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기야 한나라당이 변하지 않는 이명박 대통령의 태도에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한겨레> 보도에 의하면, 한나라당 이종혁 의원은 “문제의 본질은 대통령에게 있다. 대표가 열 번 바뀌어도 대통령이 안 바뀌면 소용없다”고 말했고, <중앙일보> 보도 역시 “청와대가 안 바뀌면 당 지도부를 바꿔 봤자 아무 소용없다”라는 여당 의원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겉만 봐서는 고무적인 일이지만 집권여당 내의 위기의식과 쇄신안 요구 등은 민주당에 정당지지도가 근 5년 만에 역전당한 현실을 성토하면서 모든 책임을 이 대통령과 청와대 비서관들에게 떠넘기려 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한나라당 지지율이 20% 밑으로 떨어졌다는 수치(數値)만이 이들에겐 중요하고 자신들이 왜 이러한 수치(羞恥)를 겪어야 하는지에 대한 원초적이고 진정성 있는 반성은 찾아보기 힘들다(솔직히 나는 18.7%란 수치도 지금의 여당에겐 과분하다고 본다).

일부 보수 언론에 따르면 ‘당 지도부를 갈아야 한다’는 의견과 ‘이 대통령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는 그네들만의 생각이다. 이런 상황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를 찾아 조문하던 여당 의원들의 모습이 영결식이 일주일 지난 지금 아름답게 보이지 않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 중앙일보 6월 5일자 12면.
왜 이 대통령의 사과를 종용하지 않는가? 그러면서 무슨 쇄신을 하겠다는 건가?

이 대통령의 변화를 요구하지만 그것은 한나라당 지지율을 추락시킨 국민들이 원하는 변화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수세에 몰려 일순간의 ‘착함’으로 잠시 변신하는 ‘변장’을 국민은 바라지 않을 것이다.

대국민담화문 발표를 청와대에 건의했다고 전해지지만, 그러나 청와대가 난색을 표했다고 전해지지만, 설령 발표한다 치더라도 담화문 안에 “사과드립니다”라는 문구가 과연 들어있을지부터 의문이다.

청와대는 요지부동이다. 노 전 대통령 수사가 정당했다는 것인데 한나라당이라도 그러한 생각을 고쳐먹어야 뭔가 되지, 지지율이 이렇게 된 근본 원인은 외면한 채 지지율 상승방안만 연구한다면 굳이 쇄신까지 할 이유도 없을 것 같다.

임채진 검찰총장이 남긴 ‘사퇴의 변’에는 “이번 사건 수사를 총지휘한 검찰총장으로서 진심으로 국민께 사죄드린다”는 핵심 문장이 들어있다. 국민들이 노 전 대통령 서거의 책임자로 지목한 당사자들 중 그나마 처음 나온 사과이다. 나는 적어도 이 대목에선 검찰이 언론보다 낫다는 생각을 했다.

청와대가 사과하지 않으면 한나라당이 먼저 사과하면 되지 않는가. 혹은 이에 준하는 성명서라도 내면 어떤가. 홍준표 원내대표를 비롯한 일부 여당 의원들이 검찰 칼날의 도마 정 가운데에 흩뿌려져 신음하던 노 전 대통령을 그간 얼마나 많이 괴롭혔던가.

고인을 놓고 억측과 막말을 쏟아낸 일부 강경 보수단체에 항의했다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자세가 정치적 계산이 아닌 진심어린 자성으로 읽히려면 보다 제대로 된 형식을 갖춰야 함이 옳다고 본다.

‘여당’이 뭔가.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이다. 정치라는 프로바둑에 서툰 초단 아들이 계속 악수만 두고 진 다음 엄한 곳에 화풀이하는데 4, 5단 수준의 아버지는 지켜보다 못한 나머지 바둑알과 바둑판이 문제라며 갈아야겠다고 한다.

“한나라당은 형식적인 조문이 끝나면 다시 노무현을 부패사범으로 되돌려 놓으려 할 것이고…”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의 예측이다.

고단수의 정치도 물론 필요하지만 9단이 되려하는 자들에게 더욱 필요한 것은 국민(모든 계층)을 향한 ‘정성’이다. 부유층만을 위한 왜곡된 성의를 접지 않으면 한나라당 지지자들한테조차 ‘사퇴의 변’이 아닌 ‘사죄의 변’을 고해야 될 날이 올 수도 있다.

이렇게 된 마당에 청와대를 제치는 승부수 한번 거는 게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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