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소환조사 뒤 구속영장 청구”에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조선일보는 17일치 <검찰, 盧 前 대통령 다음주 소환 영장 청구>에서 “박연차 게이트를 수사 중인 대검 중수부(검사장 이인규)는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600만 달러를 수수한 혐의로 다음주 중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환조사한 뒤 구속영장을 청구하기고 방침을 정한 것으로 16일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이어 “검찰은 그동안 박연차 회장과 노 전 대통령 아들 건호(36)씨, 부인 권양숙 여사 등에 대한 조사를 통해 600만달러 수수과정에 노 전 대통령이 깊숙이 관여했다는 진술과 정황 증거들을 다수 확보하기 때문에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고 덧붙였다.

▲ 조선일보 4월17일치 1면(종합).
여기에서 주목해봐야 할 점은 조선일보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구속에 대한 상당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일보의 자신감은 일단 기사 제목 <검찰, 노 전 대통령 다음주 소환 영장 청구> 에서부터 드러난다. 제목에 인용부호조차 쓰지 않은 것은 그만큼 단정적이라는 것이며, 검찰이 공식적으로 이같은 방침을 확정했다는 의미를 기호화한 것이다. 또한 제목이 전하고자 하는 의미는 ‘검찰이 다음주 노 전 대통령을 소환해 영장을 청구한다’는 것으로 짐작되나, 이를 읽는 독자들은 ‘소환영장’을 청구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소지가 크다. 체포영장과 구속영장은 있어도 ‘소환영장’은 없다.

적어도 ‘1등 신문’을 자처하는 조선일보라면 다음과 같이 제목을 달아야 하지 않았을까?

검찰, 노 전 대통령 다음주 소환…영장 청구
검찰, 노 전 대통령 다음주 소환해 영장 청구

제목이 길다면 주어인 검찰을 빼도 된다. 영장 청구는 원래 검찰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두점 하나로 의미를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 데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왜일까?

정확한 답은 조선일보만 알고 있겠지만, 제목에서부터 이렇게 드러내놓고 ‘실수’를 했다는 점에서 다른 의도가 숨어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영장 청구를 기정사실화하고 싶지만 만에 하나 빗나갈 것에 대비해 ‘소환 뒤 영장청구’를 ‘소환장’으로도 읽힐 수 있도록 착시효과를 노린 건 아닌지 모르겠다.

또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을 소환한다 해도 정확하게 이번 사건과 어떻게 연루가 된 건지에 대한 팩트가 나오지 않은 상황이기에, 조선일보의 섣부른 ‘영장 청구’ 언급도 의심스러운 부분이다. 현재 많은 언론이 ‘다음주 노 전 대통령의 소환’을 언급하고 있지만, 적어도 구속영장 청구 가능성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물증이 없기에 불구속기소 가능성이 있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고 있다.

▲ 조선일보 4월17일치 3면(종합).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검찰 내에서 의견 분분”

조선일보는 검찰의 ‘노 전 대통령 소환과 구속영장 청구’를 단정적으로 보도했지만 이와는 달리 검찰 내부에서는 노 전 대통령 소환과 영장 청구와 관련해 시각이 엇갈리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6일 SBS <8뉴스>는 <구속영장 청구할까?>에서 “노 전 대통령이 6백만 달러가 오간 사실을 몰랐다며 완강히 혐의를 부인하고 있지만 검찰은 진술과 정황증거가 충분하다는 입장”이라며 “이런 상태로 노 전 대통령이 소환된다면 사안의 중대성과 구속된 다른 정치인과의 형평성 때문에 구속영장을 청구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SBS는 그러나 “회의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며 “1995년 수뢰혐의로 구속됐던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대기업 등에서 무작위로 각각 2천억 여 원씩의 뇌물을 받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액수가 상대적으로 훨씬 작고, 측근 기업인에게서만 받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때문에 뚜렷한 물증없이 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될 경우 표적수사, 부실수사라는 비난을 살 수 있다”며 “그제(14일) 검찰총장 주재 검사장회의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던 것으로 전해졌고, 여권 내에서도 불구속 수사 전망이 나오는 등 부정적인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검찰 수뇌부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진술과 정황, 그렇다면 팩트는?

조선일보는 기사에서 “600만달러 수수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이 깊숙이 관여했다는 진술과 정황 증거들을 다수 확보했기에 구속영장 청구가 문제가 없다”는 검찰 쪽의 입장을 전했지만, 정작 그 진술과 정황 증거를 뛰어넘는 ‘팩트’가 무엇인지 밝히지 않았다.

3면 <검찰, “盧 前 대통령 못 빠져나갈 포위벽 구축”>을 통해서도 “부인과 아들, 처남에 조카사위까지 눈먼 돈을 받아 돈 잔치를 벌인 상황에서 “어떻게 노 전 대통령만 이를 새까맣게 모를 수 있었느냐”는 의문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이러한 의문을 뒷받침할 만한 팩트를 언급하지 않았다.

▲ 경향신문 4월17일치 4면(정치).
이에 대해 경향신문은 17일치 4면 <盧연루 물증은 없어>를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 측에 전달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돈 600만달러에 대한 검찰 수사가 난항을 겪고 있다”며 “검찰은 “부인과 아들에게 거액이 유입된 것을 노 전 대통령이 상식적으로 몰랐겠느냐”는 정황증거를 들이대며 노 전 대통령을 압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권양숙 여사와 노건호씨에게 돈이 건네졌기에 ‘상식적으로’ 노 전 대통령이 알았을 것이고, 이에 ‘사건에 연루 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인 팩트가 없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정확한 ‘팩트’ 없이 검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상식적으로 몰랐을 리 없다”고 추정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아예 ‘노무현 게이트’라고 이름 지으며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나선 조선일보는, 먼저 ‘노무현 게이트’라고 이름 지을 만한 구체적인 팩트부터 지면을 통해 밝히는 게 어떠할까? 독자 입장에서, 조선일보가 보도하지 않고 있는 그 팩트가 무척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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