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후 불법집회가 우려된다는 막연한 이유로 전경버스로 봉쇄해왔던 서울광장이 시민들에게 지난 4일 전격 개방됐다. 빗발치는 여론에 밀려서일 게다. 그러나 서울광장이 시민들에게 완전히 돌아온 것은 아니다. 경찰은 언제든 광장을 다시 봉쇄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차벽으로 막혀 있던 서울광장이 시민들에게 개방된 그 날, 중국 베이징의 상징인 텐안먼 광장은 봉쇄되어 있었다. ‘6·4 톈안먼(天安門)사태’ 20주년을 맞아 소요사태를 우려한 중국 공안은 톈안먼 광장 곳곳에 검색대를 설치해 시민과 관광객의 신분을 확인한 뒤에야 광장 입장을 허용했다고 한다. 같은 날 ‘광장’을 놓고 국가체제가 전혀 다른 두 나라에서 비슷한 상황이 연출된 셈이다.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를 자처하고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인데도 말이다.

▲ 경향신문 2009년 6월 5일자 1면
과연 정권에게 ‘광장’이 주는 의미가 무엇이기에 이같은 봉쇄와 개방이 반복되며 통제되고 있는 것일까. 이제 우리에게 기억 속에만 남아 있는 이름이 있다. 바로 ‘여의도 5·16광장’이다. 당시 5·16 군사 쿠데타를 정당화하려는 목적으로 박정희 정권에 의해 1972년에 만들어진 광장이다. 박 전 대통령은 광활한 이 광장을 ‘5·16광장’이란 이름을 붙이고 각종 군사 퍼레이드와 대규모 반공 궐기대회 등 정권 유지에 적극 활용했다.

▲ 경향신문 1977년 10월 1일자 1면 사진
‘5·16광장’은 이후 박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군사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전 대통령에 의해 ‘여의도광장’으로 바뀌게 된다. 전 전 대통령은 정권의 선전수단으로 활용할 광장 자체는 남겨두되, 이름을 바꿔 박정희 정권의 이미지를 종식시키고자 했다. 이후 문민정부를 표방한 김영삼 정부는 대규모 광장 자체를 군사정권의 잔재로 규정하고 이를 청산키 위해 1994년 ‘여의도공원’으로 변경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 경향신문 1981년 6월 24일자 1면 사진
이렇듯 과거 독재정권이나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광장을 정권 유지의 선전 수단 등으로 적극 활용해 왔다. 중국의 텐안먼 광장이 그랬고, 러시아의 붉은 광장이 그랬다. 그러나 ‘광장’이 갖는 본래 의미는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소통의 공간이다. 광장의 시초로 불리고 있는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의 아고라(agora)는 민회(民會)나 재판, 상업, 사교 등 시민들의 다양한 참여와 소통이 이루어졌다. 이 때문에 아고라는 오늘날 참여와 소통이라는 직접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말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도 2002년 월드컵 이후 참여정부와 함께 만들어진 서울광장이 민주주의를 대변하는 광장으로 시민들 품에 돌아왔다. 우리 국민의 아고라로 불리는 서울광장에는 월드컵을 응원하는 시민들이 모이기도 했고, 촛불을 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이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 국민들은 참여와 소통이라는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시켜 나갔고, 이를 지켜본 외국인들은 큰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에게 서울광장은 더 이상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공론의 장은 아닌 듯하다. 불법 시위가 우려된다는 법적 근거도 명확치 않은 이유를 대며 전경버스로 봉쇄하고,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경찰에 연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부는 시민들의 공론장인 서울광장을 포함해 인터넷 공간마저 갖은 규제와 통제로 직접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정부와 한나라당이 밀어붙이고 있는 미디어 관련법들이 6월 국회를 통과하게 되면 그 수위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여 우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한나라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광장(아고라)을 통제하려는 데 점점 더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부와 한나라당의 이러한 규제와 통제를 피해 국내 네티즌들은 구글이나 유튜브, 지메일 등 해외 주요 인터넷 사이트로 하나둘씩 사이버 망명길에 오르고 있다. 네티즌들의 사이버 망명을 막기 위해 유튜브, 트위터, 핫메일 등 주요 인터넷 사이트 6000여개의 접속을 차단한 중국을 현정권도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마저 될 정도다. 이러한 우려가 기우이길 바라지만 돌아가고 있는 정치·사회적 상황을 보면 텐안먼 광장의 현재 모습이 다가올 우리의 광장 모습이 아니라고 할 확신이 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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