지능정보추진단 최 모 팀장까지 합치면 5명의 직원이 동원된 셈이다. 정식파견 이외에도 김진형 씨가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장 및 연구원설립추진단장 겸임 기간 동안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직원 등은 지능정보기술연구원 설립을 위한 업무에 동원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 혈세로 급여를 받는 미래부 산하기관 직원들이 회사 설립을 준비하는 민간추진단장의 요청에 응해도 되는 것인지 의문이다. NIPA 운영규정에서는 직원의 '인력교류' 필요시 각 부설연구소 및 센터는 NIPA 원장과 협의해 행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런데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와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는 원장과의 협의과정 없이 연구소장 및 센터장이 직권으로 파견을 결정했다. 명백한 인사규정 위반이다.

불법 저질러가며 AIRI 지원하는 미래부

지난 7일과 14일 열린 미래부 국정감사에서는 미래부가 AIRI에 연간 150억 원씩 향후 750억 원의 정부 정책과제를 지정해 지원해주겠다고 약속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에 대해 실체도 능력도 검증되지 않은 설립 1년차 연구원에 미래부가 정책지정연구과제를 지원한다는 것은 특혜라는 지적도 나온다. 아직 공식적인 공모 공고도 되지 않은 연구원이 150억 원의 연구과제 수행을 약속받았다는 것은, 미래부가 공모절차를 무시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미래부 2016년도 예산서 '과제공모형태별 투자비중' 및 '사업추진절차'에서는 '지정공모' 또는 '자유공모'를 위한 공고를 하도록 돼 있다. 미래부의 모든 예산은 2016년도 예산심사 시 국회에서 승인돼 확정된 것이기 때문에 장관이 자의적으로 '정책지정'으로 바꾸는 것은 불법이다. 미래부가 불법을 저지르면서까지 AIRI에 특혜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향후 사업 추진 계획까지 안내해 특혜를 줬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AIRI 실무추진단을 총괄했던 팀장의 증언에 따르면 향후 민간연구소가 어떠한 연구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논의했으며, 회의참석자는 이들 외에도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의 홍 모 단장이 참석해 지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인공지능 '딥뷰' 연구를 담당하고 있는 '빅데이터인텔리전스연구부' 등이 실제 회의에 참석하는 등 AIRI가 어떤 방향으로 연구할 지에 대한 가이드 역할을 했다. 결국 미래부 산하의 인공지능 관련 전체 연구소 및 진흥원이 향후 AIRI의 과제 선정 방향까지 결정해 준 셈이다.

AIRI 설립 과정에서 미래부가 팀장을 추진단에 공식적으로 합류시키고, 제반 준비 사항을 미래부 산하기관 직원들이 나가서 지휘하고 준비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AIRI를 순수한 민간연구원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다.

안정상 수석전문위원은 "여러 정황을 비춰봤을 때 AIRI는 껍데기는 민간연구원, 실제로는 관제특혜연구원이 명확하다"며 "박근혜 정부에서 진상 규명이 어렵다면 차기 정부에 가서라도 반드시 진상을 밝히고, 그 결과에 따라 책임질 자들은 처벌을 받게 하고, 나아가 연구원 존속 여부를 결정하는 등의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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