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갑작스레 연예인 마약 사건이 터졌다. 배우와 모델이 연루돼 있었다. 그 배우는 누구나 알 만한 이는 아니더라도 주연급인 배우다. 그가 마약 투약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것이다. 이쯤 되면 고 장자연의 ‘성상납’ 파문에 이은 연예계의 초특급 비상사태다. 더욱이 흡입, 투약만 한 것이 아니라 연예인이 직접 유통에 판매까지 나섰다니, 떠들썩한 파문이 되기에 충분하다.

인터넷 쪽 분위기는 대강 이러하다. 고 장자연씨가 남긴 연예계의 잔인한 고질병에 대한 치료가 시작되기도 전에 ‘마약’ 사건이 또 터졌다며 한숨을 내쉰다. 누가 뭐라고 해도 권력에 대한 눈치보기 식 경찰 수사에 대한 질타다. 질렸다는 분위기다. 또 다른 이들은 ‘마약’ 복용 연예인의 방송 복귀 시기를 벌써부터 걱정하고 나섰다. 전 국민의 오락거리인 연예인 신변 걱정 뒷담화다.

신문 쪽 분위기는 장자연 사건과 이번 마약 사건을 연관지어 풀이, 해석하지는 않고 있다. 오히려 장자연은 이제 잊은 분위기다. 이전에 마약을 복용 내지는 흡입한 연예인을 다시 불러내 연예인 마약 사건을 훑고 있다. 한편에선 뜬금없이 한류를 심하게 걱정하고 있기도 하다. 그의 영화가 일본에서 개봉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혐한류’의 이미지로 입을 ‘무형’의 손실을 따지고 있다. 특히 얼마 전 알몸으로 공원을 활보한 일본의 쿠사나기 츠요시, 우리에겐 초난강으로 익숙한 그이와 비교하고 있다.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의 ‘도덕적 태도’를 비교/비난하며, 그를 강하게 원망하고 있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어느 나라에서나 연예인들은 비슷한 문제들을 일으키니까. 한류가 일고 있는 어느 나라에서도 한국 연예인들에게 특별히 더 높은 수준의 윤리와 도덕을 요구하진 않으니까.

어찌되었건 그는 유명 배우다. 스타고, 연예인이다. 그의 추문에 언론이, 대중이 폭발적으로 응하는 것은 당연하다. 만약 이번 사건이 기획된 것이라면, 그 점을 노렸을 것이다. 더욱이 다른 것도 아니고 한국사회에서 가장 금기시되는 ‘마약’이다.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범죄를 저지른 사실에 관심은 증폭되고 분노 혹은 호기심은 정점에 달한다. 그것뿐이다. 다른 더 특별한 이유는 없다. 단지 그가 ‘연예인’이기 때문이다. 술자리 안주와 시시콜콜한 수다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바로 그 연예인 말이다. 그걸로 됐다. 충분하다.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연예인=공인’ 등식

그런데 신문은 자꾸 그를 ‘공인’이라고 한다. 그냥 연예인이어서 관심을 갖는 것일 뿐인데 그가 공인이기 때문에 더 도덕적으로 문제라고 한다. 새삼스럽지만, 진짜 연예인이 공인인가? 언론은 무슨 사건만 터지면 연예인을 ‘공인’이라는 프레임에 가두어 놓고 심판하고 있다. 몇 차례 있었던 유명 배우의 마약 사건 때마다 예외는 없었다. 이번도 마찬가지이다.

<중앙일보>는 아예 28일자 사설에서 “연예인도 공인이다”라며 그를 질책했다. “자신의 역할과 영향력에 대한 자부심과 자기 절제, 최소한의 ‘공인’ 의식이 있었다면 마약 따위는 꿈조차 꾸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인가. 공인 여부와는 상관없이 ‘마약 따위는 그 누구도 꿈조차 꾸지 말아야 하는’ 무엇, 범죄적 행위가 아닌가? 연예인을 ‘공인’으로 만들기 위해 사설을 이렇게 얕은 함정에 함부로 밀어넣어도 되는 것인가 싶다.

▲ 중앙일보 4월 28일자 사설
<한국일보>도 만만치 않다. 28일 사설 “국내외로 파문이 큰 연예인 마약거래”에서 “탤런트 영화배우 모델 등 연예인들은 이미 사회적 공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많은 청소년들이 그들의 삶을 본보기로 여기고 있으며,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젊은층의 의식을 좌지우지할 만큼 영향력이 지대하다. 청소년이나 젊은층만이 아니다. 인터넷과 TV 등 영상매체가 일반화하면서 모든 세대에 영향을 미치고, 심지어 국경을 넘나드는 문화의 상징 역할까지 하고 있다. 그들의 공공성은 넓어졌으며, 따라서 공인으로서의 책임의식 또한 포괄적으로 요구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역시, 결론은 ‘연예인’은 ‘공인이다’라는 얘기이다.

근거는 없다. 너무 진부하고 빈약한 논리이다. 그 어떤 연예인도 청소년들의 본보기가 되기 위해 직업을 선택하지 않았다. 어느 연예인이 자발적으로 삶을 그렇게 영위하겠다고 하면, 쌍수들고 환영할 바람직한 일이겠지만, 사회적으로 그걸 요구하는 건 무리한 주문이다. 연예인은 배우로, 가수로, 개그맨으로 연예오락이라는 문화적 생산자로서 기능하면 그 뿐이다. 높은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에 걸맞은 ‘이미지’를 유지해야 한다는 책임은 계약의 문제, 즉 사인간의 윤리이다. 연예인에게 ‘공인’이라는 중한 사회적 책무까지 얹어야 하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

▲ 한국일보 4월 28일자 사설
‘막대한 수입에 사랑과 혜택’이 공인의 조건이라고?

그렇다면, 언론은 왜 연예인을 ‘공인’이라고 하는 걸까? <동아일보>의 27일자, ‘기자의 눈’에서 힌트를 발견했다. “공인의 잘못에 엄격한 日 ‘알몸소동 처리’‘라는 기사를 보면 알 수 있는데, 구사나기가 알몸 소동 이후 ”죄송합니다“를 연발했다고 한다. <동아일보>는 이를 “이유는 단 하나, ‘공인’이기 때문이다. 평소 일반인보다 더 많은 혜택과 사랑을 받고 막대한 수입에다 사회적 영향력까지 가졌던 만큼 책임과 의무 또한 더 무거울 수밖에 없다는 점을 스스로 받아들였다고 보인다”고 평가하였다. 즉, ‘막대한 수입에 사랑과 혜택을 받기에 연예인은 공인이었던 거였다.

▲ 동아일보 4월 27일자 30면(기자의 눈)
연예인이 왜 공인인지를 알았으니 이제 다시, <중앙일보> 사설로 돌아가 보자. “어떤 연예인은 대마초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킨 것으로도 모자라 북한의 로켓 발사를 “경축한다”고 칭송하고, 청소년을 가르친다는 대형 사설학원은 그를 광고 모델로 모시기도 했다. 무언가 단단히 잘못됐다.” 내가 보기에도 그렇다. 단단히 잘못됐다. 연예인에게 ‘공인’이라는 이미지를 덧씌우기 위해 그들의 권리, 그러니까 표현의 자유까지 가뿐하게 지려 밟고 있으니 얼마나 단단히 잘못된 것인가. 게다가 ‘막대한 수입에 사랑과 혜택을 받는 것’이 연예인의 공인된 이유라더니 이번에는 또 광고에 나오는 것을 문제 삼으면 어쩌란 말이냐? 그냥 <중앙일보>는 그 연예인이 싫다고 하는 것이 바람직한, 직업적 윤리에 합당한, 솔직한 태도이다. 뭘, 거창하게시리.

<중앙일보>에게 한 마디 더하자면, “도요타자동차 등 구사나기를 광고 모델로 기용했던 기업들은 즉시 광고를 중단했다. 공인의 무게에 상응하는 ‘책임’을 단단히 물은 것"이라고 했는데, 답답하다. 상품의 이미지가 추락하면 과감하게 내치는 것은 자본의 순리 아닌가? 고 최진실씨가 이혼하자 곧바로 모델 계약을 취소하고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까지 냈던 아파트 건설사는 최진실씨가 공인이어서 그랬나? <중앙일보>가 이를 모르나? 무슨 얼어 죽을 ‘공인’이기 때문에 ‘책임’을 물은 것인가. 정말 기가 차서 웃음도 나오질 않는다.

결론에 앞서 <한국일보> 사설 역시 “스타들은 대중의 사랑을 받는 만큼 그들의 범법행위는 더 엄정하게 다뤄져야 한다. 마약 사범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고 했는데,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그만해라. 대중의 사랑을 받으면 범법행위가 엄정하게 다뤄져야 하는 근거는 대체 어디서 나오는 막말이냐? 해도 너무한 무식함이다. 이걸 고상한 용어로 돌려주면, ‘인민재판’이라고 한다. 사설로 인민재판을 조장하면 안 된다. 아무리 시대가 회귀한대도 여긴 명백히 민주사회이다. 스타라는 이유로 죗값을 더 받아야 한다니 택도 없는 소리다.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해야 하고, 죄형법정주의를 따라야 한다. 언론들의 이같은 주장은 한국 사법체계의 문란함에 대한 역설적 방증이다.

언론의 코가 석자인 세월이다

이처럼 언론에서 제시하는 ‘연예인이 공인이다’라는 프레임은 자가당착의 논리에 참으로 허술하기 짝이 없는 구성일 뿐이다. 평소 연예인에 대한 언론의 태도를 배반하는 허위적인 태도다. 그들이 공인이라는 것을 울부짖으며 동시에 그들의 인권과, 민주주의 법정신을 가볍게 무시하니, 무시무시한 뒷골목의 논리이기도 하다. “차라리 뒷골목 폭력 조직에서 벌어진 마약 사건이었다면 엄벌에 처하라고 촉구하면 그뿐일 것이다”라는 <중앙일보>의 고백은 그래서 어쩌면 자기고백일지도 모른다. 득달같이 달려들어 연예인을 공인으로 둔갑시켜 팔아먹는 이유에 대한 비겁한 변명 말이다.

단언하건대, ‘연예인=공인’은 성립이 불가능한 등식이다. 그래서 언론은 비겁하다. ‘연예인’의 상품과 이미지를 양껏 소비하면서 그들이 죄를 저질렀을 때는, 또 정색하고 ‘공인’이 왜 그러냐고 꾸짖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제 억지 그만 부리고 ‘연예인’은 그냥 ‘연예인’이라 하자. 연예인이 마약에 연루된 것에 언론이 관심 갖는다고 뭐랄 사람 아무도 없으니 말이다.

‘막대한 수입에 사랑과 혜택을 받는 것’이 연예인의 공인이 된 근거라고 한다면 이렇게 물어보자. 조선일보의 “특정 임원”을 비롯한 언론사 사주들이야 말로 완벽한 공인 아니냐고. 무슨 말인지 알겠나? ‘연예인’을 ‘공인’으로 호명하는 바로 당신들의 앞가림이나 잘 하란 말이다. 언론의 코가 석자인 낯 뜨거운 세월에 말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