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김연아 선수(이하 ‘선수’생략)의 과도한(?) 광고출연에 한 네티즌이 쓴소리를 했다가 인터넷 테러를 당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한 개인으로서 김연아가 자신의 선택이 되었든 매니지먼트사인 IB스포츠의 결정에 의했든 광고에 출연한 것을 뭐라 하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별 얘기도 아닌 것 가지고 테러 수준에 가까운 비난을 했던 다른 네티즌들도 이해가 안됐다. 소녀시대가 과도한 광고를 찍는 것과 김연아가 광고 찍는 것은 똑같은 공인이자 개인의 선택문제로 볼 수 있건만, 소녀시대의 그것에는 뭐라 않고, 김연아의 그것에만 뭐라 하는 것도 다소 납득하기 어려웠다. 더불어 그걸 가지고 김연아를 건들지 말라는 식으로 테러를 하는 것도 김연아를 ‘개인’으로 보지 않고, 국가적 정체성과 동일시하는 ‘상징’으로 대하는 것 같아 씁쓸했다. 김연아와 관련하여 나타난 이러한 사태에 대해 씁쓸해하면서 나 역시 씁쓸한 짓을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도 짚어볼 것은 짚어봐야겠다는 생각에 몇 마디 적는다.

나는 최근 들어 김연아의 이미지가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물론 이건 내 생각이다) 소비되는 현상이 매우 불편하다. 소비문화가 주류로 등장한 오늘날 이러한 새태에 대해 뭐라 그러는 것 자체가 웃기기는 하지만, 너무 생뚱맞는 이미지 소비가 보는 이로 하여금 불편함을 느끼게 하기 때문에 짚어볼 필요는 있다고 본다. 두 가지 예를 든다. 하나는 스포츠토토와 관련한 광고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자칭 ‘민족고대’의 오버스러운 광고다.

“제2의 김연아를 보고 싶지 않으세요?”

버스정류장에서 대학원생과 함께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면서 버스정류장 게시판에 붙어있던 여러 광고물을 보다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김연아가 출연한 스포츠토토 광고였다. 그걸 보던 대학원생이 “스포츠토토 수익금 가지고 피겨스케이팅에도 지원을 하나 보죠?”라고 물었다. 스포츠토토에 별 관심이 없었기에 “모르겠다”고 말하고 그냥 넘어갔더랬다.

집에서 와이프와 저녁을 먹는데 아까 버스정류장에서 봤던 그 광고가 TV에서 나오는게 아닌가. 와이프가 한 마디 하는 게 걸작이었다. “와, 김연아다. 오빠도 스포츠토토해라”고 말이다. 왜냐고 묻자, 스포츠토토하면 피겨스케이팅 같은 거 지원받을 거 아니냐는 답이 돌아왔다. 스포츠토토가 뭐하는 건지는 아느냐고 묻자 모른다 하더라. 그냥 김연아 나오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 “제2의 김연아를 보고 싶지 않으세요?”란 제목의 스포츠토토 광고 사진
스포츠토토 광고에 김연아가 출현한 것과 관련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한다. 그 수가 적든 많든, 그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김연아의 이미지가 그 속성과는 전혀 상관없이 운영되는 프로그램의 홍보를 위해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스포츠토토는 그 존재가치를 프로스포츠의 운영지원에 둔다. 이는 스포츠토토의 지원금 배분현황만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대한축구협회나 월드컵조직위원회, 한국농구연맹, 한국프로골프협회, 한국야구위원회, 한국배구연맹, 한국씨름연맹 등 ‘프로스포츠’ 중심으로 이루어짐을 말이다. 비인기종목 혹은 꿈나무 육성이라는 것과는 차원을 달리한다는 것이다. 물론, 가끔씩 그러한 것에 지원을 하기도 했다. 한때 기간을 정해놓고 복권 사서 투표권 번호 입력하면 한 건당 20원씩이 꿈나무 육성에 배당되기도 했는데, 그래봤자 100만명이 배팅하면 2400만원이고, 그 돈으로는 피겨스케이팅 선수 하나 1년 지원하기도 힘든 돈이다. 물론 이것마저도 한시적으로 운영되었던 캠페인 성 행사였다.

김연아의 이미지는 바로 여기에 사용된 것이다. 알아봐야 하겠지만, 아마도 이 광고에 김연아가 출연한 거, 공짜로 했을 것이다. 공익사업의 일환이라는 말로 말이다. 김연아 역시, 아니면 IB스포츠 역시 그러한 취지에 공감하여 선뜻 광고에 나서줬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김연아의 이미지는 전혀 엉뚱한 곳에서 소비된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물론, 김연아의 광고 때문에 스포츠토토 복권을 더 사고 덜 사고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건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김연아의 명사성(名士性)과 피겨스케이팅이 담지하는 비인기종목을 한데 엮어 사행사업으로서의 도박을 권장하는 일로 해석될 수 있다. 비난받을 일은 아닐지언정, 분명 페어플레이는 아니다. 많은 이들로 하여금 도박이라는 것이 가질 수밖에 없는 사행성을 ‘공공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처럼 위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족의 인재를 키워온 고려대학교, 세계의 리더를 낳았습니다!”

지난 2009년 3월29일,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김연아는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우승을 차지하였다. 207.71점이란 점수는 전무후무한(혹 모르겠다. 후무는 아닐지도) 기록이라고 한다. 나 또한 이 대회에서의 우승에 누구보다도 감격했는데, 그 이유는, 한국야구가 일본에게 아깝게 무릎을 꿇고 난 후 광분한 일본애들이 그 광분을 피겨의 아사다 마오로 이어가자고 했던 때였기 때문이었다. 그 맥을 펜치처럼 가뿐히 끊어준 자가 바로 김연아였기 때문이었다.

그 시합 후 국내 주요일간지의 대부분은 김연아의 광고를 대대적으로 실었다. 다음의 광고들을 보자. 가장 대표적으로 김연아가 광고모델로 나왔던 KB국민은행과 현대자동차였다. 이 기업들은 김연아에게 돈을 주고, 후원을 해주니 당연히 이 기회를 홍보의 차원에서 잡아 적절히 활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에 있는 고려대학교의 광고는?

▲ 동아일보 2009년 3월 30일에 동시에 게재된 김연아 광고. 왼쪽부터 KB국민은행(A3면), 현대자동차(A7면) 그리고 고려대학교(A1면).
“민족의 인재를 키워온 고려대학교, 세계의 리더를 낳았습니다!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한 고대생 김연아! 그녀의 눈물은 대한민국의 감동입니다. 감동을 주는 글로벌 인재 - 고려대학교가 키웁니다”

광고에 실린 문구다. 아주 감동적이다. 저 우는 모습, 웬만해선 울지 않던 김연아 선수가 그토록 염원하던 세계선수권대회 우승 후 흘린 눈물인데, 이 장면을 고려대학교가 멋지게 응용했다. 마치, “고려대학교의 지원이 없었으면 저는 이 자리에 서지 못했을 거예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숙연해진다. 그런데, 숙연해지는 건 그렇다치고, 이거 반칙 아닌가?

KB국민은행이나 현대자동차야 그들의 광고모델과 후원자의 자격으로 김연아의 이미지를 사용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겠지만, 이제 입학한 지 29일밖에 안 된 김연아에게 뭘 해줬다고 고려대가 이렇게 오버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걸 마케팅 분야에서는 잠복마케팅(ambush marketing)이라고 하던가. 다른 말로 하자면 무임승차 효과. 고려대에서 김연아의 입학조건으로 무엇을 제안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상황에 맞지 않는 광고는, 분명 상식적인 차원에서 ‘민족고대’의 오버다. 자신의 학생을 홍보하는 것은 좋지만, 문구도 그렇고, 상황도 옳지 않은 경우에 나섰다는 것은 자명한 듯 보인다. 김연아란 상품이 또 한 번 ‘생뚱맞게’ 소비되는 경우라 하겠다.

소비문화시대의 스포츠 명사성 소비와 그 명암

한 명의 유명 스포츠 명사(celebrity)가 자의든 타의든 상업적으로 소비되는 경우, 그것은 명암을 지닌다. 명(明)의 측면은 그 홍보를 하는 기업이나 단체에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김연아의 경우 대표적으로 대한빙상연맹의 발전을 이끌었다. 수많은 이들이 피겨스케이팅과 아이스하키 등의 ‘빙상’ 종목에 문을 두드리게 된 것이다. 암(暗)의 측면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그러한 소비과정에 휩쓸려 다니면서 연습에 몰두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쇼트트랙의 김동성이나 사격의 강초현, 더 나아가자면, 농구의 신혜인 선수 등이 대표적인 예인데, 모두들 중도하차했다. 물론, 그때는 선수에 대한 철저한 관리가 하나의 기업에 의해 이루어지지 못해 분위기에 휩쓸렸던 것이기에 지금의 김연아 사정과는 다르다. 김연아는 해당 매니지먼트사인 IB스포츠가 스케줄과 방송 및 광고 협약 건을 철저히 관리해준다고 하니, 중도하차할 개연성은 한층 수그러들지만 말이다.

이처럼 소비문화시대에 스포츠 스타는 자신의 이미지가 적극적으로 소비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인다. 이 시대의 스포츠가 바로 판촉문화(promotional culture)의 특징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개인의 의지에 의해 광고에서 이미지를 판매하는 전략을 취하든, 공익사업이나 어떤 행사의 홍보대사로서 자신의 이미지를 소비하든, 개인의 자유선택에 따라 이미지를 소비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의 선택과는 다르게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몇몇 집단에 의해 어긋난 채로 이미지가 소비된다면, 그건 개인이나 사회 전반적으로 좋을 것이 없다.

지금 김연아의 경우가 그런 것 같다. 과도한 이미지 소비에 휩쓸린 상태인데, 그 과정에는 자의로 선택된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어느 쪽에 우선순위를 두든, 중요한 것은 한 개인의 이미지가 올바른 맥락에서 올바르게 사용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앞서 사례로 들었던 스포츠토토와 고려대처럼, 다소 맥락과 다른 차원에서 사용되는 김연아의 이미지 소비. 불편하면 불편할 수 있고, 생각없이 본다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문제이겠지만, 결과적으로 반칙 아닐까? 스포츠 스타에 대한 올바른 이미지 소비 행태에 건투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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