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상에서는 ‘노간지’라는 이름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옛 사진들이 퍼졌다. 손녀가 탄 유모차를 자전거에 연결시켜 달리는 모습, 동네 가게에서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있는 모습, 어느 행사장에서 받은 귤을 자신의 주머니에 넣는 모습 등 참으로 정겨운 모습들이다. 조롱이 아니다. 네티즌들이 자신의 방법으로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고 있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행렬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어제 25일 북한이 핵실험을 단행하고 미사일도 발사했지만 봉하마을과 덕수궁, 서울역, 서울역사박물관의 분향소에는 조문객들이 오히려 더 늘었다고 한다. 온·오프라인상에서의 노 전 대통령 추모는 그렇게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이건 애도하는 것도 같기도, 안하는 것 같기도 한 풍경이 펼쳐졌다. ‘이건’의 주인공은 조중동이다.

조중동의 1면 편집의 기술- 국민의 ‘애도’를 덮다

이러한 ‘같기도’의 모습은 1면에서부터 확연히 드러났다.

중앙일보는 1면에서 그 흔한 사진하나 배치하지도 않았다. “29일 영결식 경복궁 유력”이라는 2단짜리 짧은 보도가 전부였다. 그에 비해 지면의 비중을 크게 차지하고 있는 사진이 있다. 그 사진의 설명을 보니 “북한이 2차 지하 핵실험을 감행한 25일 일본 도쿄에서 발간된 호외 사진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진이 실렸다”고 되어 있다. 일본에서 나온 호외의 사진을 굳이 저 크기로 실을 필요가 있었을까?

▲ 5월 26일 중앙일보 1면
이때 옆을 지나가던 편집장이 “가로 사진을 실었더라면 충분히 노 전 대통령의 기사와 사진이 들어갔을 수 있었을 텐데, 어떤 것(핵실험)을 강조하려다 보니 이런 편집이 나온 것 같다”고 말한다.

분명 북한에서 핵실험을 감행한 것 역시 큰 뉴스거리긴 하다. 그러나 뉴스의 가치면에서 노 전 대통령의 서거 또한 이에 뒤지지 않는 사건임에 틀림이 없다. 두 가지의 사건 모두 중요하기 때문에 ‘같이 고려해야 한다’고만 생각했더라도 이런 편집은 나오지 않았을 거다.

동아일보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하단으로 내려갔다. “북, 2년7개월 만에 또 핵실험… 미사일 3발 발사”라는 큼지막한 고딕체 통단 제목에 비해 노 전 대통령의 분향소 사진과 “영결식 서울 경복궁서 열릴듯” 기사는 왜소해 보인다. 동아일보는 왜 좌우 편집이 아니라 상하 편집을 했을까?

조선일보 또한 중앙과 동아와 같이 “북, 2차 핵실험…1차보다 훨씬 강했다”라는 제목을 신문의 좌우에 가득 펼쳐 노 전 대통령의 서거보다 강조하고 나왔다.

조중동의 노 전 대통령 추모는 짧고도 안보이게~

이들 조중동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노 전 대통령 관련기사를 모두 세 개의 면에만 배치했다. 그것도 조선은 10·11·12면, 중앙은 12·13·14면, 동아도 12·13·14면으로 뺐다.

그나마 베를리너 판으로 바뀌어 지면이 작아진 중앙일보이건만 13면에는 어제 25일 중앙일보 사설과 한 치도 다르지 않은 내용의 취재일기만이 실렸다. 기자는 25일에도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와 정몽준 최고위원 등이 발길을 돌렸다면서 이것은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던 노 전 대통령의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옆에는 박희태 대표가 발길을 돌린 사진이 함께 실렸다.

▲ 5월 26일자 동아일보 1면
동아일보는 조중동 중 유일하게 강희락 경찰청장의 발언을 통해 서울광장을 막을 수밖에 없는 입장을 대변했다. 강 경찰청장은 “추모행사가 평화적 분위기에서 자유롭게 진행되는 것은 얼마든지 보장해야 하지만 추모행사가 자칫 정치적 집회나 폭력시위로 변질될 우려가 있어 일부 통제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단다. 그러나 아직도 궁금하다. 서울광장을 시민들에게 추모의 공간으로 내주는 문제와 정치적 집회, 폭력시위와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것인지.

서울광장에 대해 함구한 조선․중앙과 달리 동아일보는 이를 언급했지만 문제가 돈 주상용 서울경찰청장의 발언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다. 주 서울경찰청장은 말했다. “경찰 버스가 분향소를 막아주니 아늑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라고. 이 말에 시민들은 분노했다.

조중동은 ‘여론’이 뭔지 모르나 - 독자의 여론에 눈감다

조중동은 오늘 여론(오피니언)면의 ‘독자의 글’과 ‘사설’도 달랐다.

신문을 펼쳐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여론면에 담겨있는 독자들의 글 중 노 전 대통령의 애도를 표하는 글이 단 하나도 실리지 않았다. 이 경우는 딱 두 가지의 경우의 수밖에 없다. 조중동의 독자들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애도가 딱 어제까지였든지 아니면 조중동 편집국에서 선별해서 싣지 않은 것이든지.

▲ 5월 26일자 조선일보 1면
조선과 동아일보 홈페이지에서 노 전 대통령의 추모게시판을 보니 오늘도 애도의 글들이 올라오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니 그 첫 번째 경우는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담? 근데 중앙일보는 로고에 있던 국화꽃을 빼고, 추모게시판도 없앴는지 찾을 수가 없었는데, 비판을 많이 받은 터라 자신이 위치를 잘 찾아간 것이라고 볼 수 있을가? 그래도 이런 생각은 든다. 이래도 욕먹고 저래도 욕먹는 거면 그냥 놔두지 하는.

그리고 조중동 중 유일하게 중앙일보만이 오늘까지 노 전 대통령 관련 사설을 썼다. 제목은 “노 전 대통령 추모 열기 정치적으로 변질되지 말아야”. 중앙은 사설에서 덕수궁 분향소에 “‘이명박 탄핵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그냥가지 말고 꼭 촛불을 들자’, ‘낮엔 국화, 밤엔 촛불’ 등이 적인 피켓이 있다”면서 “슬픔을 다스릴 줄 아는 성숙한 애도 행위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애도’의 규격화된 방법은 없다. 그저 각자 나름의 표현방식만이 있을 뿐이지. ‘애도’의 방법을 강요하는 것은 ‘애도’가 아닌 그 형식을 따르라는 말과 같다. 때문에 성숙한 ‘애도’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애도하지 말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26일 조중동은 분향소에 길게 늘어선 시민들의 애도와는 다른 풍경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슬퍼하며 ‘애도’를 표하는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걸 알았다면 노 전 대통령을 애도한 것 ‘같기도’ 한 26일 신문은 없었을 것이다. 감추고 숨기고 한 편집의 기술이 뛰어남에 놀랄 뿐이다.

“조중동, 이건 노 전 대통령의 분향소에 국화 한 송이를 내려놓은 것도 아니고 내려놓지 않은 것도 아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