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내핑(bossnapping)이라고 들어는 보았는가. 최근 경기불황에 따라 생겨난 신조어, 보스내핑은 ‘boss’(상사)와 ‘kidnapping’(납치)의 합성어로 노동자들이 경영진을 감금하는 사태를 뜻하는 말이다.

보스내핑은 최근 프랑스에서 사회문제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실업자 수 250만명에 육박, 실업률 8%를 기록하고 있는 프랑스지만 기업에서는 실업률을 줄일 대책을 내놓기는커녕 구조조정을 통한 사업장 축소 및 폐쇄로 일관하고 있어 노동자들의 반발이 극에 달하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 여기에 더해 경영진들의 도덕적 해이는 노동자들의 반발을 극대화시켰다. 결국 프랑스 노동자들은 경영진을 감금하기 시작했다.

▲ 5월 5일 KBS '시사360' 캡처
- 지난 3월 12일, 일본계 기업 소니의 프랑스 기업주 세르즈 포셰(Serge Faucher)는 랑드 지방의 공장 가동 중지 발표를 한 직후, 노동자들에 의해 하룻밤 동안 감금됐다.
- 지난 3월 26일, 미국계 의료용품 제조업체인 3M은 직원들이 감원 계획에 반발해 회사 대표 등을 감금했다 풀어줬다.
- 지난 3월 31일, 미국계 건설장비 제조업체 캐터필러의 프랑스 직원들이 회사의 구조조정에 반발하며 경영진 4명을 사무실에 감금했다.
- 지난 4월 8일, 영국계 제조업체인 스카파 그룹의 프랑스 직원들은 이 회사의 프랑스 공장 폐쇄에 반발, 경영진 4명을 붙잡아 사무실에 감금한 상태에서 노사 협상을 제안했다.
- 남부 프랑스에 있는 미국계 자동차 부품회사인 몰렉스 노동자들은 2명의 경영인을 공장에 24시간이상 감금한 뒤 21일 밤 풀어줬다.

이 모든 일들은 한국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지만 프랑스에서 실제 발생한 일들이다. 이러한 프랑스의 보스내핑 사태에 대해 경영자 단체들은 정부가 강력하게 대처할 것을 촉구했고,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이건 말이 안된다. 사람을 감금시키다니, 우리는 법치 국가다. 나는 이것을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며 폭력 및 불법행위에 대해 용납할 수 없다고 엄포를 놓았지만 여론은 그게 아니었나 보다.

어제 5일 방영된 KBS <시사360>는 프랑스의 여론조사 기관 BVA에서 실시한 여론조사를 공개했다. 그 결과 ‘경영자 감금 등 폭력행위’가 정당하다는 여론이 절반을 넘어 55%를 기록했고, 부당하다는 반응은 39%에 불과했다.

<시사360>에 따르면 더 놀라운 사실은 실제 프랑스에서 과격한 행동으로 구속된 노동자가 아직 없다는 것이다. 또한 사법기관에서도 4월 27일 캐터필러에 대해 “단지 노동자들의 폭력행위에 대한 징벌을 가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사측에게 성실교섭을 지시했다”고 전했다.

‘점거’하셨어요? ‘실형’은 각오하셨죠?

보스내핑이라, ‘이러한 일이 한국에서 발생했다면?’이라고 상상할 수 있겠는가? 아마도 기타를 만드는 콜트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을 대비해보면 금방 그 답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CORT’라는 기타 상표. 세계시장 30%의 점유율을 가졌다고 하니 아마도 기타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단번에 알아볼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런 ‘CORT’를 만드는 노동자들이 오늘 6일 오전 서울남부지검 앞에서 “폭압적이고 편파적인 검찰권 행사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 오늘 오전 11시에 진행된 콜텍 전조합원 폭압적 검찰기소 항의 기자회견의 모습ⓒ문화연대
검찰이 ‘체불임금 지급’, ‘부당징계 및 해고된 조합원 복직’, ‘성실한 교섭’을 요구하며 본사를 점거했던 콜텍 노동자들에게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제3조(집단적 폭행 등) 1항을 적용해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기소한 것에 따른 것이었다. 검찰은 점거에 참여했던 노동자 가운데 1인을 제외하고 모든 조합원을 기소했다.

이에 전국금속노조는 기자회견문에서 “통상의 경우 검찰은 이 사건과 같이 단순 참가한 조합원에 대해 노조간부와 동일한 죄명으로 책임을 묻지 않았다”고 반발했다. 또한 이들은 이번 콜텍 전체조합원에 대한 기소는 단순히 콜트콜텍 노동자들만이 아닌 이후 점거투쟁 사업장에 대해서도 실형으로 기소하겠다는 것을 ‘선포’한 것이라며 검찰권 남용으로 밖에 해석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콜트 노동자들은 본사를 점거했지만 3~4시간 만에 투입된 경찰특공대에 의해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조민제 지부장과 콜텍지회 김경봉 쟁의부장이 구속됐다고 한다.

‘CORT’는 세계점유율 30% 기록, 한국재계 120위 달성, 박영호 사장 1천200억 자산가로 등극시켰지만 그 ‘CORT’를 만드는 노동자들의 삶은 피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법정최저임금으로 일해야 했고, 창문 하나 없는 작업공간에서, 기계톱에 손가락이 잘리고,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는 것은 기본, 인체에 유해하다고 알려진 유기용제를 마시며 일하다 결국엔 기관지염과 천식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 이것이 ‘CORT’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들의 삶이었다.

이들은 결국 2006년 4월 노동조합을 설립해서 싸우는 것을 선택했지만 박영호 사장은 2007년 7월 공장폐쇄와 조합원 전원에 대한 정리해고를 단행하기에 이른다. 이에 서울고등법원은 박 사장에게 노동자들에 대한 체불임금을 지급하고, 간부들에 대한 해고는 부당하며,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차별 역시 형사유죄판결을 받았지만 전혀 교섭에 조차 나서지 않고 있는 중이었다.

이들은 박 사장을 교섭테이블에 앉히기 위해 본사 점거를 선택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들에게 떨어진 것은 ‘실형’이라는 검찰의 기소였다.

보스내핑이 정당하다는 프랑스와는 어떤 차이가?

보스내핑 등 폭력행위에 대해 정당하다는 여론이 더 높은 프랑스. 또한 과격한 행동으로 아직 구속된 노동자가 없는 나라 프랑스. 사측에 성실교섭을 지시하는 프랑스의 사법기관. 이것은 노동자들의 단순 폭력행위가 아닌 사건 전체를 보려고 노력하는 프랑스 사회가 만들어낸 공동의 합의 틀이다.

그런데 지난 4일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이 현재 “3월 고용통계에서 실업자 95만명, 실업률이 4%대를 기록했다”며 “4월 통계에서는 100만명을 넘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청년 실업률이 8.8%로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미국계 의료용품 제조업체인 3M 노동자들에게 감금됐다 풀려난 한 간부는 “이들(노동자들)이 나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아무리 프랑스이기에 가능하다고 한다지만 교섭에 나오지 않는 경영진을 테이블에 앉히기 위해 본사점거 서너 시간 했다고 일반 참여자까지 ‘실형’으로 기소해도 하등 문제가 될 것 없는 한국사회는 정말 속된 말로 후지지 않은가. 보스내핑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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