多言數窮, 不如守中 (다언삭궁, 불여수중 : 말이 많으면 곤란한 처지에 자주 처하고 알맞음을 지키는 것만 못하다, 도덕경 5장)

변희재 빅뉴스 대표가 <빅뉴스>에 게재한 ‘노무현 전 대통령’에 관한 글이 세간에 논란되는 상황을 잘 나타내는 말이 아닌가 한다. 논란이 된 변 대표의 글의 요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을 했기 때문에 장례에 국민세금 한 푼 들어가서는 안된다’였다. 변 대표의 글의 여파로 5월26일과 27일에는 빅뉴스는 홈페이지가 ‘불통’이 되기도 했다.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 3~4위까지 올라갔던 ‘변희재’는 변 대표 글의 파장을 새삼 느끼게 한다.

다만 이 논란 속에서 묻힌 중요한 문제를 끄집어내고자 한다. 변 대표의 수많은 직함 가운데 하나인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아래 미디어위) 한나라당측 추천위원’과 이를 통한 ‘방송문화진흥회(아래 방문진) 이사 지원 선언’에 관한 것이다. ‘노 전 대통령 국민장’ 논란에서 변 대표는 사람들로부터 ‘듣보잡’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었지만, 적어도 미디어위와 관련된 문제에서는 한나라당 추천위원으로서 중요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변 대표는 지난 2007년 포털 관련 법안을 한나라당 국회의원들과 논의해 발의한 적도 있을 만큼 포털과 인터넷 정책의 전문가임을 자처하고 있다. 이러한 경력 때문인지 변 대표는 미디어위 여당 측 추천위원으로 발탁됐다. 변 대표는 미디어위에서도 인터넷, 특히 포털 관련 문제의 전문가임을 자처하며 포털 모니터링 의무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 변희재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위원ⓒ미디어스

포털 전문가를 자처하는 변 대표가 MBC의 대주주인 방문진 이사직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했다. 뜬금없이 MBC 대주주인 방문진 이사직을 도전하는 이유에 대해 “만약 임명된다면 최우선적으로 포털에 뉴스콘텐츠 등을 헐값에 넘기고 있는 MBC의 비상식적인 인터넷경영부터 뜯어고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변 대표의 공약(?)은 허점이 매우 크다. 방문진은 MBC의 최대주주이고 방송문화진회법(5조2)을 통해 “(방송문화)진흥회가 최다출자자인 방송사업자의 경영에 대한 관리 및 감독”의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포털에 넘기는 MBC의 콘텐츠의 가격문제는 MBC의 경영과 관련한 사항이다. 경영일반에 있는 미세한 사항을 방문진 이사회가 관여한다는 것은 MBC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것이다. 변 대표의 공약은 언론사 ‘소유’가 ‘경영’을 침범하는 사안인 것이다.

수많은 방송 전문가를 제쳐두고 미디어위에서 포털 전문가 변 대표가 방문진 이사에 지원하는 것도 문제다. 언론사 낙하산의 ‘전문성’ 문제가 다시 한 번 불거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변 대표가 조선일보에 기고한 칼럼 ‘실크세대론과 88만원세대론의 소통을 위하여’(2009년 1월16일자)에서 386세대의 ‘전문성 없음’을 비판했다. 386세대를 가리켜, ‘전문성 없이 독설로만 무장했다’고 비판한 변 대표가 미디어위에서 자처한 인터넷 전문가로의 위상을 내치고 비전문분야인 방송계로의 진출을 꾀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변 대표의 ‘MBC 민영화’ 소신도 문제이다. 변 대표는 작년 8월10일 정연주 사장의 퇴임과 관련한 글(젊은 언론인들 ‘정연주 구하기’ 손떼라, 빅뉴스)에서 공영방송 체제를 개혁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변 대표는 이글에서 공영방송 체제 개혁 방안으로 “KBS1과 아리랑TV, EBS 등을 묶어, 이들을 100% 시청료로 운영하는 공영채널로 전환”하는 것과 함께 “KBS2TV와 MBC 민영화”를 제시했다.

MBC 민영화는 방문진이 소유한 MBC 지분 70%(나머지 지분 30%는 정수장학회가 소유)의 민영화를 뜻하는 것이다. 때문에 MBC 민영화는 필연적으로 방문진의 해체가 전제되어야 한다. 방문진을 해체하려는 사람이 방문진 이사직에 지원한다? 말의 앞뒤가 맞지 않는다.

방문진은 방송문화진흥회법으로 규정된 ‘국가 재단 법인’이다. 방문진 해체가 신념이라면 방문진에 이사에 참여하는 것보다 MBC 민영화에 동의하는 국회의원을 설득해 방송문화진흥회법 폐지나 MBC 민영화에 관한 법률을 발의하거나 스스로 입법청원하는 것이 합당한 방법일 것이다.

▲ 빅뉴스 관련기사 화면 캡처ⓒbignews.co.kr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여당추천 미디어발전국민위원이라는 ‘완장’에 있다. 미디어위에서는 여당이 발의한 미디어 관련법 전반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여기에서 변 대표는 2분과에서 여당이 발의한 ‘인터넷 모욕죄’, ‘포털 모니터링 의무화’ 등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디어위에서 논의하는 미디어 관련법은 신문법, 방송법, 전기통신사업자법 등 미디어 환경 전반에 걸쳐 있다. 때문에 참여하고 있는 위원들의 논의는 우리나라 미디어 지형을 좌우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문제다. 미디어위 위원 ‘완장’은 미디어 지형을 설계하는 권력이다. 이와 같은 중요한 위치에서의 방문진 이사 지원 선언은 방문진 이사 선임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디어위 위원으로 대단히 부적절한 처신이다. 변 대표 스스로 개인적 자리 욕심이 아니라, ‘포털에 MBC 콘텐츠 헐값 판매 개선’이라는 대의를 표방하지만 그러한 대의가 미디어위 논의사항보다 무겁다고 할 수 없다.

변 대표가 방문진 이사에 지원해 방송계에서 ‘듣보잡’이 되지 않으려면 앞서 말한 도덕경의 ‘다언삭궁’의 뜻을 되짚어 보기를 바란다. 아울러 자리 욕심은 ‘한나라당 추천 미디어위 위원’이라는 완장부터 떼어놓고 내시길 부탁드린다. ‘주요 언론사의 포털 콘텐츠 헐값 판매’의 문제는 방문진 이사회보다 미디어위 2분과에서 논의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MBC만 유별나게 포털에 헐값으로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주요 언론사들도 포털에 헐값으로 콘텐츠를 넘길 수밖에 없는 구조가 근본적인 문제라는 것은 변 대표의 주장이었다.

마지막으로 변 대표가 방문진 이사 지원 선언글에서 진보진영의 새로운 세대에도 기회를 주어야 한다며, ‘이준희’와 ‘도형래’에게도 방문진 이사에 지원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74년생인 변 대표의 방문진 이사 진출의 필요성을 역설하기 위해 예로 든 것이다. ‘이준희’는 인터넷기자협회장으로 ‘방송’과 별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또 필자인 ‘도형래’도 공공미디어연구소에서 신문과 통신정책을 연구하고 있다. 얼토당토 안한 사람을 끌어들여 자신의 논리의 근거로 삼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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