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적인 언론감시기구인 ‘프리덤하우스’는 <2016년 언론자유 보고서>에서 한국을 ‘부분적 언론자유국(Partly Free)’으로 발표했다. 한국이 ‘부분적 언론자유국’으로 평가된 것은 2011년부터 6년째이다. 2002년부터 2010년까지 한국은 언론자유국(Free)으로 평가받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법, 정치, 경제적 환경 세 분야 중 정치적 환경(Political Enviornment) 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한국 언론이 정치권력에 장악됐다는 뜻으로 분석 가능하다. 하지만 현직 언론인들 사이에서는 정치권력보다 경제권력이 더 문제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24일 숙명여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한국방송학회, 한국언론학회, 한국언론정보학회 주관 <보도지침 폭로 30주년 기념 세미나>에 발제자와 토론자로 참여한 언론인들은 정치권력, 그리고 경제권력에 통제 당하는 언론 현실을 토로했다.

이날 발제자로 참여한 문소영 서울신문 사회2부장은 “이제 권위주의 시대를 지났기 때문에 정부의 심기를 건드리는 기사를 썼다고 해서 신변 위협을 받지는 않는다”면서 “문제는 자본에 저항하고 있을 때, 내부에서 얼마만큼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권력과 싸우는 것은 구도가 명확하다”면서 “하지만 자본과의 싸움은 지난하고 여론의 관심을 받지 못해, 판판이 깨진다”고 개탄했다.

▲ 문소영 서울신문 사회2부장의 발제자료

문소영 부장은 ‘권력과 자본의 언론 통제’에 대한 현직 기자 5명의 심층 인터뷰를 진행, 결과를 내놓았다. 그는 보수와 진보, 중도를 포괄하는 기자들을 선별했다면서 정치부와 산업, 경제부 출입 기자들을 대상으로 했다고 밝혔다.

(사진=언론노조)

권력이 언론에 행사하는 압력

이정현 녹취록 폭로와 관련, 기자들에게 청와대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물었다.

A기자는 “어떤 정권에서도 있어왔던 일이다. 당사자가 입장을 얘기할 수 있고, 반론과 해명을 할 자유가 있다”면서도 “KBS, MBC처럼 정부가 사장, 편집국장 등을 선임하거나 관여하는 언론사는 그런 방식의 대화가 외압적 성격으로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명백한 외압’이라고 얘기다.

B기자는 “각 부처의 대변인 등에서 기사 관련 전화가 오는 일이 있지만, 압력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청와대 홍보수석이 KBS보도국장에게 그렇게 요구하는 것은 말의 톤이나 뉴앙스를 떠나서 압력이라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정치권력이 언론에 압력을 넣을 필요가 없다는 자조적인 평가들도 있었다. 언론이 정치권력에 맞게 알아서 쓴다는 것이다.

D기자는 “요즘 기자들은 ‘양계장의 닭’이 돼 있다. 매일 쏟아지는 보도자료를 모이 삼아 먹다보니 길들여진 기사만 쓰느라고, 세상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쓰라는 기사만 쓰면서 순치된체 살아간다”면서 “이런 식인데 정치권력이 압력을 넣을 이유가 있겠냐”고 한탄했다.

(뉴스타파 동영상 캡쳐)

자본이 언론에 행사하는 통제

5명의 기자들은 자본권력에 대한 언론 독립성 확보가 중요하다고 공통된 의견을 내놓았다.

A기자는 “지금은 (정치권력보다) 자본이 훨씬 중요하다. 자본은 수시로 요구한다. 옛날보다 심하다는 것이 언론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예전엔 기사를 수정해달라고 편집국에 얘기했다면, 요즘은 광고국을 통해 들어온다. 이젠 광고국이 나서서 ‘어떻게 안 되냐’는 빈도가 늘었다. 같은 회사 사람이 힘들다고 하는데, 신경 안 쓰기 어렵다”고 밝혔다.

E기자는 “입사해서 2~3년에 한번씩 산업부에 갔다. 처음에는 6대 4정도로 언론 쪽으로 추가 기울어져 있었는데, 지금은 2대 8정도로 기업 쪽으로 기울었다. 우리가 봐주는 것이 아니라 기업에서 봐주고 있는 것”이라며 힘의 균형 자체가 언론에서 기업으로 넘어갔다고 판단했다.

특히, 뉴스타파가 보도한 ‘이건희 동영상’과 관련 보도에 대해 ‘참담했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삼성그룹 광고가 각 신문마다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자본권력의 심기를 건드릴 수 없었다는 것이다.

E기자는 “다들 고민했지만 쓸 수 없었을 것이다. 광고로부터 자유로운 연합뉴스가 쓴다면, 다른 언론사들도 쓰지 않을까 새벽 2시까지 기다렸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다음 날 아침 어느 신문사도 지면 기사를 쓴 곳이 없었다”고 밝혔다.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한겨레 관계자에 의해, 한겨레는 당시 ‘이건희 동영상’ 관련 기사를 지면에 실은 것으로 밝혀졌다.

D기자는 “언론사 고위직 삼성 장학생들에게 연락이 가지 않았겠냐"면서도 "기사를 쓰면 광고 없다는 식의 압력도 없었을 수도 있다. 압력을 넣기도 전에 자본이 시키는 대로 기사를 쓴 지가 언제인데, 자본권력이 압력을 넣을 이유가 없는 것 아니냐”고 한탄했다.

C기자는 “삼성 관련 기사를 쓸 때는 갑자기 기준이 엄격하고 높아져서, 취재기사가 완성도가 없으면 어려워지는 것을 볼 때마다 삼성의 존재를 느낀다”고 밝혔다.

현재 언론은 권력통제보다 자본통제를 더 우려

문소영 부장은 5명의 기자들에게 5점을 척도로 언론사 내부의 권력과 자본에 대한 자율성/독립성이 몇 점이냐고 물었다. 5점이 가장 높은 독립성/자율성이고, 1점을 최저점으로 매겼다. 언론이 처한 상황에 비관적인 태도를 보였던 C와 D기자를 제외한 세 명의 기자는 권력에 대한 저항력은 높은 편이었다. 반면, 자본에 대해서는 우려할만한 수준으로 낮았다.

▲ 문소영 서울신문 사회2부장의 발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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