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3일은 흥미로운 날이었다. 다른 어느 때보다 드라마가 많았던 날이었다. 그렇게 9월 3일을 드라마의 날로 만든 장본인들은 본래 드라마를 하던 사람들이 아니었고, 게다가 기존 드라마들을 뛰어넘는 관심을 끈 것은 더욱 흥미롭다. 덕분에 평소 주말에는 드라마를 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낯설지만 즐거운 시간을 제공해주었다. 무한도전의 무한상사와 KBS 시사교양국에서 만든 <임진왜란 1592>가 그 주인공들이다.

특히 <임진왜란 1592>에 주목하게 되는데, 그것은 이 드라마가 단지 교양국에서 제작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임진왜란 1592>는 요즘 드라마 특히 사극에서 사라진 ‘고증’이라는 단어를 가장 앞에 내세웠다. 요즘 사극은 딱히 퓨전사극이라는 말을 하지 않더라도 허구의 허용이 너무 과하다. 또한 중국이 드라마 수출의 주대상이 되면서는 얼토당토 않는 설정까지 등장하는 실정이다.

KBS1TV 드라마 <임진왜란 1592>

한동안 기사 댓글이나 커뮤니티를 통해서 고증을 지키라던 아우성도 요즘은 거의 사라진 상황이다. 이대로 사극도 역사와 사실을 떠나 그저 연애만 잘 만들면 되는 도구로 전락해버릴 위기에 놓인 것이다. 말이 사극이지 단지 쪽지고, 한복 입고 연애하는 것에 불과한 시절에 이처럼 당당하게 ‘이 이야기는 역사 기록에 근거하였다’는 말로 드라마를 시작한다는 것만으로도 묘한 감동과 향수조차 느끼게 된다.

이 드라마는 <역사스페셜>, <추적 60분> 등을 연출한 김한솔PD가 극본을 썼다. 후반 4,5부를 집필한 김정애 작가도 다른 이력을 찾기 어려웠지만 아마도 역시나 시사교양쪽 작가가 아닐까 짐작하게 된다. 당연히 연출도 지금까지 다큐를 만들던 사람(김한솔, 박성주)들이 했다. 다만 촬영의 경우 드라마와 다큐를 두루 섭렵한 백흥종 촬영감독이 했다.

자, 그렇다면 이제 두 가지 문제가 남는다. 일단은 누가 만들었든 드라마이니 재미가 있어야 할 것이며, 제작진이 자랑한 만큼 고증에 충실하냐는 것이다.

KBS1TV 드라마 <임진왜란 1592>

<임진왜란 1592>은 한국인이 보면 재미있을 것이고, 외국인의 시각이라면 그다지 재미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일본에 대한 감정적 분풀이는 매우 충실하다. 그래서 그 통쾌함을 재미로 착각할 수도 있다. 거북선 내에서 벌어지는 신파는 순간적으로는 뭉클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흠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다. 여전히 이순신이 최고라는 시각이 유지되었지만 그나마 나머지 사람들의 역할과 의미를 끌어올리려 애쓴 부분은 인정이 된다. 그런 여러 요소가 결합되어 재미는 나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고증 문제다. 제작진은 이 드라마를 ‘임진장초, 선조실록, 난중일기, 수조규식,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주인장에 근거했다’고 밝혔다. 그 결과 수조규식의 해석을 통해 이순신의 해군이 직사포로 왜군과 대항했다는 사실을 부각시킨 것이라든가 화약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형편을 암시하는 훈련 장면 등은 나무랄 데가 없다.

KBS1TV 드라마 <임진왜란 1592>

그러나 방영 직후 고증문제에 이의를 제기되는 상황이 아무래도 좀 불안하다. 사실이란 애국심마저 접고 접근해야 얻을 수 있는 결과일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 사실을 강조한 이 드라마가 고증에 대한 시비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논란을 바라는 마음도 없지 않다. 역사 문제로도 논란이 생기는 것이 연예인 스캔들에 시끌벅적한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임진왜란 1592>가 사실과 드라마의 재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지, 아니면 결국 드라마는 드라마의 한계를 못 벗어난다는 한계를 재확인시켜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만 있다면 <임진왜란 1592>는 드라마가 하지 못한, 다큐도 하지 못한 것을 해낸 칭찬을 톡톡히 받게 될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