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년 9월 6일 버펄로의 팬 아메리카 박람회장에서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모여든 군중과 악수를 나누던 공화당 출신의 미국 제25대 대통령 윌리엄 매킨리(William Mckinley)가 배를 움켜쥐고 쓰러졌다. 그리고 8일 뒤, 대통령은 쉰여덟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스스로 무정부주의자를 자처한 암살범은 한 달 뒤 전기의자에서 처형당했다.

누가 대통령을 죽게 했는가? 즉각적인 비난의 화살이 <뉴욕 저널>의 사주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William Randolph Hearst)에게 쏟아졌다. 어느 신문 사설에서 대통령을 ‘미국에서 가장 증오받고 있는 생물’로 묘사한 허스트는 또 다른 사설에서는 “형편없는 제도와 형편없는 사람을 죽여버림으로써 제거할 수 있다면, 반드시 그들을 죽여야 한다”며 사실상 대통령의 암살을 부추기기까지 했다. 이 구절에서 ‘형편없는 사람’이 매킨리 대통령을 가리키는 것임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허스트는 켄터키 주지사 윌리엄 괴벨이 저격당해 위독해졌을 때도 신문에 다음과 같은 도발적인 내용의 시(詩)를 실었다.

괴벨의 가슴을 꿰뚫은 총탄은
서부를 다 뒤져도 찾을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총탄은 이곳에서 질주하며
매킨리를 무덤 속으로 쓰러뜨리려 하고 있으니.

이 시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였다. 경쟁 신문들은 허스트를 대통령 암살의 종범(從犯)이라고 비난했다. 몇몇 거대 광고주들이 허스트의 신문을 떠났고, 뉴욕 시민들은 허스트의 신문 <뉴욕 저널> 뭉치에 불을 질렀으며, 시위대는 허스트의 인형을 교수대에 매달거나 불에 태웠다. 신변에 위협을 느낀 허스트는 한동안 권총을 차고 다녀야 했다.

▲ 조지프 퓰리처(Joseph Pulitzer, 1847.4.10~1911.10.29)와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William Randolph Hearst,1863.4.29~1951.8.14)
900 쪽이 넘는 이 두툼한 책은 한 언론인이, 그리고 그가 써내는 기사 한 편과 그 기사들이 모여 이루는 지면(紙面), 날마다 독자의 손에 들리는 신문 한 부가 표상하는 행위로서의 언론이 한 손에 유리처럼 부서지기 쉬운 고매한 원칙을 끈덕지게 움켜쥔 채로, 다른 손으로는 솜사탕 같은 감언이설(甘言利說)의 무기를 휘둘러대는 자기모순에 얼마나 쉽게 빠져들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거짓말도 자주 되풀이되면 진실로 오인된다는 이론을 일찍부터 지지하고 있었던” 허스트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왜곡하고 날조하고도 아무런 가책이나 후회를 느끼지 않았던 데 비해, 정확성과 정직성을 평생의 신조로 삼았던 조지프 퓰리처(Joseph Pulitzer)는 허스트를 비난할 때조차 기자들에게 악의적인 인신공격을 피하라고 주문하면서 사실에 입각한 품격 있는 비판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런 퓰리처조차도 허스트와 “미국 역사상 가장 굉장한 달러(dollar)의 싸움”으로 일컬어지는 신문 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스스로 만든 보도 원칙을 숱하게 배반함으로써 퓰리처와 <뉴욕 월드>는 “기독교 국가에 존재하는, 지옥에 가장 가까운 존재일 것”이란 호된 비난을 샀다.

그럼에도 영화 <시민 케인>에서 ‘자본주의의 괴물’로 그려진 허스트와 달리, 퓰리처는 훗날 자신의 신문에 게재된 과장 보도와 소문, 노골적인 거짓말 등을 통렬하게 후회하고 위대한 신문 <뉴욕 월드>의 빛나는 명성을 회복함으로써 자신에게 쏟아진 악의적인 평판을 극복해냈다. 컬럼비아대학 언론대학원, 퓰리처상, 자유의 여신상과 같은 유산과 더불어 그가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신문 편집인으로 평가되는 이유다. 후세인들은 퓰리처를 현대 저널리즘의 창시자, 또는 신문왕이라 부르며 그의 업적을 기렸다.

▲ 퓰리처 (데니스 브라이언, 2002)

한 인물에 대한 총체적인 평가는 후대의 몫으로 남겨진 힘든 숙제다. 그것은 그가 남긴 말과 행동, 온갖 기록을 통해 삶과 사상의 날줄과 씨줄을 엮음으로써 특정한 역사적 시기에 위치했던 한 인물의 전체적인 모습을 그려가는 지난한 과정이다. 간혹 개인의 업적과 사생활에 대한 혼동과 자가당착적인 결벽주의에 빠진 폴 존슨 같은 언론인에 의해 <위대한 지식인들에 관한 끔찍한 보고서>와 같은 악의적인 내용의 책이 나오기도 한다. (이 책은 톨스토이와 마르크스 같은 인류 역사상 위대한 인물들의 숨겨진 사생활을 들춰내 폭로하는 인신공격성 글쓰기로 그들의 업적을 한껏 깎아내리는 우(愚)를 범하고 있다.) 하지만, 폴 존슨조차도 허스트와 같이 살아 있는 인물에게 저주의 포화를 퍼붓지는 않았다. 한 세기 전에 사람들은 이렇게 물었다. 누가 대통령을 죽게 했는가? “형편없는 제도와 형편없는 사람”을 ‘죽이자’는 현직 대통령을 향한 언론의 저주는 거짓말처럼 ‘현실’이 되었고, 사람들은 저주를 퍼부은 신문을 암살의 공범(共犯)이라며 거세게 비난했다. 한 세기를 넘어 오늘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언론 책임론 앞에서 한국의 보수신문들이 보이는 행태는 몇 년 전 어느 소설가가 말하고 얼마 전 한 신문이 사설에서 인용한 ‘희빈 장 씨의 저주’를 다시 불러낸다.

“하기야 돌아보면 지난해 대통령 선거 날 아침 ‘정몽준, 노무현 버렸다’는 보도를 비롯해, 그들로서는 결코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고 승복하고 싶지도 않은 주도권의 상실감 속에 이 정권에 대한 저주의 폭언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저 옛날 희빈 장 씨의 저주가 어디 이만 했겠는가. 자나 깨나 대통령이 망하기를, 나라야 어찌 되든 대통령만은 꼭 망하길, 이런저런 사건 의혹 속에 부디부디 대통령 얼굴에도 똥 묻었기를 오직 한마음으로 바라는 사람들 눈에야 오직 그 신문만이 이 땅의 정론지처럼 보이겠지만, 정말 오다가다 그 ‘찌라시’에 눈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이젠 국민 노릇도 독자 노릇도 힘들어 못해 먹겠다.”

그 저주는 전직 대통령의 삶이 비극적인 자살로 귀결되는 순간까지 지속됐다.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무거운 책임을 느낀 몇몇 보수신문 기자들은 자발적으로 양심고백을 했고, 검찰의 수사 내용을 받아쓰느라 여념이 없었다는 일부 언론의 뒤늦은 자성도 나왔다. 하지만, 정작 책임을 가장 크게 통감해야 할 언론사들은 도리어 언론을 향해 쏟아지는 여론의 화살을 피할 요량으로 경중(輕重)을 가리지 않고 모든 언론을 싸잡아 ‘공범의식’을 강요하고 있다. 평생 독립적이면서도 헌신적인 민주당 지지자였던 퓰리처는 직원들에게 늘 “이것이 편견 없는 공정한 보도인가? 이것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을 정말 거울처럼 비추고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라고 훈계했다고 한다. 그리고 적이 궁지에 빠졌을 때 공격하지 말고, 반대로 적이 상승세를 타고 있을 때 사정을 봐주지 말라는 자신의 훈계를 스스로 실천했다고도 한다. 퓰리처라는 인물에 대한 평가는 보는 이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정파적임을 결코 부인하지 않았던 신문사 사주의 이런 뚜렷한 자기 원칙이 “하나의 정파로서 사익 추구에 골몰해온” 한국의 힘센 신문들에게서는 결코 발견할 수 없는 미덕인 것만은 분명하다.

2001년 KBS에 기자로 입사했다. 2004년 8월부터 2006년 12월까지 KBS 매체비평 프로그램 <미디어포커스>를 제작 담당하면서 언론에 관심 갖게 되고, 2006년 11월부터 1년 동안 50회에 걸쳐 미디어오늘에 <김석의 영화읽기>를 연재했다. 베트남전 당시 미군의 민간인 학살을 추적보도한 탐사저널리스트 시모어 허시의 저서 <세상을 바꾼 탐사보도/ 밀라이 학살과 그 후유증에 관한 보고>를 번역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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