캥거루족. 어미의 육아낭 속에서 1년여를 보내는 캥거루에 빗대, 부모에게 경제적 이유 등으로 얹혀사는 젊은이들을 뜻하는 이 단어가 우리 사회에 등장한 것은 이웃 나라 일본을 통해서이다. 장기불황에 빠진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 아르바이트 등 비정규직이 늘어나며 나이가 들어서도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에 기대어 사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져왔다. 하지만 그로부터 미처 십년이 되기도 전에 그 '불황'은 이제 한국 사회를 덮쳤고, 우리 사회에도 '신(新) 캥거루족’이 등장했다. 그리고 이제는 이 낯설지 않은 신캥거루족에 대해 9월 4일 <SBS 스페셜- 우리 집에 신(新) 캥거루가 산다!>가 다뤘다.

이제 한국 사회에서도 생소하지 않은 캥거루족이지만, 전 세계적 불황 속에 이런 독립할 수 없는 젊은 세대의 처지는 대다수 국가의 고민이 되고 있다. 미국에는 대학 졸업 후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해 결혼도 못한 채 부모에게 얹혀사는 트윅스터(Twixter) 족이 있고, 눈치 없는 자식과 부모 사이의 내전을 코믹하게 그린 영화에서 유래된 탕기족이 프랑스에는 있다. 영국에는 부모의 은퇴 수당을 좀먹는 키퍼스가 있고, 중국에도 일정한 수입이나 직업 없이 부모를 '갉아먹고' 사는 컨라오 족이 있다.

평생 엄마 아빠의 그늘 아래 쉬고 싶다

프랑스 영화 <탕기>의 주인공 탕기의 말처럼 캥거루족은 '평생 엄마 아빠 그늘 아래 쉬고 싶은 자식들'이다. 한국 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1985년 9.1%에 비해 2010년 26.4%로 부모와 같이 사는 미혼 자녀의 비중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미혼 자녀만이 아니다. 경제적 혹은 육아의 이유로 부모와 같이 사는 기혼 자녀의 비중도 4.2%나 늘었다. 물론 자녀의 편의가 아니라 부모를 모시는 전통적인 '관례'가 있음을 감안한다 해도 이는 급격한 증가율이다.

2016년 대한민국 청년 실업률 12.5%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저임금 고용불안 등으로 대졸 청년들 가운데 51%가 여전히 부모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고 있다. 신캥거루족의 원래 의미는 결혼한 뒤에도 부모와 같이 사는 자식들을 뜻하는 말이지만, 9월 4일 방영된 <SBS 스페셜>은 결혼한 자녀는 물론, 결혼할 나이의 자녀들이 여전히 부모와 함께 사는 사례를 '신캥거루족'의 범주에 넣어 다루고 있다.

SBS 스페셜 ‘우리 집에 신(新) 캥거루가 산다!’ 편

다큐는 여러 유형의 신캥거루족을 보여준다. 대기업 협력회사 소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안덕호 씨는 정년을 2년 앞두고 있다. 최근 그가 종사하는 산업의 불황 여파로 그조차도 불투명한 상황이지만 아직 그에게는 부양해야 할 가족이 많다. 고등학교 시절 아이 아빠가 되어 25살이 된 현재, 세 아이를 둔 핸드폰 업체에 근무하는 큰아들 내외와 대학원 다니는 딸까지 그가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직장에 다닌다지만 아들의 한 달 벌이는 150만원 여. 안덕호 씨네 한 달 생활비는 300만 원이 넘고, 그건 온전히 아버지 안덕호 씨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은퇴 후 귀농을 하고 싶지만 후에 봉양을 할 테니 집을 두고 가라는 아들 내외. 아버지가 능력이 되는 한 아버지 그늘에서 버티고 싶다는 아들의 의지에 아버지는 불가항력이다.

결혼하지 않았지만 서른다섯이 되도록 경제적 독립을 하지 못한 인디밴드 로맨틱펀치의 기타리스트 강호윤 씨도 마찬가지다. 아버지가 여유 자금을 털어 실용음악학원까지 보내주며 뒷바라지하고, 어머니는 아들의 끼니를 책임진다. 그런가 하면 서른이 되도록 직장을 잡지 못한 취업 준비생들도 당연히 부모의 책임이다. 병원에 입원한 남편을 대신해서 목욕탕에서 일하는 가장 어머니에게 딸은 밀린 핸드폰 요금이라도 내달라 '애걸'하는 신세다. 하지만 어머니는 도와주자니 끝이 없고, 외면하자니 능력이 없는 딸 앞에서 언제까지 너를 보살펴야 하냐고 읍소한다.

더 심한 경우도 있다. 81세의 고충진 씨 노부부는 곰팡이가 핀 낡은 지하 전셋집에 산다. 마흔 넘은 아들이 있지만 이 집에서 경제 활동을 하는 사람은 없다. 중동 공사현장에서 일해 번듯한 아파트까지 마련했던 아버지, 하지만 대학원까지 나와 사업을 했던 아들은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아버지 집까지 날려 버렸다. 이제 노부부는 자신의 집도 없이 남의 집에서 죽음을 맞이할 현실에 안타까워하지만 희망은 쉬이 보이지 않는다.

자식 몰입 사회 한국, 하지만 개인이 독립할 수 없는 사회

SBS 스페셜 ‘우리 집에 신(新) 캥거루가 산다!’ 편

세계적 불황, 이를 비껴가지 않는 한국 사회에 신캥거루족은 예외가 될 수 없다. 하지만 '한국'이기에 더 특별한 이유도 있다. 6,25전쟁 이후 자식 교육만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성공'을 담보한다 생각했던 부모들은 온전히 자식에게 몰입했다. 그런데 그 결과, 2016년 대한민국 현실에선 부모에게 의존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그리고 그 반대급부로 결혼 적령기를 훨씬 넘은 자식을 여전히 아기처럼 여기는 '독립'하지 못한 부모와 자식이라는 성숙되지 못한 '가족 관계'를 낳는다.

다큐는 이런 비정상적인 한국 사회의 가족적 인식을 '노후에 봉양할 테니 지금은 가능한 한 부모의 도움을 받겠다'며 당당히 손을 내미는 자식들과, 심지어 '아기'라 부르며 끼니부터 벌이까지 노심초사 뒷바라지를 하는, 그러면서도 독립할 능력도 되지 않는 자식에게 결혼과 아이를 바라는 부모들을 통해 보여준다.

SBS 스페셜 ‘우리 집에 신(新) 캥거루가 산다!’ 편

하지만 그저 한국적 특수한 가족 관계에 머무르지는 않는다. 그런 '전근대적 가족' 관계가 가진 인식의 한계를 넘어, 현재 한국 사회가 '신캥거루족'을 배태한 원인을 다큐는 '사회'로 귀결시킨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서 일찍이 독립하여 병원에서 일하게 된 김현두 씨. 계약직으로 전국을 전전했던 그녀는 이제 또 '해고'도 못 되는 '계약 해지'의 현실에서 절망한다. 돈을 벌면 부모님을 도와줄 수 있으려니 했지만, 계약직으로 전전한 그녀가 결국 향하게 되는 것은 고향집이다.

청년층이 첫 직장을 잡는 데 걸리는 기간, 평균 12개월. 하지만 그조차도 상당수가 계약직인 고용 불안이 항시적으로 존재하는 한국 사회에서, 자녀들에게 '경제적 독립'은 먼 꿈과도 같은 일이다. 또한 한 개인의 경제적 실패를 온전히 그 개인과 가족이 짊어져야 하는 '가족 책임'의 사회에서 부모는 책임의 수레바퀴에서 쉬이 벗어날 수 없다. 4,50대의 70%, 그리고 6,70대의 53%가 은퇴 준비 대신 자녀를 우선 지원하겠다는 부모 세대의 인식은 이런 한국 사회의 불안정한 구조를 견디는 버팀막이 되고 있고, 그 현실이 '신캥거루족'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는 걸 다큐는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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