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은 뛰어난 소설가일 뿐 아니라 에세이스트로 유명하다. 날카로운 통찰과 유머, 독설이 버무려진 그의 에세이는 한 마디로 읽을 맛이 난다. 그가 말년에 쓴 에세이 <간디에 대한 소견>에서 인도 독립운동 지도자 간디에 대해 색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그는 마하트마, 즉 위대한 영혼으로 불리는 간디의 '성인됨' 여부에 대한 논란은 제쳐두고 간디를 '인간'이자 정치인으로 평가한다. 결론적으로 간디의 '주된 정치적 목표가 영국의 지배를 평화롭게 종식시키는 것이었으며, 그것은 결국 성취되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비폭력 무저항운동에 대해서 간디 스스로 '동기는 종교적이었지만 그것이 바라는 정치적 결과를 얻어낼 수 있는 테크닉 또는 방안이라 주장'했듯이, 전략 전술적 측면에서 성공적이라 평가한다.

오웰은 간디의 두 가지 측면인 성인됨과 인간을 분리하고, 인간 즉 정치인만으로 평가를 시도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박정희, 김대중, 노무현 세 분의 역대 대통령은 각자의 추종자들에 의해 인간이 아니라 성인 심지어 신과 같은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신은 인간과 달리 평가의 대상이 아니다. 오직 경배의 대상일 뿐이다. 각각의 추종자들은 제3자가 자신들의 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려고 하면 심한 모욕감을 느끼는 것 같다. 감히 신을 인간으로 다루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듯 매우 격한 반응을 보인다. 세 사람의 추종자 사이의 대립은 이데올로기적 대립보다 사뭇 더 격렬하다. 한국정치의 전근대성을 드러내는 한 단면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연합뉴스)

하긴 인도에서도 간디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민주적 사회주의자이자 날카로운 근대적 정신의 소유자이고 영국인인 오웰이었기에 그런 평가가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다만 21세기에 접어든지 한참 지난 한국사회에서 아직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 이제 우리도 오웰식 접근이 필요하다. 세 사람은 도덕이나 종교지도자가 아니고 신은 더더구나 아니다. 세 사람은 현실 정치의 정글을 돌파해 나갔던 정치인이며, 그러한 맥락에서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 평가해야 한다.

필자는 99년 말부터 2001년 봄까지 청와대 시민사회비서실 행정관으로 일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 3년차를 시작하면서 시민사회와 더 많이 소통하고 협력하기 위해 신설한 비서실이다. 정당 경험도 없고 정치도 잘 몰랐지만 십 여 년 시민단체에서 활동한 경력 덕에 발탁이 되었다. 재야와 각별했던 김대중 대통령의 관계 때문에 시민사회 원로 중에는 소위 김대중의 친구들이 많았다. 김대중 대통령은 수시로 그들을 청와대로 불러 의견을 청취하는 시간을 마련했기 때문에 우리 비서실이 그 심부름을 하는 일이 많았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이영희, 백낙청, 김학준 등 20여 분의 시민사회 통일전문가들을 불러 의견을 듣고 말씀을 나누던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큰 영광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성공한 정치인이다. 실질적으로는 최초의 정권교체를 실현한 것만으로도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커다란 획을 그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중도에 그만두고 말았을테지만 포기를 모르는 그의 불굴의 의지는 놀라움 그 자체다. 집권 후에 그가 보여준 국정운영 능력은 다른 대통령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족탈불급 수준이다. 경제적으로 IMF위기를 조기에 졸업했고, 정보통신강국의 토대를 닦았다. 4대보험을 한 차원 끌어올렸고, 국민기초생활보장제를 도입했다. 국가인권위원회를 만들었고, 제주4.3부터 각종 의문사에 이르기까지 최초로 국가가 직접 나서서 역사적 진실을 밝히고 국민적 화해를 이루는 노력을 시작했다.

그는 국민과의 소통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일부에서 떠올리는 완고한 노인의 이미지는 편견에 가깝다. 그 자신이 소통을 막은 적은 없다. 다만 청와대 참모들이나 장관들과 얼마나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졌는지는 잘 모른다. 혹시 부족했다면 김대중이라는 인물이 갖는 특별한 역사적 무게에 원인이 있지 않을까 한다. 청와대에서 일하던 시절, 필자는 김대중 대통령을 오랫동안 모신 사람들이 대통령에 대해 엄청난 경외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공식 호칭과는 달리 통칭은 어르신이었다. 필자는 청와대 참모들의 태도를 당시 유행하던 노래에 빗대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정치인 김대중에 대한 평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DJP연합이다. 처음 연합에 대한 아이디어가 나왔을 때 재야와 정치권의 순혈주의자들은 크게 반발했다. 젊은 시절이었다면 김대중 대통령 자신이 거부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DJP연합은 대선승리에 큰 도움이 되었을 뿐 아니라 집권초기에 국정운영을 안정시키고, 여러 가지 인권신장을 위한 정책과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는데도 보탬이 되었다. 오히려 내각제 추진을 거부해 DJP연합을 집권 중반기에 해소하면서 일회성으로 그친 것이 문제다. 다행히 노무현 대통령 승리로 정권연장에 성공했지만 뒤이어 전개된 정치상황을 보면 루스벨트가 구축했던 뉴딜연합처럼 수 십 년 가는 숭리 연합으로 발전시킬 수는 없었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김대중 대통령 7주기를 맞아 그가 이제는 올림포스 산에서 내려와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우리와 함께 하기를 바란다. 신화의 세계에서 벗어나 역사의 일부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하기 나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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