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스타꿀방대첩 좋아요>를 기점으로 쏟아진 SBS의 파일럿 프로그램들. 하지만 쏟아부은 물량에 비해 성과는 미미했다. 그러나 몇 달간의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정규 편성된 <미운 우리 새끼>가 금요일 밤의 강자 <나 혼자 산다>와 <언니들의 슬램덩크>까지 제치며 연속 2회에 걸쳐 동시간대 1위를 달성했다(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7.2%). 그에 이어 새롭게 편성된 <꽃놀이패> 역시 파일럿의 아쉬운 점을 개선하여 호의적 반응을 얻고 있다.

<미운 우리 새끼>와 <꽃놀이패>의 묘수

<미운 우리 새끼>와 <꽃놀이패>는 묘한 공통점을 가진다. 두 프로그램 모두 신규 프로그램이지만 '신규'라기엔 어쩐지 익숙한 모양새를 띠고 있다. 그건 두 프로그램을 보면 모두 어떤 프로그램이 자연스레 떠올려지는, 이미 성공적으로 검증된 모 프로그램들의 '아류'라는 오명을 둘러댈 길 없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미운 우리 새끼>는 ‘우리 아들이 혼자 산다’라는 우스갯소리가 떠돌 듯, 동시간대 MBC의 <나 혼자 산다>가 없었으면 등장할 수 없었을 프로그램이다. <미운 우리 새끼>의 소재는 <나 혼자 산다>와 같은 '싱글 라이프', 하지만 <미운 우리 새끼>는 거기에 '모성'이라는 조미료를 친다. 그래서 엄마가 지켜보는 아들의 혼자 사는 모습이 <나 혼자 산다>의 싱글 라이프와는 다른, '가족애'라는 변주를 가능케 하며 <나 혼자 산다>보다 광범위한 시청층을 흡수해 낸다.

SBS 새 예능프로그램 <꽃놀이패>

<꽃놀이패> 역시 마찬가지다. 연예인들이 모여 지정된 장소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포맷은 <1박2일>을 고스란히 답습한다. 거기에 두 편으로 나누어 진행하는 '비교체험 극과 극'의 여행 과정, 잠자리 복불복 역시 익숙한 것이다. <꽃놀이패>는 이런 이미 익숙한 포맷에 '환승권'과 '투표'라는 변주를 주어 새로움을 이끌어낸다. 꽃길과 흙길로 나뉜 팀. 제작 발표회에서 기자단의 노골적인 거수투표로 흙길 팀장을 고르는가 싶더니, 거기서 그치지 않고 '역전'이 가능한 환승권 추첨으로 여행의 긴장감을 부여한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꽃길과 흙길의 맛보기 여행이 끝난 밤, 출연자들이 익명으로 제출한 시를 통해 네티즌의 투표로 출연자들의 운명이 갈린다.

<미운 우리 새끼>나 <꽃놀이패>의 전략은 SBS가 시도했던 다른 파일럿 프로그램 <신의 직장>이나 <스타꿀방대첩 좋아요>가 보여주었던 이질감과 생소함을 우선적으로 넘어서는 유리함을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다. 거기에 두 프로그램이 가미한 '조미료'는, 이 프로그램들이 본 딴 프로그램의 시청층을 확장하거나 포인트를 달리하며 새로운 재미를 창출한다. 마치 <나는 가수다>로부터 시작된 경연 프로그램들이 <복면가왕>까지 변주되는 것처럼.

SBS 새 예능프로그램 <꽃놀이패>

하지만 타 방송사의 스테디셀러 프로그램에 '조미료'만 곁들였다는 점에서 콘텐츠 창조의 안이함이나 비겁함에 핑계 댈 말은 딱히 부족해 보인다. 하지만 <나는 가수다>가 방영되는 가운데 <불후의 명곡>을 런칭하는 관행이 이제 더는 치사하다고 욕먹을 일조차 되지 않는 방송가의 현실에서 새로울 것도 없는 '콘텐츠의 변주'이다.

어쨌든 최근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이하 동상이몽)>에 이어 <보컬 전쟁: 신의 목소리(이하 신의 목소리)>, <스타킹>, <오 마이 베이비>까지 줄을 이어서 폐지되고 있는 SBS 예능의 빈 자리를 <미운 우리 새끼>와 <꽃놀이패>가 순조롭게 바통을 이어 받을 가능성이 점쳐진다.

제작비 부담의 고육지책이 낳은

그런데 앞서 폐지된 예능과 새롭게 자리잡기 시작한 예능 사이에는 차별점이 두드러진다. <동상이몽>, <신의 목소리>, <스타킹> 등은 일반인 관객들을 비롯하여 다수의 출연자 등 제작비에서 부담을 주었던 프로그램들이다. 그에 반해 새롭게 편성된 <미운 우리 새끼>나 <꽃놀이패>는 보다 적은 수의 출연자들과 스튜디오라는 '경제적 예능'이라는 점에서, 최근 예능프로그램의 부진에 따른 제작비 부담을 한결 덜어낸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도, 두 프로그램은 불황 속 지상파를 구제할 구원투수이자 예능의 새로운 트렌드로서 주목할 바가 크다.

SBS 새 예능프로그램 <꽃놀이패>

또한 제작비의 부담을 가졌던 SBS 예능이 그 모색으로 거대 연예기획사 YG와 손잡았다는 점에서 <꽃놀이패>는 또 다른 변수를 낳는다. 이미 대표적 연예기획사 SM이 예능을 비롯한 다수의 드라마에서 초반 부진을 넘어서 자리잡고 있는 상황, 빅뱅 멤버들의 군입대가 예견된 시점에서 수익성 창출에 고민해왔던 YG의 예능 참여는 또 다른 국면을 연다.

그러나 'SM의 저주'라는 용어가 떠돌 정도로 SM의 아이돌들을 비롯한 소속 연예인을 중심으로 꾸렸던 SM발 작품들이 연달아 부진의 늪에 빠졌던 전례를, 예능 프로그램을 처음 제작한 YG는 비껴갈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꽃놀이패>는 제작 발표회장에서 출연자 조세호를 통해 이 프로그램의 정규 편성이 YG 소속 ‘유병재 때문’이라는, 조크인지 진실인지 모를 언급이 등장하는가 하면, YG 수장 양현석의 처남인 이재진을 합류시켜 두 사람이 YG 소속 아파트에서 사는 대화 등을 가감 없이 내보낸다. 자사 소속 연예인을 대거 출연시킨 YG 예능, 혹은 YG 예능에 출연한 YG 연예인들이 '저주'를 피해갈 것인지, 그 귀추도 주목된다.

하지만 이보다 더 우려되는 것은, 우리나라 영화계가 일부 대기업에 의한 제작과 배급의 독과점으로 인해 영화 배급 시장의 왜곡 및 영화 수준의 하향평준화를 이뤄, 이제 그 돌파구를 외국의 거대 자본에 기대어야 하는 웃픈 현실이 TV에서도 재연되지는 않을까 하는 점이다. 예능 프로그램에 SM소속 MC들의 과점 현상과 <라디오스타>에서도 보여지듯 SM 소속 연예인의 잦은 출연처럼, 이미 관행처럼 정착되고 있는 거대 연예기획사의 전횡이 더더욱 고착화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접어둘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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