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MBC, SBS,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언론계 강호에는 고수들이 즐비하다. 저마다의 역사를 가진 그들은 숙련됨을 자랑하는 대신, ‘언론권력’이라 불리며 또다른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언제부터인가 이 고수들 사이에 아프리카TV, 소울드레서, 라쿤 등 낯선 이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강렬한 기억을 남겼던 지난해 촛불집회 때부터다.

이들은 이른바 ‘신종 고수(?)’. 아직은 서툴고, 힘이 미약해 휘청대지만 그들은 맞불 광고를 통해 정부에 당당히 도전장을 내밀고, 기존 언론들이 다루지 못한 부분에 카메라를 들이댐으로써 시민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전달하며 큰 호응을 받았다. 이들은 촛불집회 후 1년간 어디서 무엇을 하며 지냈을까? 두 손만 아니라 가슴 속에서도 타올랐을 촛불은 그들의 인생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을까?

◇ 낯선 무리들 “촛불집회 이후에도 정신없었어요”

국내외 패션정보를 다루는 다음 카페 소울드레서(cafe.daum.net/SoulDresser)는 지난해 5월 경향, 한겨레 1면에 정부의 미 쇠고기 홍보 광고에 반대하는 의견광고를 실어 주목을 받았다. 이들의 광고를 시작으로 엠엘비파크(MLBPARK)와 마이클럽 등 다른 인터넷 커뮤니티들의 신문지상을 통한 의견광고가 줄을 이었다.

▲ 인터넷 다음카페 ‘소울드레서’가 낸 경향신문 2008년 5월 19일자 1면 광고.
소울드레서 회원 A씨는 “촛불 집회에 나가면 나갈수록 사회의 부당함을 더 많이 느끼게 되었기에 (집회에) 안 나갈 수 없었다. 4월18일 용산에서 열린 촛불집회에도 참석했다”며 “소울드레서에서 저와 같이 집회에 나가는 분들은 6~7명이다. 이름이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소울드레서 회원 가운데에도 나오는 분들은 많다”고 밝혔다.

촛불집회 이전에는 전혀 사회 문제에 관심 없는 평범한 20대였다던 A씨는 현재 상황에 대해서도 “정부가 언론 관련해서 말도 안 되는 법을 통과시키려 하고 있고, 미네르바가 구속됐다 석방되는 등 답답한 상황들이 이어지고 있다. 촛불이 다시 일어났으면 좋겠는데 점점 더 무뎌지는 것 같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집회에 참여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촛불집회 현장 생중계로 유명해진 블로거 ‘라쿤’ 역시 “촛불 이후에도 KBS 정연주 사장 해임, YTN 낙하산 사장 투하, MBC PD수첩 등 언론문제가 터져서 정신이 없었다. 9월 정도까지는 이들 사안을 취재하다가 잠시 개인 공부를 한 뒤 올해 1월21일 다시 취재하러 나왔는데 바로 그날이 용산 참사가 터진 날이었다”며 “장비나 재정문제에 허덕여서 생중계 하긴 힘들고 대신 취재를 통해 글이나 영상을 블로그(www.rkparadigm.com)에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라쿤은 너무 이른 아침에 진행되는 탓에 출입기자들도 챙기기 힘겨워했던 ‘YTN노조의 낙하산 사장 출근저지 투쟁’도 2번 정도 챙겼단다.

◇ 외교관 꿈꾸던 대학생, 활동가로 변신하다

특히 라쿤의 경우 촛불집회는 인생의 진로를 바꾸게 한 하나의 큰 물줄기였다.

▲ 지난해 촛불집회 당시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만난 ‘라쿤’ ⓒ정은경
“원래는 외무고시를 준비해서 외교관 되는 게 꿈이었다.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좀더 힘을 갖는 데 보탬이 되고 싶었기 때문인데 휴학 중 우연히 촛불집회 생중계를 하게 됐고, 그렇게 각종 사회 문제를 취재하면서 진로를 바꾸게 됐다. 특히 미디어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지금은 시민단체인 언론인권센터에서 미디어특별지원위원회 위원이자 상임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이쪽으로 내 진로가 바뀔 줄은 정말 몰랐다.”

“이제 취재는 내 삶 그 자체”라는 라쿤은 매일 오후 6시까지 언론인권센터에서 미디어 관련 활동을 하고 이후에 ‘블로거’로서 비정규직·환경·언론 문제 등 다방면에 걸쳐 취재를 수행하고 있다.

“촛불은 지난해 꺼졌지만 잠재적 희망으로 우리에게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는 라쿤에게 촛불은 여전히 긍정적인 무엇이다. 그는 촛불 1주년인 5월2일 열리는 ‘촛불 행동의 날’ 행사에도 당연히 참가하겠단다. “지난 1년의 추억들을 되돌아보며 1인 미디어로서 열심히 취재를 하겠다”는 것이다.

라쿤은 “지난해 촛불집회 때 좀더 활약할 수 있었는데 아쉽다. 생중계를 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자료들을 블로그에 올려놨다면 더 많은 시민들에게 촛불집회를 알릴 수 있었을 텐데 뒤늦게야 올렸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1인미디어의 앞날에 대해 “개인이 블로그에 올리는 글까지도 ‘미디어’가 되는 세상이다. 정보력 등에서 기자와 블로거들이 차이가 날 수밖에 없긴 하지만 이제 블로거와 기자가 서로 정보를 맞교환하기도 한다. 1인 미디어는 앞으로 더욱 발전해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 1인 미디어, 올여름에 한번더 “Go Go!”?

라쿤이 1인 미디어의 가능성을 역설했다면 촛불집회 생중계로 인기를 끌었던 아프리카TV 인기 BJ(Broadcasting Jockey) ‘류신’은 ‘한계’에 방점을 찍었다.

류신은 “1인 미디어는 ‘봉화’까지만 가능한 것 같다. 계속 타오르는 데는 열정, 노력뿐만 아니라 재정적으로도 뒷받침이 돼야 한다”며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자비로 생중계를 하다보니까 촛불집회 이후 재정 상황이 굉장히 안좋아 무척 힘들었다”고 밝혔다.

▲ 지난해 촛불집회에서 현장을 실시간 중계하고 있는 아프리카TV BJ ‘류신’ⓒ윤희상
그는 “작년처럼 시민들이 거리로 나오면 1인 미디어도 언제든 노트북,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올 것이다. 미니노트북도 나오고 와이브로 성능이 좋아져서 훨씬 생중계하기 편리할 것”이라며 “다만 이번에는 스태프 지원이나 경찰로부터의 보호 등 1인 미디어에 대한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FTA, 남북관계 등 MB정부의 여러 실정을 보면 올 여름도 조용할 것 같진 않다. 솔직히 지난해처럼 ‘올인’하라고 하면 자신없다. 그런데 모르죠. 또, ‘필’이 꽂힌다면. 혼자 배낭을 매고 다시 거리로 나올지도.(웃음)”

5월2일 촛불 행동의 날에 대해 류신은 “아직 생중계 계획은 없지만 아무래도 의미가 있는 날이니 검토해봐야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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