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여의도통신
바야흐로 박근혜와 박근혜 아닌 것의 시간이다. 재보선을 분기점으로 확연하다. 재보선 이전의 지배 질서, 그러니까 ‘주이야박’의 신사협정은 파기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존재감이 없고, 유의미한 거점 수성에 성공했지만 환호작약할 돌파구를 찾진 못하고 있는 진보정당의 정체는 여전한 상황이다. 재보선 이후 변화에 가장 분주한 정치 집단은 한나라당뿐이다. 그 시작은 주이와 야박의 접전이 깨진 것에서부터이다. 소용돌이 치고 있는 한나라당판 정풍 조짐, 조기 전당대회의 핵심은 결국 ‘주박야박’으로의 전환 요구이다. 지배 지형이 이명박을 기준으로가 아닌, 박근혜를 중심으로, 박근혜와 박근혜 아닌 것으로 이분지계 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주 이명박 대통령은 중앙아시아 순방을 떠났고, 박근혜 의원은 미국을 방문했다. 대통령과 관련해서는 단신, 동정보도가 주를 이뤘다. 거저 따라간 기자들이 밥값하는 수준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동반적 협력 관계’의 강화, 자원외교라는 통치행위가 별스러운 것도 아니고, 스펙터클한 기사감은 더더욱 못된다. 어떤 대통령이라도 응당 했을 당연한 일이다. 대부분의 언론이 이명박을 축소한 것은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사실, 당선자 시절부터 주력해왔던 몇 개의 분야와 공안적 상상력을 제외하면 MB는 확실한 색깔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언론이 질릴 때도 됐다. 하여간, 지난주 언론은 MB의 순방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단, 예외적 언론이 있었다면, 중앙일보였다. 주말 판인 중앙SUNDAY에 특집 기사까지 썼다. 물론, 중앙이 그 순방에 각별한 관심을 쏟은 것은 확실한 동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방한에 맞춰 열린, ‘비단의 향연 : 2009 한·중앙아시아 문화교류축제’의 주최(중앙일보, 문화체육관광부, 외교통상부)와 주관(중앙SUNDAY)을 중앙일보 계열사들이 맡았다.

▲ 중앙SUNDAY 5월 10일자 기사 화면 캡처.
지난주의 보도상황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명박과 박근혜의 교차, 중앙일보와 다른 언론의 차이 말이다. 우선, 모종의 값을 치르고 기사를 확실히 구매해주는 관계를 맺지 못하면, 더 이상 대통령은 임팩트가 없다. 그렇잖아도 인기가 없는 대통령이다. 앞으로도 대통령이 어떤 사고를 치지 않는 한, 잘 팔리지 않을 것이다. 이미 내리막을 탔고, 그게 곳곳에서 확인된다. 어쩔 수 없다, 세상의 이치가 그렇다.

그래서 어쩌면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힘찬 연어마냥 시대를 거슬러 오르고 있는 정권의 파닥거림이 더 거세질 수도 있다. 청와대는 아마도 지난 재보선의 결과를 그렇게 읽은 것 같다. 언론이 소비하기에 대통령이 낡았다는 걸 유예시키기 위한 반동으로 낡지 않음을 과시해야 한다는 강박에 드라이브가 걸릴 수 있다. 노무현 수사, 법관 파동, 일련의 공안 사건 등이 이 강박의 종속 변수로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몸부림을 친들 어쩔 수 없이 점점 ‘자연사’의 시간에 가까워지는 것을 원천 부정할 방법은 없다. 내리막의 가속도를 좀 늦추는 정도이다.

반면, MB가 자연사의 시간에 가까워질수록 박근혜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 벌써부터 그녀에 관한 기사는 차고 넘친다. 재보선 이후 그녀의 눈빛, 까딱거리는 손짓까지 기사화되고 있다. 뜬금없이 친박계의 좌장이란 이유만으로 김무성 의원을 원내대표로 추대하려던 지난주의 소동은 오늘의 그녀가 얼마나 위력적인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 할 것이다. 죽었다 깨어나도 이제 친이계는 자신들의 좌장을 원내대표에 추대할 수 없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마저 간단히 거부함으로써 자신의 위력이 아직 정점에 달하려면 한참 멀었음을 과시하였다. 계보 의원들의 자리에 연연할 만큼 궁색하지 않다는 뜻이었다. 친이계 모두를 ‘소인배’로 만드는 담대한 까칠함이었다. 단언하건대, 그녀는 3김 이후 가장 센 정치인이다.

쇄신위를 꾸린 한나라당의 문제는 결국, 박근혜를 어찌 할 것인가의 고뇌이다. 내다보건대, 쇄신위의 선택은 얼마나 노골적으로 박근혜 중심성을 천명할 것인가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은 집권 1년을 조금 넘긴 시점에서, 박근혜 중심의 원심력이 강해질 수밖에 없는 회로에 들어섰다. 10월 재보선의 판이 커질수록, 내년 지방선거에 가까워질수록 회로의 구조는 더욱 단출해질 것이다. 한나라당 그 어떤 이도 박근혜 없이 선거를 치를 순 없다.

지난주는 이미 오래 전부터 예고된, 그러나 아직 확실히 찾아오진 않은, 간절기의 풍경이다. 사시사철 간절기를 사는 집단인 언론은, 짧게 잡으면 2달 안에, 길어도 6개월을 넘지 않아서 완성될, 박근혜 질서를 앞두고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정치 지면에서 박근혜의 미국 방문이 대통령 국빈 방문을 압도했다. 그녀의 발언 하나하나에 해석이 붙었다. 지상파 뉴스는 한나라당의 변화와 그녀의 이름을 나란히 거론했고, 그녀의 의중과 스타일이 정치비평에 인용되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단, 예외가 있었다. 중앙일보였다. 오늘(5/12) 중앙일보 사설은 박근혜에 대처하는 중앙일보의 복지부동한 자세를 보여준다. 모두가 박근혜를 말하는데, 홀로 이명박을 말하고 있다. 내용도 강경하기 그지없다. ‘박근혜, ‘보수세력의 축’ 제대로 하고 있나’라며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그녀에게 왜 ‘건전한 보수의 흐름에서 이탈하는 사례를 보이’느냐고 경고했다. 그렇다면, 중앙일보가 생각하는 건전한 보수의 흐름이란 대체 뭐기에, 이토록 박근혜에게 강경한 것일까? 간단하다. 장황하게 미국산 소고기 얘기를 했지만, 중앙일보의 진짜 메시지는 그게 아니다. 박근혜를 보수에서 제칠 수도 있다는 중앙일보의 협박은 미디어법과 같은 ‘MB의 보수적 개혁입법’에 박근혜가 문제를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 중앙일보 5월 13일자 42면.
중앙일보는 MB로부터 모종의 값을 지불받은, 가장 특수한 언론사이다. 앞선 말한 개별 행사 주최 정도는 자잘한 서비스 품목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중앙일보와 정권 사이의 큰 거래는 ‘방송’을 둘러싼 것이다. 오늘 사설에도 언급한 ‘미디어법’이 허용하는 ‘신방 겸영’에 입찰서를 낼 수 있는 곳이 현실적으로 중앙일보뿐이라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이명박과 박근혜의 분기점에서, 모든 언론이 박근혜로 핸들을 꺾은 상황에서, 중앙일보만 이명박으로의 직진을 택했다. 그 길의 끝엔 무엇이 있을까? 아직은 모른다. 단, 결코 평탄치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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