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알고 있다시피, 그렇게 정교빈과 신애리가 자살을 한다고 합디다. 그것도 구은재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줄 알았던 바로 그 바닷가에서 말입니다. 아마도, 속죄를 ‘죽음’으로 할 모양인가 봅니다. 가시는 길, 편안히 가시라고 일단 명복부터 빌고 시작하지요.

장장 129회, 2008년 11월3일 첫방송을 시작한 장장 6개월의 레이스도 이제 마지막입니다. 그래요. 지난 반년 동안 <아내의 유혹>은 ‘막장 드라마’의 대중화를 선도했고, ‘점찍는 성형 수술’을 대유행시켰습니다. ‘점 하나만 찍었을 뿐’이지만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는 ‘페이스오프’의 신천지는 2008년에 이어 2009년인 지금까지도 예능계의 빅히트 상품입니다. 대단합니다.

설정 하나하나가 범상치 않은 드라마였지요. 임신한 아내에게, 친구에게 임신 중절 수술을 강요하고, 심지어 바다에 빠뜨렸습니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살인미수’이죠. 여하튼 정교빈과 신애리는 그녀의 죽음을 ‘자살’로 위장하고(공모범죄), 아무렇지 않게 결혼식을 준비하지요. 허나 이게 웬일입니까? 그녀는 죽지 않았습니다. 얼굴에 점 하나 찍고 버젓이 ‘민소희’로 돌아옵니다. 그때부터 불사조의 유혹 아니 <아내의 유혹>은 시작되었습니다.

▲ SBS 일일드라마 <아내의 유혹>
“<아내의 유혹>, 왜들 봤어요?”

‘막장 드라마’의 대표선수에게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고 비평을 선사하는 것은 애초부터 성립하지 않는 무엇일 겁니다. 그냥 욕 한 번 지껄이고, 비웃어주는 편이 훨씬 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내의 유혹>의 그 무시 못할 시청률이 자꾸 손가락을 잡습니다. 하긴 드라마의 작품성과 실험 등의 가치가 시청률과는 절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은 국내 드라마계의 오래된 정설이지요. 오히려 반비례일 때가 훨씬 많았습니다. 어쩜, 운명의 뒤바뀜, 낙태, 배신과 복수 등 히트 드라마의 엑기스적 요소를 두루 갖췄던 <아내의 유혹>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것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염치없게 이게 자꾸 궁금합니다. “그래도 진짜 왜 봤을까요?” “왜들 보셨나요?”

<인어아가씨> <하늘이시여> <너는 내운명>의 뒤를 이어 <아내의 유혹>은 ‘막장’의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았습니까? 다들 ‘욕’을 하지 않았습니까? “재밌기만 한데 뭐”라고 하던 사람도 있긴 했지만, 그럼에도 대세는 해도 너무 한 ‘막장’이란 것 아니었습니까. 그런데도 저녁 7시20분만 되면 SBS에 채널을 고정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냥, ‘습관’일까요? 그러네요. 습관인 것 같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저만 해도 집에 들어가기만 하면 리모컨을 찾아 TV부터 틉니다. 저는 <OCN>과<On Style>부터 채널을 돌려봅니다만, 대다수의 이들은 <아내의 유혹>을 봤던 거겠죠. 그런 게 바로 사람들의 ‘습관’이 아니겠습니까.

그럼 또 다시 의문이 듭니다. 그렇다면 <아내의 유혹>을 보는 ‘습관’은 왜 생겼을까요. 그래요. 다들 알고 있다시피 <아내의 유혹>에는 불륜, 배신, 복수, 출생의 비밀 따위의 요소들이 드라마적 긴장을 만들지만, 이게 호감을 가질 만한 요소들은 아니잖아요. 그냥 ‘자극적’이면서 ‘원초적’인 흥미와 재미를 원했던 걸까요? 그렇다면 <아내의 유혹>은 ‘이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우리네의 스트레스를 풀어내는 일종의 샌드백이었던 걸까요? 어느 연예인이 그랬다죠. 아내가 <아내의 유혹>을 즐겨보면서 욕을 하지 않으면 그 욕이 다 자신에게 돌아올까봐 두렵다고. 그런 점에서 신애리가 고맙다고. 여러분도 그런가요? 신애리를 비롯한 정교빈, 정하조, 민소희에게 욕을 하면 하루의 스트레스가 좀 풀리던가요.

그런데 좀 부족합니다. 스트레스를 풀 만한 대상이 <아내의 유혹>에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TV 뉴스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때때로 욕을 부릅니다. 부자들 좋으라고 서민들의 호주머니를 탈탈 터는 정책만을 제출하는 국회의원, 복지예산 ‘억’ 소리 나게 횡령하는 공무원, 기자에게 욕설하는 장관, 기자에게 성접대했다고 떠들어대는 경찰청장, 그리고 이 모든 것 위에서 군림하고 있는 파란 기와집 주인까지. 이들이야 말로 순도 100% 아닌가요. 이들에 비하면 신애리, 정교빈 정도는 새발의 피잖아요.

▲ 네티즌들이 캡처한 <아내의 유혹> 분노 모음
구은재, 구강재, 민현주, 정수빈…스스로가 법집행관

그래서 꼼꼼하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아내의 유혹>의 전체적인 흐름을 봅시다. 정교빈과 신애리의 ‘불륜’, 결국 ‘배신’을 예고했고, 이들은 ‘살인미수’까지 감행합니다. ‘납치’ ‘협박’ ‘절도’ ‘감금’ ‘폭행’ ‘사기’ 등 파출소 앞 현상수배 전단지에서 볼 만한 상황들이 꾸준히 전개되지만, 누구도 ‘법의 집행’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사뭇 범죄드라마와 같았던 <아내의 유혹>에는 정작 ‘법’이 없습니다. 숱하게 나오던 ‘경찰서’도 단지 ‘협박의 공간’으로써만 존재할 뿐이었습니다. 구은재, 신애리, 정교빈, 민소희, 구강재, 정하조, 민현주, 민건우, 백미인, 정수빈, 윤미자, 구영수, 정하늘 이 모두가 서로를 향해 악다구니를 쓰며 공권력을 희롱이라도 하듯 서로가 서로를 향해서만 죄를 묻고, 그들만의 법을 집행했습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구은재는 신애리와 정교빈의 살인미수를 경찰 앞에서 밝히지 말라고 그녀의 엄마에게 부탁합니다. 나름의 증거가 제시되지만, 그녀는 부득불 그녀의 엄마를 말립니다. 구강재는 돈을 받고 신애리와 민소희의 심부름을 한 사채업자를 응징합니다. 파파라치도 그랬지요. 정수빈은 경찰의 힘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에게 폭력을 가해 실명하게 만든 범인을 잡습니다. 법의 집행은 그들의 관계 속에서 가족의 ‘복수’ 내지는 개인적인 ‘용서’의 형태로 드러납니다. 그래서 구은재는 신애리와 정교빈을 감옥으로 보내지 않습니다. 대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관계를 어그러뜨리고, 감금합니다. 정수빈은 자신을 폭행한 신애리의 악행의 증거를 잡아내어 그녀를 벼랑 끝에 서게 합니다.

결말은 더욱 충격적이지요. 종방을 얼마 두지 않고 버럭 버럭 소리만 질러대던 신애리가 위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임신도 했더랬지요. 결국 난데없이 구은재와의 ‘러브 스토리’를 찍고 난 신애리는 온순해졌습니다. 구은재도 그녀를 선뜻 용서했지요. 법이 집행된 셈입니다. 구은재의 복수는 끝이 났고, 훈훈한 화해 모드로 돌아섰습니다.

이게 다 빌어먹을 ‘위암’ 때문이랍니다. 신애리와만은 죽어도 못살겠다고 고래고래 소리만 지르던 정교빈은 그녀를 위해 경찰서로 향했습니다. 감옥에 가기는 죽어도 싫다면서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걸 몸소 보여주셨던 정교빈이 스스로 경찰서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정말 대단한 반전 아닙니까. 소리 지르고, 싸우고, 뒹굴고, 모함하던 이들이 하루 아침에 그렇게 친구가 되어버렸다는 건. 모두 한가족이 되어버렸습니다.

<유주얼 서스펙트>도 울고갈 <아내의 유혹>의 반전

결국 <아내의 유혹>은 ‘막장’보다는 ‘반전’이 뛰어난 드라마가 아닌가 싶습니다. 드라마의 캐릭터들은 스스로가 법을 집행하기 위해 탐정이 되었다가 절도범이 되었다가 살인미수범이 되었다가 했습니다. 너무 덫이 많아서 예측하기 조차 어려웠습니다. 바로 이 지점입니다. ‘허무맹랑하다’ ‘말도 안된다’하고 봤는데, 알고보니 이 모두가 엄청난 ‘반전’이었던 것입니다. 서로를 용서하기 위한.

이제 알 것 같네요. 왜들 <아내의 유혹>을 봤는지 말입니다. 그래요. 저녁 7시20분만 되면 <아내의 유혹>에 채널을 맞추는 ‘습관’은 바로 이 지루한 ‘반전’을 기다리던 묘미 때문이었네요. ‘막장’이라 욕하면서도 시청률을 올려줬던 건, 예측조차 할 수 없었던 ‘반전’ 때문이라고요. 이렇게 맥락없이 모든 것을 뒤짚는 <아내의 유혹> 앞에서 <유주얼 서스펙트>도 <식스 센스>도 울고 가겠습니다, 그려.

다만, 당분간은 ‘반전’ 드라마는 사양하겠어요. 왜냐고요? 이 나라에서 ‘반전’ 드라마는 ‘막장’의 탈을 뒤집어 쓰기 때문에 제작진의 노력이 물거품되는 꼴을 보기 싫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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