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분노하지 않은 지 꽤 되었다. 매일 들춰보지 않아서가 아니다. 조선일보가 나아져서는 더더욱 아니다. 조선일보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동아일보의 상태가 실소를 자아낼 만큼 허술해지고, 중앙일보가 때깔을 바꾸려 몸서리치고 있지만, 조선일보는 한결같다. 1등의 위용이기도 하고, 딱히 더 나빠질 것도 없이 어쩌면 정체되어 있는 양상이기도 하다. 조중동만을 놓고 상대평가를 해보자면 그래도 여전히 조선일보가 제일 감각이 낫다고 나는 생각한다.

▲ 서울 중구 조선일보 사옥. ⓒ미디어스
그래서 딱히 분노할 것도 더 날을 세울 것도 없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진취적 차원에서 보자면 에너지 낭비다. 조선일보의 논조는, 보도양식은 술 취한 누군가들의 귀소본능과 같은 차원의 생에 대한 의지의 문제라고 나는 믿는다.

그런 생각은 해본다. 조선일보에게 작년 촛불과 장자연 리스트는 천운이 따른 사건이었다고. 조선일보 박정훈 사회정책부장의 말대로,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지만, 촛불 집회 말미에 모든 동력이 조선일보 반대에 집중했더라면, 장자연 리스트가 딱 2년 전에만 세상에 던져졌어도, 조선일보의 자리가 지금의 자리는 분명 아니었을 테다.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무참함으로 범벅됐을 테다.

무엇보다 이슈의 집중력이 굉장했을 테고, 경찰이 지금처럼 알아서 기는 작태를 연출하기도 어려웠을 테고, 공권력에 위축되고 법에 쪼는 카르텔도 분명 지금보다는 헐거웠을 테다. 시간이 많이 흐른 촛불은 그렇다 치고 장자연 리스트와 관련해서만 해도 고백하건대, 미디어스 편집국은 물론 다른 언론사 편집국에도 조선일보를 무참하게 만들 수도 있을 ‘첩보’들이 있다. 나도 알고 있으니, 언론 밥을 먹는 웬만한 이들은 다 알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조선일보가 무서워서? 그럴 수도 있다. 근데 그게 또 전부는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일이 차고 넘치는 시절에 닥쳐올 명예훼손이 피곤하고, 공권력의 편향이 예측하기 어려워 막막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 촛불과 장자연 리스트의 손익 계산을 따지면, 조선일보의 처지는 참혹함 그 자체이다. 동아일보야 어차피 MB정권과 운명을 같이하기로 결심을 한 모양새이니 딱히 미래란 것을 고민할 여지가 적고, 중앙일보의 경우 언제든지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범삼성가의 지원을 통해 뭔가를 모색해볼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으니 현상 유지만 해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처지가 다르다. ‘개혁적 언론계-일부 지식인-대다수 사회 운동가’들의 역사적 실천 문제로 다뤄지던 ‘안티 조선’이 지난해 촛불을 거치며 시민적 상식의 선택으로 완전히 형질 전환되었다. ‘조선일보는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는 단순한 회로는 조선일보를 보는 ‘간지’ 그 자체를 상식적 낙후함의 상징으로 낙인찍고 있다. 얼마 전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옆에 선 언니들이 속닥거리는 것을 들었다. ‘쟤는 왜 젊은 애가 조선일보를 본다니?’

미래세대와 무엇을 도모해 볼 가능성이 희박한 기업은 성장 가능성이 거세된 괴물일 뿐이다. 늙고 병들 일만 남은 괴물을 두려워할 까닭이 없다. 얼마 전에 양문석 박사가 지적한 것처럼 신·방 겸영을 통해 조선일보가 돌파구를 열수 있을 가능성도 현재로선 별로 없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순 없다는 촛불의 평범한 진리가 유효한 것이라면 그것은 조선일보의 몰락이 역사적 필연의 단계로 접어든 대목에서 빛난다.

장자연 리스트 역시 마찬가지이다. 언론계에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조선일보는 사운을 건, 사세의 전부를 건 방어를 했다고 한다. 어렴풋이 성이 공개되기 했지만, 그나마 천운이 따른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조선일보가 빠졌던 주화입마는 두고두고 씻기 힘든 내상으로 남을 것이다. 물론, 조선일보가 조만간 권세를 잃을 거란 예측도 철없지만, 조선일보가 경영권을 승계한 이후에도 현재의 권세를 누릴 거란 예측은 더욱 철부지 같은 소리가 됐다. 주변 사람들 앞에서 제대로 고개를 들고 다니지도 못했다는 사람이 지배하는 언론이 계속 1등 신문일 거라는 예측은 다른 언론에 대한 지나친 모욕이다.

▲ 조선일보 5월7일자 33면.
어제(5월 7일자) 조선일보 ‘태평로 칼럼’은 평범함을 영웅과 연결지었다. 역설적으로 조선일보가 마주하고 있는 세상이 그만큼 비상해졌다는 방증처럼 읽혔다. 그리고 오늘 조선일보가 팔고 있는 대표상품이 무엇인지 여실히 드러난 장면이기도 했다.

요새 조선일보는 오랫동안 누려온 권력을 바탕으로 한 연줄 취재를 제외하면, 제멋대로 좌파라고 부르는 전직 대통령과 몇몇 단체 그리고 MBC를 빼곤 별로 팔 게 없는 신문이 되어버렸다. 어제 박정훈 사회정책부장이 쓴 태평로 칼럼은 궁색해진 조선일보의 사정을 처연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전교조 소속 여교사 L씨와 <PD수첩>에서 번역 아르바이트를 했던 정지민씨를 영웅으로 만들며, 그 논리적 옹색함을 감추기 위해 신종플루 감염 수녀와 그 동료들의 얘기를 끼워 넣었다. 말하자면, 그들은 세상을 바꾼 평범한 영웅들이라기 보단, 조선일보 장사에 도움을 준 돌발적 취재원들이다.

신종플루 유행과 같은 아이템들을 연줄 취재로 팔아먹을 수 있는 유통기한은 길어야 한 달이다. 앞으로 죽은 권력 노무현은 얼마나 더 팔 수 있을까? 아무리 길게 잡아도 6개월을 넘기긴 벅찰 것이다. 조선일보 보기에 좌파단체들이야 부지기수로 많으니 무한정 팔아 댈 수 있을 것 같지만, 그것만으론 킬링 콘텐츠를 만들긴 어렵다. MBC야 지금처럼 신물까지 우려낸다면 어느 정도 호응을 얻을 수 있는 콘텐츠로 당분간은 재가공 할 수 있겠지만, 고기반찬도 어느 순간에 질리는 것이 당연한 생리이다.

조선일보는 확실히 괴물이다. 단 오늘만 산다. 조선일보를 위한 내일은 없다. 분노치 말자. 물론, 조선일보도 생물이다 보니 간간히 진화의 가능성이 엿보이기도 하지만 괘념치 말자. 원숭이가 간혹 인간의 지능에 버금가는 행동을 하더라도 다음 대의 원숭이가 인간이 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원래 이 글은 미디어스가 마련한 ‘오늘은 왠일인지 조선일보 데이!’에 출고됐어야 했는데, 하루 늦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이 글은 조선일보의 ‘내일’에 관한 예언서이니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당분간은 ‘조선일보 데이’일랑은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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