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대한민국 사회는 여전히 조선시대의 ‘남녀칠세 부동석’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남자와 여자가 함께 공부하면 성적이 낮다”는 전근대적 논리(달리 말하면 꼰대스럽거나 촌스러운)가 다시 등장했다. 이는 수능 성적 공개 이후 나오는 이슈 가운데 하나다.

17일자 동아일보는 3면 <남녀공학 예상보다 성적 엉망 非공학 전환요구 급물살 탈듯>에서 “남녀공학 학교의 성적이 남학교나 여학교보다 낮은 것으로 나오자 그동안 반대 논리에 묻혔던 남녀 공학 학교의 단성(單性)학교 전환 요구가 다시 표면화할 조짐”이라며 “남녀공학 학교가 논란에 휩싸인 반면 지난해 지정된 전국 82개 기숙형 공립고에 대한 관심은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수능 성적 공개로 전남 장성고, 경북 양양여고 등의 ‘기숙사 효과’가 확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렇다면, 조중동과 교과부가 긍정적으로 소개하는 특목고나 자사고, 국제중의 많은 곳들이 남녀공학인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 동아일보 16일자 5면에 실린 성적 공개 관련 자료들
‘남녀 비공학’ 주장처럼, 지역별 수능 성적을 공개한 이후 정밀한 원인 분석도 없는 온갖 처방으로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성적공개의 이유는 ‘공교육의 경쟁력 제고’였는데, 역설적으로 성적 공개로 공교육이 완전히 무너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성적 상위권에 속한 대다수 학교들이 거의 학원식으로 아이들을 잡아놓고 공부시키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진보신당 송경원 정책연구원은 17일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에서 “이럴 바에는 아예 학교를 없애는 건 어떨까요. ‘무늬만 학교’나 학원이나 다를 바 없으니까요. 어려울 것도 없어 보입니다. 현판의 교(校) 자를 원(院)으로 바꾸면 그만”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아직 성적을 공개한 지 3일밖에 지나지 않았으나 지역은 난리났다. 하위권에 속하는 지역들은 ‘절치부심 프로젝트’에 들어가며 ‘특목고’ ‘자사고’ 등을 유치해 경쟁력을 키우겠다고 야단이고, 최상위에 속한 지역들은 이 자리를 지키겠다며 요란하다.

신문시장에서 독과점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조중동은 성적 공개의 폐해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고 ‘평준화 해체’와 ‘특목고·자사고의 우수성’만을 강조하고 있다. 이들에게 공동체적 가치 함양 등과 같은 공교육의 본질 따윈 중요하지 않다.

‘성적 공개’에 대해 가장 공을 들여 보도하고 있는 곳은 동아일보다. 동아일보는 성적공개 다음날인 16일자 1, 3, 4, 5면에서 상위권에 위치한 지역 학교들의 비결을 장밋빛 일색으로 다뤘다.

“전교생을 밤 11시 반까지 자율학습 시키며 폐교위기서 ‘전국 으뜸’으로 꼽히는 토산물 고추만큼 매운 변신을 했다”(경북 양양여고) “광주의 힘은 교사의 우수성과 노력 그리고 학교간 경쟁이다. 사립학교 비율이 전국 최고 수준이어서 ‘명문 사립’의 명성을 노리는 학교간 경쟁도 치열하다. 대부분 광주 출신인 교사들은 ‘공부만이 살길이다’는 신념을 갖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광주광역시) 등 동아일보의 평소 논조대로 ‘경쟁’을 강조하는 식이다.

동아일보는 지역별 공개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지 “성적 자료를 3그룹으로 나누어 공개한 것은 지나친 소심증이다. 이명박 정부가 수능 성적 공개에 결단을 내린 것은 잘한 일이지만, 이왕 할 바엔 좀더 정확하게 그리고 국민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공개했더라면 좋았을 것”(16일자 사설 <수능 성적 공개, 의미 있지만 미흡하다>)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도 크게 다르지 않다. 농어촌 지역이면서도 전국 최상위권에 오른 경남 거창군, 전남 장성군의 사례를 소개하며 “공교육도 하면 된다”(조선일보는 16일자 10면 <경남 거창 4개고 ‘시너지 효과’…“서울서도 유학생 온다”>, 중앙일보 16일자 33면 <‘기숙형 자율고’의 힘 입증한 농촌 학교 장성·거창고>)며 한껏 치켜세운다.

조선일보는 16일자 사설 <수능성적 공개, 궁극적으론 ‘학교별 공개’로 가야>에서 “광역 또는 기초 지자체 단위로 작성되는 수능성적만 갖고는 일선 학교와 교사들이 분발하도록 충분한 자극을 줄 수가 없다. 수능성적 공개는 궁극적으론 학교 단위로 시행돼야 한다”며 “일선 학교에서 ‘장성 배우기’ ‘거창 배우기’ 바람이 일어나면 공교육 분위기가 그만큼 달라질 수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조중동이 밝히지 않은 게 있다. 전남 장성고나 경남 거창고는 ‘기숙형 자율학교’로, 시험을 치르고 들어가는 곳이다. 한마디로 “원래 공부 잘하는 애들만 뽑은 곳”이다. 평가원이 상위 20%에 포함됐다고 밝힌 부산 연제구·해운대구, 광주 남구, 경기 과천시도 특목고와 자사고가 있는 곳이다.

이에 대해 한겨레는 16일 1면 8면 <우등생 뽑아 ‘수능 우수’…특목·자사고가 현실 왜곡>에서 “평가원이 일부 지역의 예를 들며, 교장과 교사의 열의 등 ‘학교 효과’에 따른 결과인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이 학교들은 처음부터 우수한 학생들만을 뽑은 ‘선발집단’이다. 이는 ‘선발효과’ 또는 ‘우수학생효과’일 뿐 지역 특성과는 무관하다”는 성기선 가톨릭대 교육학과 교수의 말을 전했다.

한겨레는 16일자 사설 <국민 기망으로 드러난 수능 성적 공개>에서 “이런 자료를 갖고 학력차를 줄이는 실질적 대책을 세울 수 있다고 주장하는 건 그야말로 기만이다. 결국 정부가 교육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수능성적 공개를 강행한 것은 학교와 학생을 살인적인 경쟁 구조 속으로 밀어넣겠다는 동기밖에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 한겨레 17일자 11면
조중동만 보면, 수능 성적 공개는 매우 바람직한 것으로 별다른 부작용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지역 교육청들은 다른 지역과의 순위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특목고 유치 등을 추진하며 무한경쟁의 링에 뛰어들고 있다.

한겨레는 17일자 11면 <또 빗나간 ‘특목고 열풍’ 평준화 무력화 거세진다>에서 “지역의 ‘간판’ 구실을 할 특수목적고 등 ‘입시 명문’을 유치하려는 자치단체들의 요구가 커지고, 그동안 잠복해있던 ‘평준화 해체’론도 힘을 얻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며 “이번 수능 분석 결과를 시험을 치러 우수학생을 뽑는 학교를 곳곳에 세우자는 식으로 해석할 경우, 평준화는 사실상 와해될 수밖에 없다. 1970년대처럼 수많은 중학생들이 고교입시에 내몰리는 상황을 우리 사회가 과연 감당할 수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함께하는교육시민모임 김명신 회장의 말을 전했다.

경향신문 역시 17일자 12면 톱 <“특목고만이 살길” 광풍 예고>에서 수능 성적 공개의 파장에 대해 자세하게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성적과 성적향상도가 낮게 나온 부산·인천·울산·전북·충남 등에는 비상이 거렸다. 이들 지역교육청은 16일 긴급 대책회의를 소집해 향후 대응방안을 찾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들 교육청이 자체 분석한 낮은 성적에 대한 원인과 점수향상 대책은 대부분 특수목적고로 귀결됐다. 과학고·외고 같은 특목고 숫자를 늘려 우수한 학생을 입학시키는 것만이 점수경쟁에서 이기는 유일한 해법으로 진단을 내린 것”이라며 “성적이 가장 우수한 지역으로 나타난 광주 지역은 고삐를 죄는 분위기다. 광주시교육청은 2011년 개교를 목표로 추진중인 광주외고 설립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전했다.

경향신문은 “교육당국의 관리·감독이 국·공립학교보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사립학교에서 더욱 많은 교육과정의 파행 운영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으로 미뤄 볼때 향후 비정상적인 교육과정의 전국화는 일반적인 현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라고 덧붙였다.

경향신문은 16일자 사설 <교과부, 성적 공개 이후 부작용 대비책 있나>에서 “교과부는 자료공개를 하면서 학생들의 수능성적이 지역별로 상당한 차이가 난다고 밝혔지만 국민 가운데 서울 강남지역 학생들이 농촌 학생에 비해 수능시험문제풀이 능력이 낫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이번 자료는 다만 모두가 아는 것을 구체적 수치로써 확인시켜줄 뿐”이라며 “기왕에 자료가 공개된 만큼 정밀한 원인 분석을 통해 학력이 뒤처지는 지역에 지원을 강화하는 등의 정책수립은 필요하지만 이를 평준화 정책의 실패로 봐야 한다는 식의 엉뚱한 논의로 연결시키면 곤란하다. 자료공개가 가져올 부정적 영향과 후유증을 최소화하려면 교과부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지역별 수능 성적 공개에 이어 앞으로 개별 고교별로도 수능성적을 공개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고 한다. 이젠 지역간 경쟁이 아닌 학교간 경쟁을 통해 ‘경쟁력’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문제풀이 도사가 되기 위해 무작정 암기만 하는 경쟁력이 과연 21세기에 걸맞은 것일까?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또 얼마나 몸과 마음을 축내야 할까. 신문에 세세하게 적힌 지역별 수능 점수에서 섬뜩함을 느꼈던 사람이 과연 나뿐일까.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