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측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차라리 흥미롭다고 해야 할까. 경찰이 ‘노사모’를 범좌파 단체로 분류했다고 한다. 더불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이 있던 29일에는 대규모 연행 계획을 수립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보편타당의 수준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되질 않는 문제들이 잦아진다. 인식이 배반당하는 경우가 다반사가 되는 요즘 자주 떠올리게 되는 개념이 ‘문화적 상대주의’(Cultural Relativism)이다. 제국주의의 열망이 지구를 달구던 1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역사적 기원을 갖는 개념이다. 지구에 대한 면밀한 비교를 목적으로 하는 인류학이 태동한 때도 그 무렵이다.

말하자면, 문화적 상대주의는 지도에 선을 그어 열강들 마음대로 나라를 나눠 갖던 시절에 기인하는 개념인 셈이다. 대상을 가리지 않는 지적 호기심이란 왕성한 욕구 침탈을 목적으로 정복한 지역의 삶에 천착하면서 발동된 깨달음이다. 서구의 기준에 빗대면 열등하다고 믿어졌던 야만의 사회들도 나름의 고유한 체계와 분류를 갖고 질서가 유지되더라는 것이다. 이 새삼스러울 것 없는, 당연한 무엇이었다.

문화적 상대주의란 이렇듯 서구적 한계를 명확히 하더라도 제국주의의 일방성에 대한 반성과 성찰적 의미를 갖는다는 점에서 매우 귀중한 지적 활동이다. 이후 문화적 상대주의는 문화에 있어 우열을 가리고 논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며, 이해와 포용으로 각각의 상대성들을 인정해야 한다는 이제는 지극히 상식적인 삶의 표준적 태도로 발전하였다.

그러니까 지금은 비록 ‘야만’과 ‘원시’의 정글로 퇴행해버린 경찰에게도 분명히 고유한 체계와 분류 기준은 있을 것이란 말이다.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경찰에게도 고유한 사고방식이 있어야 하고, 그것은 구조의 유지에 기여하는 모종의 합리성에 기반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과연 뭘까? 도저히 발견되지가 않는다. 노사모를 좌파로 규정하고, 영결식 당일에 대규모 연행 계획을 준비했었다는 경찰을 보며, 선을 그어 내 편 네 편을 가르고 연행자를 결정하려는 공안주의에 대한 강한 열망은 느껴지지만 삶의 상식을 배반하는 것에 대한 반성과 성찰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민주화 정부 10년을 거치며 재야가 해소되고, NGO가 사회의 중요한 구조로 자리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진정 우리는 언제까지 경찰을 사회 구조의 합리적 시스템으로 인정하는 것을 유보해야 한단 말인가. 경찰 조직은 어찌하여 자연스런 진화의 물결을 거부하고 이토록 자의적인 퇴행의 청부 해결사 노릇을 자처하고 있는 것일까?

▲ 서울신문 6월 5일자 9면.
애초 좌파/우파의 구분이 처음 시작된 기원은 프랑스 혁명기였다. 지롱드당과 자코벵당이 경합하던 당시 정치 상황에서 국민공회장의 오른쪽에 앉던 지롱드당을 우파, 왼쪽에 앉던 자코뱅당을 좌파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 단순한 좌석 배치의 구분이 훗날 엄청난 철학적 담론을 낳고, 역사적 투쟁으로 전개되긴 했지만 애초의 좌우 구분은 어찌 보면 다분히 우연적이고 상대적인 규정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한국사회에서의 좌/우파 구분은 분단이라고 하는 지정학적 상황으로 인해 그 의미가 몇 겹은 꼬여있다. 나 역시 스스로 ‘좌파입네, 우파입네’ 하는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지만, 그 구분의 엄밀함이 어떻게 끊어지는 것인지 잘 알지 못한다. 운동사회만 해도 고루한 사람들은 아직도 NL과 PD를 구분하며, 좌/우파를 나눈다. 나 역시 언제나 나를 기준으로 막연히, 상대적으로 좌/우파를 나누고 이해할 뿐이다.

경찰 역시 마찬가지였을 테다. 나보다도 훨씬 둔탁한 기준일 테다. 경찰이 사용한 좌파라는 규정은 그나마 절대적 정치/경제적 지칭이 아니라 정권 친화 여부를 기준으로 하는 상대적 관계를 일컫는 표현일 테다. 정권에 반대하며, MB 통치 체제에 친화할 생각이 없다면, 좌파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경찰이 바닥 민심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는 전혀 다른 해석이 가능해진다. 경찰이 일컫는 좌파는 반MB 정서를 기준으로 한다. 그리하여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는 팬덤 집단인 노사모에서부터 국가 단위의 거버넌스에 포섭되어 있는 흥사단, 여성단체연합과 같은 시민단체를 거쳐 민주노총과 용산 범대위 같은 사회조직까지 총망라되어 범좌파를 이루는 것이다. 이 정도 스펙트럼이라면 공식적인 국가 조직과 뉴라이트 정도를 제외한 사회 모든 분야, 그러니까 MB의 통치에 환호하고 있는 극소수의 결사체를 제외한 나머지 전체가 좌파가 되고 만다. 반드시 우파이어야 하고 이를 과시해야 한다는 당위와 강박에 갇혀 스스로 고립과 고독을 택하는 고난의 ‘왕따’를 자처하는 꼴이다.

경찰의 구분대로 노사모가 좌파라고 한다면, 대한민국은 좌경국가다. 비록, 좌파/우파라는 것이 절대적이고 항구적인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이명박 정부 1년 만에 국가가 좌경화됐다. 정부 스스로 지금 필요한 것은 ‘반MB전선’이라고 국민들에게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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