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통과된 한 법률 때문에 인터넷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는 기사가 실렸다. 바로 지난 4월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저작권법 개정안’ 때문이다. 한나라당 강승규 의원이 발의한 이 개정안은 사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광부)의 법안이다. 문광부가 2008년 7월 16일 입법예고한 법안이 일부 수정되어 의원 입법 형식으로 발의된 것이다. 이 법안은 소위 ‘삼진아웃’ 제도를 주 내용으로 한다. 불법 복제물을 반복적으로 게시한 이용자의 계정을 일정기간 동안 정지하거나, 불법 복제물 삭제 명령을 반복적으로 받은 게시판을 저작권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일정기간 정지하도록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을 문광부 장관에 부여하였다. 애초에는 반복적인 저작권 위반을 근거로 특정 온라인서비스를 폐지(즉, 사이트 폐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있었으나, 상임위 논의 과정에서 이 조항은 삭제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지난 3월10일, 민주당 이종걸 의원이 다음(Daum) 아고라에 “다음의 ‘아고라’도 폐쇄될 수 있습니다!!”(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584219)라는 글을 쓴 이후, 누리꾼들 사이에서도 이 법안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었다. 그러나 이 법안에 대한 누리꾼과 인터넷 업계의 우려와 반발은 아쉽게도 너무 늦게 터져나왔다.

▲ 4월15일자 아시아경제 5면 기사.
저작권 세 번 위반하면 아웃?

이번 저작권법 개정안의 문제점은 우선 제재조치가 과도하다는 것이다. 마치 주차위반 몇 번 했다고 면허를 취소하거나 특정 지역에 출입을 금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용자 계정은 이용자가 정보에 접근하고, 글을 쓰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 위한 필수적 관문이다. 이용자 공간에는 이용자들이 오랜 시간 동안 축적해 온 활동 및 소통의 기록들(예를 들어, 메일, 글목록이나 거래목록, 게임 아이템 등)이 저장된다. 이용자 계정의 해지는 이용자의 정보 접근권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며, 해당 이용자를 그 공간 내에서 추방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게시판의 폐지 역시 마찬가지다. 불법 복제물이 몇 번 올라왔다고 특정 게시판을 불법 복제물의 온상이라고 볼 근거는 없을 뿐더러, 이를 빌미로 게시판을 폐지한다면 불법 복제물과 관련 없는 수많은 이용자들의 소통 공간 역시 사라지게 된다. 예를 들어, 영화 동호회에 불법 복제된 영화 클립이나 스틸 이미지가 올라왔다고 게시판 자체를 폐지하는 것이 합당한 규제일까?

다행히 상임위 논의 과정에서 삭제되었지만, 특정 인터넷 서비스를 차단하는 것은 더욱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지난해 촛불 집회 과정에서 주목받았던 ‘아프리카 (afreeca) 서비스’를 보자. 이 서비스는 방송 생중계의 불법 전송 문제로 논란이 되었고, 지난 2008년 6월 문용식 대표가 저작권법 위반으로 구속되기도 하였다. 만일 아프리카 서비스가 5월 이전에 불법 복제가 있었다는 이유로 폐쇄되었다면, 촛불집회 과정에서 보여준 ‘이용자들이 콘텐츠를 생산하고 유통시키는 새로운 모델’의 실험이 가능할 수 있었겠는가?

저작권법은 또 하나의 인터넷 통제법!

정부 개정안의 더 큰 문제점은 자의적인 내용 규제, 즉 검열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개정안을 보면, 그 구조가 ‘인터넷 내용 심의구조’와 상당히 유사하다. 인터넷 상의 표현물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내용 심의와 시정 요구·권고를 하고,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방송통신위원회가 삭제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개정안에 따르면 저작권위원회가 심의를 하고, 불법복제물의 삭제, 이용자 계정의 해지, 게시판의 폐지, 사이트 폐쇄 등의 시정권고를 할 수 있으며,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문광부 장관이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다. 인터넷 상의 내용 심의에 관한 정보통신망법(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현재 위헌 소송 중이다. 이번 저작권법 개정안 역시 마찬가지로 위헌적이다.

‘상영 중인 영화 파일을 인터넷에 올리는 것은 명백한 불법복제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작권 위반 여부를 판단하는 일은 사실 매우 어렵다. 예를 들어, 어떤 영화 비평 게시물에서 동영상 클립이나 사진, 음악 등을 이용했을 때, 이것이 저작권 위반인지 공정이용인지 판단하는 것은 전문가들에게도 쉽지 않은 문제이다. 하물며 어떤 게시판이나 서비스가 ‘저작권 등의 이용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더욱 그렇지 않겠는가. 게다가 정부가 이러한 판단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면, 도대체 법원은 왜 필요한가? 정부 개정안은 사법적인 판단도 없이 이용자, 게시판 운영자, 서비스 사업자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검열’ 혹은 또 다른 인터넷 통제에 다름 아니다.

이 점에서 이종걸 의원과 민주당은 할 말이 없다. 사실 저작권법의 이와 같은 ‘검열’ 시스템은 지난 2005년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에서 입안한 저작권법에 이미 포함되어 있었다. 다만, 이번 개정안은 문광부 장관에게 ‘삭제’ 권한만 부여하던 것에서 나아가, 이용자의 계정 및 게시판을 정지할 수 있는 권한을 추가적으로 부여한 것 뿐이다.

또한, 이번 저작권법 개정안 통과는 여야가 미디어 관련법에 대해 합의한 소위 ‘3·2 합의’의 결과이다. 이 합의에서 여야는 미디어 관련법에 대해 사회적 논의기구를 설치하여 논의하기로 한 합의와 함께, 저작권법은 3월3일 처리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3월3일 하룻만에 국회 문방위 심사소위, 문방위, 법사위를 일사천리로 통과하여 본회의에까지 상정되었는데, 본회의가 지연되면서 4월1일에 처리된 것 뿐이다. 이종걸 의원이 아고라에 글을 써서 누리꾼들의 반대 여론을 이끌어내고자 했다면, 3월3일 전에 썼어야 했다.

어쨌든 이종걸 의원의 글처럼, 그리고 인터넷 업체들이 우려하는 대로, 이제 MB 정부는 저작권 위반을 빌미로 삼아, 자신의 맘에 들지 않는 게시판들을 폐쇄할 수 있는 수단을 갖게 되었다. 눈엣가시였던 ‘아프리카(afreeca)’를 규제하기 위해 저작권법을 들이댄 것처럼, 아고라를 폐쇄하는 데 저작권법이 이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다못해 신문 기사나 다른 블로거의 글을 펌질하는 것조차 저작권 위반이니까.

‘권리자 편향적’인 저작권법을 넘은 대안 입법, 최문순 의원안

한편, 정보공유연대 IPLeft와 진보네트워크센터는 정부안에 대한 비판과 함께, 우리들의 입장을 담은 저작권법 개정안을 준비해왔다. 지난 2월부터 최문순 의원실과 내용 협의를 해온 끝에, 최문순 의원의 저작권법 개정안(이하 최문순안)이 4월2일 발의되었다.

최문순안은 ‘공정이용’의 폭을 확대하고 있다. 공정이용이란 권리자의 허락 없이도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학교 교육 목적이나 시사보도, 도서관에서의 이용 등 공익적 목적이나 저작물의 원활한 유통을 위해 권리자의 허락 없이도 저작물을 복제하거나 이용할 수 있다. 현행 저작권법에도 공정이용에 해당하는 경우를 열거하고 있다. 그러나 공정이용에 해당될 수 있는 경우를 모두 나열하기는 힘들며, 환경 변화에 따른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일정한 조건에 부합하면 공정이용으로 인정하는 ‘공정이용 일반조항’을 신설하였다. 미국의 경우에도 공정이용 일반조항이 있다. 또 세금과 같은 공적 자금의 지원으로 창작되는 정부 저작물은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디지털 도서관을 제 자리로

현행 저작권법에 따르면 ‘디지털 도서관’에 원격으로 접근할 수가 없다. 대안 법안에는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디지털 도서관’의 역할을 복원하고자 하는 조항도 있다. 학내 연구실에서 학교 도서관에 접근하여 열람하는 것조차 불법인 현실이다. 도서관 내에서 열람할 때에도 동시에 열람할 수 있는 이용자 수는 ‘이용허락을 받은 도서의 부수’로 제한된다. 직접 도서관에 가야 하고, 동시에 열람할 수 있는 이용자 수마저 제한한다면 ‘디지털 도서관’이라는 말이 무색해진다. 저작권법을 이렇게 만든 이유는 ‘도서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디지털 도서관으로 원격 열람이 가능하다면, 누가 돈을 주고 책을 사보겠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는 과도할 뿐더러, 굳이 비판매용 도서에까지 동일한 제한을 적용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원격 열람을 허용하되, 판매용 도서의 경우 5년이 경과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원격 열람을 제한하고, 5년이 경과한 후라도 원격 열람에 따른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하였다.

형사 처벌 독소조항은 이제 그만

지난 몇 년 동안 저작권자를 대리한다는 법무법인들이 불법 복제를 빌미로 게시자를 협박하여 합의금을 받아내는 일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어 왔다. 비록 저작권 위반 행위를 했다고 하나, 형사 처벌을 빌미로 과도한 합의금을 요구하거나, 서로 다른 시점에 행해진 저작권 위반 행위를 미리 알고서도 합의 이후에 다시 합의금을 요구하는 등 법무법인들의 비윤리적 행태는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이 때문에 자살하는 청소년까지 발생하기도 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작권 위반에 대한 형사 처벌을 ‘영리 목적의 업으로 한 자’로 제한하도록 하였다. 변재일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안에도 ‘총 소매가격이 100만원 이하인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도록 하는 등 다양한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이제, 저작권법에 개입하자!

지난 2005년 저작권법 개정 이후, 네티즌들이 자신의 블로그나 미니홈피에 올려둔 배경 음악이나 사진, 동영상을 삭제하는 등 큰 혼란이 있었다. 저작권법은 우리의 문화 생활이나 일상적인 커뮤니케이션에 이미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저작권법을 둘러싼 논란에서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일은 ‘불법복제도 허용하자’라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불법이고, 무엇이 합법인지’, ‘어떠한 체제가 진정 문화의 발전을 위한 것인지’ 묻는 일이다. 그러나 ‘불법복제는 도둑질’이라는 단순한 구호만 사회를 맴돌고 있다. 이제 인터넷, 지식, 문화에 대한 우리의 수용 방식을 규정하는 저작권법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갖고 개입해야 할 때이다.

정부의 저작권법 개정안은 이미 통과되었지만, 독소조항에 대한 우려와 분노를 축적시켜놓는 것은 중요하다. 향후에 이와 같은 독소조항을 삭제하는 싸움을 전개해야 할 테니까. 최문순안은 또 다른 독소조항을 삭제하고, 저작권의 균형을 회복하기 위한 싸움의 하나이다. 최문순안이 원안대로 국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지지를 바란다.

진보네트워크센터는,
자체 서버를 구축하여 사회운동의 정보화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진보넷은 국가와 자본의 검열과 통제로부터 여러분의 프라이버시와 표현의 자유를 지키고자 노력합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