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기자들이 모였다. 그곳에서 있던 한 사람은 기자들을 향해 말을 하기 시작했다. 10여명의 기자들은 이를 열심히 받아 적었다. 그러나 다음 날, 한 사람의 말은 언론에 각기 다르게 보도됐다.

김지하 시인은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한 음식점에서 시집 <못난 시들>과 사회 비평서 <소곤소곤 김지하의 세상이야기 인생이야기> (출판사 이룸)출간과 관련해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그의 책, 인생, 일상과 관련된 이야기를 비롯해 사회 현안에 대한 그의 생각을 기자들을 향해 쏟아냈다. 이번 신간의 주제이자 지난해 여름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촛불’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7일 오후 현재 간담회를 보도한 언론은 헤럴드경제, 문화일보,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경향신문, 한국경제, 국민일보, 매일경제, 뉴시스, 연합뉴스 등 12개로, 대부분 언론은 김지하 시인이 신간을 내게 된 배경과 신간의 내용, 촛불 등 대략 비슷한 내용을 선택해 보도했다.

▲ 조선일보 5월7일치 30면(인물)
크게 엇갈리는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촛불 보도

그러나 유독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보도는 또렷하게 대비된다. 조선일보와 한겨레, 각각의 기사만 보았다면 두 언론사 기자들이 같은 자리에 있었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기사 안에서 김지하 시인의 ‘촛불’에 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조선일보와 한겨레가 보도한 내용 모두 김지하 시인이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지만 기자들의 취사선택에 따라 기사 내용과 주제가 뒤바뀌었다. 여기에는 평소 ‘촛불’을 바라보고 대하는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입장이 상당 수준 반영돼 있다고 봐야 한다.

조선일보는 오늘치 <“시위꾼들, ‘촛불’을 ‘횃불’로 이용했다”>에서 김지하 시인이 “초기 촛불 시위의 순수성을 훼손한 폭력 운동권을 신랄하게 비판했다”고 보도했다.

▲ 김지하 시인이 6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한 음식점에서 출간과 관련해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도서출판사 이룸
“김 시인은 “촛불 시위에 나가서 중학생들하고 대화를 나눴더니, 아이들은 시위꾼을 가리키며 ‘저거 촛불 아니에요. 제 고기 구워먹으려고 시커멓게 피운 숯불 같아요’라고 하더라”면서 “시위꾼들은 순수한 촛불을 화적 떼의 횃불로 만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조선일보의 기사만 보면, 이 자리에서 김지하 시인은 촛불에 대한 긍정적 평가 없이 ‘초기 촛불이 가지고 있던 순수성을 훼손한 폭력성을 강하게 비판하는 동시에 시위꾼들이 순수한 촛불을 횃불로 만들었다’는 말만 한 것처럼 보인다.

조선일보는 또 기사 첫 부분에서 “촛불은 할머니가 손자 감기 낫게 해달라고 정화수 갖다 놓고 하얗게 태우는 것인데, 자칭 민주화 운동가들이 ‘촛불’을 ‘숯불’과 ‘횃불’로 이용했다”고 했지만 한국경제 <김지하씨 “촛불집회에 욕심이 타들어 ‘숯불’이 됐죠”> 보도와 견줬을 때 상당한 차이가 있다.

“촛불은 손자 감기 낫게 해달라고 정한수 떠놓고 비는 할머니의 다소곳한 마음이고 하얀 영혼입니다. 촛불에 무슨 욕심이 있겠습니까. 조직도 지도자도 책임자도 명령자도 없이 질서를 유지하고 의사를 전달했던 촛불집회는 제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반정부라면 20대부터 이골이 난 제가, 촛불집회가 반정부 집회에 불과했다면 감동했을 리가 없지요.” (한국경제)

▲ 한겨레 5월7일치 20면(인물)
오늘치 한겨레 <‘촛불’처럼 내멋대로 거리소리 담아>에서도 조선일보가 보도하지 않은 ‘새로운’ 내용이 잘 드러난다. 김지하 시인은 지난해 6월10일 이전, 촛불이 가지고 있는 순수성과 그 이후에 변질된 촛불의 폭력성에 대해 언급했으나, “촛불은 우주적 사건”이라며 촛불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높게 평가했다.

“6월10일 이후로는 촛불이 횃불로 변질되어 버렸지만, 첫 번째 촛불이 제게 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촛불은 우주적 사건입니다. 정권은 촛불을 원천봉쇄하겠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꺼질 촛불이 아닙니다. 대운하니 집시법이니 촛불 켤 일이 오죽 많습니까. 촛불은 또 켜지고 또 켜지고 또 켜질 겁니다. 저부터가 오늘 저녁에도 촛불을 켤 거예요. 물론 저는 거리에 나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정보당국이 도청하는 저희 집 전화에 대고 촛불을 켜겠다는 겁니다. 촛불을 켰다고 잡아갈 테면 잡아가라지요.” (한겨레)

김지하 시인의 발언 가운데 유독 촛불의 부정적인 면만을 선택해 기사화한 조선일보의 보도가 ‘허위’는 아니다. 기자 간담회에서 나온 팩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인의 촛불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외면한 채 부정적인 면만을 선택해 보도한 것은 지난해부터 촛불과 촛불 시민들을 수없이 폄하했던 조선일보의 보도 태도와 그대로 닿아 있다.

기자들은 쏟아진 여러 팩트 가운데 기사화할 가치가 있는 팩트를 골라 기사를 작성한다. 팩트 취사선택은 기자의 몫이고, 이 과정에서 기자의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오늘치 조선일보가 자사의 입장에 맞는 팩트만을 의도적으로 선택해 보도하고 있는 것은 지난해 조중동 광고 불매 운동 등으로 촛불에 크게 데인 뒤 촛불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게 되었음을 지면을 통해 스스로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선일보와 김지하 시인의 인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70년대 민주화운동의 상징이었던 김지하 시인은 지난 1991년 5월5일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을 당장 걷어치워라>는 글을 기고해 민족문학작가회의가 단체 이사직을 해임하고 회원 자격증을 정지시키는 등 크게 논란이 된 바 있다.

이후 김지하 시인은 2001년 <실천문학>과의 대담 자리에서 “돌아가신 분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쓰리고 그때의 상처가 젊은이들의 가슴에 생각보다 더 아프게 새겨진 것 같아 유구무언”이라고 사과하며 칼럼에 대해 유감을 표시했다.

김지하 시인이 조선일보를 만나 결과가 좋았던 적이 있었는지, 쓸데없는 궁금증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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