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열리던 경복궁 안뜰, 이명박 대통령 내외가 헌화에 나서는 순간,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사죄하십시오”라며 고함을 질렀다. 그는 즉각 경호원들에게 입이 틀어 막혀진 채 영결식장 밖으로 끌려 나갔다.

백원우 의원의 행동에 조갑제 같은 이는 “사람을 흥분시킨다”며 ‘장례식에서 대통령을 야유한 인간들’이라는 제목의 글을 ‘조갑제닷컴’에 올렸다. 그런데 그 비난이 요상하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큰 소리를 내었던 백 의원의 행동에 대해 “국가의 권위와 法의 원칙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좌익-깽판세력들이 발호할 수 있는 국민장이란 무대를 제공한 李(이) 대통령은 자신의 비겁함에 대한 代價(대가)를 스스로 치른 셈이다”고 평하였다. 대통령이 야유를 받는 장면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던 한 애국운동단체 대표 역시 “이건 나라가 아니다. 대통령의 自業自得(자업자득)이다”라며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쓴소리를 날렸다고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국면에서 조갑제를 비롯한 극우친여계 인사 4명이 ‘F4’ - 네티즌들은 ‘조갑제’ ‘지만원’ ‘변희재’ ‘김동길’을 급조된 F4라 부르고 있으며, 이니셜 ‘F’가 무엇인지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겠다 -로 지칭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이 전해지자 ‘막말’로 네티즌들의 원성을 높이 산 이들이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자살’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씨’라 호칭하는가 하면, 왜 이렇게 야단법석이냐며 불편해하였다. 나아가 국민장에 1원의 세금도 보태기 싫다고 하고, 파렴치한 죄인의 자살을 향한 서거? 추모? 국민장? 나흘만에 추모자 200만명? 보자보자 하니 한이 없다고 나라가 미쳐 돌아가 인내의 한계를 느낀다고까지 고백했다.

▲ 김동길 교수 홈페이지
이들의 글들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원한이 느껴져 섬뜩하다. 더욱이 이들은 ‘국민장’에 대한 강한 불쾌감을 내비치며 이명박 대통령을 싸잡아 원망했다. 그런데 이들은 왜 이리도 ‘국민장’을 경계했던 것일까. 이들의 주장대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무책임하게 자살해 버린 ‘파렴치한 범죄자’이기 때문일까. 절반은 그렇다. 그러나 그뿐만이 아니다. 행간 속에 있는 속내에는 장(葬)이 열리는 순간 장(場)도 열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고 공포가 담겨 있다.

영결식이 있기 전까지,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광장, 청계광장을 전경 버스로 가둬 두며 이들의 신임을 얻고자 했다. 하지만 이들은 결국 하루는 내어줄 수밖에 없는 ‘서울광장’을 기어이 내어주고 말았다며 이 대통령을 질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국민장’을 왜 받았냐며 타박하고 있다. 만장에는 죽봉이 사용되는데, 광장에 들어선 추모객들은 ‘과격세력’으로 변할 텐데라며.

아시다시피 ‘국민장’의 형식에 대해 분노를 느낀 이들은 이들만은 아니었다. 29일자 경향신문 20면과 한겨레 8면 하단에 “범민주시민 국장을 이루어내지 못한 것을 통한하며”라는 제목의 광고가 실렸다. ‘대한문 시민분향소 조문객’ 일동으로 대한문 시민분향소 조문객들의 성금으로 게재한 광고는 “관제 국민장으로 치르려는 장례절차에 우리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장의위원회 명단에 분노하였다. 전직 대통령은 물론 한나라당 국회의원 그리고 현 정부 인사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광고에는 “비록 우리의 힘이 미약하여 애초에 기획했던 범민주시민 국장으로 보내 드리지 못하지만”이라는 문구가 실렸다. 또한 지난 24일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절차를 둘러싸고 배우 명계남은 “느닷없이 국민장이냐”고 말했다. 그는 “우리 힘으로 노 전 대통령을 모셔야 한다”고 강조하며 ‘국민장 결사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고 오마이뉴스는 전했다. 국가가 아닌, 제도적 절차가 아닌 자발적인 추모에 의한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장’에 대해 교차하는 두 개의 불편한 감정은 그 자체로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 ‘광장’을 두려워하는 자들과 ‘광장’으로 나가서는 자들과의 싸움 말이다. 오늘 하루, 국민장을 두려워했던 이들은 광장을 내어준 것을 비난하는데 온 힘을 쏟았고, 국민장을 반대했던 이들은 다시 광장으로 나가며 절규했다.

▲ 경향신문 5월 29일자 20면 전면광고
여전히 서울광장 주변은 그를 추모하는 인파로 빼곡하다.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고, 기억하고, 슬퍼한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분노를 표하고, 비판한다. 광장은 토론과 소통의 장이다. 그래서 방안에 앉아 몹쓸 말만을 뱉어내는 것이 아니라, 광장에 모인 인파를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그들도 ‘장’으로 나와야 한다. ‘화해’와 ‘화합’은 누군가 우편으로 배달해주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떠나간 그를 추모해야 하는 것만큼 광장을 살리는 것도 중요한 문제이다. 이건 진짜 민주주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이 끝나가고 있다. 이렇게 ‘장(葬)’이 끝이 나고 나면, 도로 장(場)을 닫겠다고 경찰이 들이닥칠 것이다. 아마도 그 시간쯤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골은 봉하마을에 다다랐을 지도 모르겠다. 경찰들은 점차 광장 가까이로 가까이로 방패를 들고 다가오고 있다. 굳이 F4의 역겨운 말이 아니더라도 공권력을 내세워 ‘장(葬)’이 끝나기가 무섭게 ‘장(場)’을 닫으려 했던 정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구 차량이 빠져나가자마자 경찰이 이렇게 말했다. ‘추모’와 ‘애도’는 이제 집에 가서 하라고.

▲ 프레스센터 앞 경찰이 추모객들 앞을 가로 막고 있다 ⓒ 미디어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