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고 변화없던 산중마을에 갑작스런 일이 생겼습니다.

아랫마을에서 우리 마을까지는 걸어서 40분 정도 걸리는 산길입니다. 마을이 있는 곳에선 찾아보기 힘든, 차가 다니지 못하는 산길이 남아있는 곳입니다.

아는 분한테 이 마을 이야기를 듣고 살고자 처음 찾아올 때 한참을 걸어 올라가다 되돌아갔습니다. 도저히 사람 사는 마을이 나올 것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길을 잘못 찾았나 싶어 다시 물어 찾아온 기억이 생생합니다.

▲ 공사 전 길 ⓒ지리산
계곡 따라 물소리 들으며 올라오는 길은 아담하고 운치 있습니다. 한 25분 계곡을 따라 올라가다 기어이 계곡을 건너야 합니다.

엉성하게 놓인 돌다리로 계곡을 건너야 하는데 비가 많이 오거나 장마 지면 계곡을 건널 수 없어 4년 전 마을사람들이 모여 통나무다리를 만들었습니다. 통나무다리다 보니 사람이나 겨우 건널 수 있지 차는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그러다보니 통나무다리는 누구도 합의하지 않았지만 마을 안팎을 가르는 경계가 되었습니다. 통나무다리를 건너고부터는 가파른 산길을 15분 정도 올라가야 합니다.

오늘같이 비 오는 날이면 나무다리에서부터 아득한 안개가 숲을 신비하게 만들어 아이들 말처럼 ‘신비한 숲을 지나 안개마을에 들어섰다’고 할 만합니다.

변하지 않는 이 풍경에 큰 변화가 생겨 마을이 조금 술렁입니다. 아랫마을에서 통나무다리가 놓인 곳까지 콘크리트 포장을 한다고 합니다.

▲ 공사 중인 길 ⓒ지리산
길은 지금껏 사람 사는 모습 따라 많이도 변했습니다. 마을 밖을 처음으로 나선 길은 초등학교 입학하던 날입니다.

마을에서 학교까지 이어진 이 길은 초등학교 땐 소달구지 다니는 흙길이었고 중학교 땐 경운기 다니던 흙길이었습니다.

작은 마을이어선지 좀처럼 포장되지 않아 고등학교 다니던 1980년 초까지도 흙길로 계속 남아있어 걸어서, 자전거로 이 길을 12년 다녔습니다.

처음 마을 밖을 나선 길이고 다닌 세월만큼 아름답고 아픈 기억이 많아 어떤 아름다운 길보다 가장 마음 깊이 남아있는 길입니다.

흙길인 이 길은 그 뒤 10년을 훌쩍 넘기고서야 기어이 아스팔트로 포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마음에 담겨 있던 그 많은 추억들이 묻힌 것 마냥 아쉬움이 진했습니다.

지금도 곳곳에서 길을 넓히고 새로 만드느라 공사가 한창입니다. 아니 길 공사는 끊이지 않고 계속합니다. 있는 길 놔두고 그 옆에 더 넓고 반듯한 길도 수없이 만들고 있습니다.

삶에 쏟는 노력만큼 길에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이런 노력으로 삶이 풍성해지고 편안해지길 바라지만 길에 쏟는 노력만큼 우리 삶은 풍요롭지 못합니다.

반듯한 길만큼이나 우리 삶도 반듯하길 바라지만 길도, 삶도 반듯하고 곧은 길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 공사 중인 길 ⓒ지리산
삶은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고 곧게 가다가 다리를 건너야 하기도 하고 구불구불 산길을 오르기도 합니다. 그래서 길도 아스팔트 곧은 길도 있어야 하지만 구불구불 산길도 있어야 합니다.

집으로 가다 산토끼도 만나고 새끼 멧돼지도 만나는 길도 있어야 삶이 풍성해질 기회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녹색생태마을로 지정되어 처음으로 하는 일이 산길을 콘크리트로 포장하는 일이라면 참으로 아쉬움이 많습니다.

녹색을 녹색으로 생태를 생태로 보지 못하고 녹색과 생태를 상품과 돈으로 생각하는 것이 지금 우리 삶인가 싶어 더욱 아쉬움 큰 5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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