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에 박힌 기사가 지겨우신가?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가 바로 나 자신 같아서 뒷골이 서늘하셨나? 만약 그렇다면, 당신에게 유럽 진보 지성계의 시각이 담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이하 ‘르 디플로’) 한국판을 읽어보실 것을 권한다.

프랑스 유력지 <르몽드>의 자매지로서 전세계 73개 국가에서 240만부가 발행되고 있는 르 디플로의 한국판이 최근 편집 쇄신·인력 보강 등을 통해 사실상의 재창간에 나섰다. 프랑스판의 단순한 번역을 넘어 국내외 진보적 대안 담론을 접목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는 홍세화 르 디플로 한국판 신임 편집인을 15일 만났다.

“분단된 이후 국가주의 교육 등을 통해 보수적 의식을 주입받은 탓에 한국에서는 ‘매트릭스’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절대다수다. 르 디플로는 매트릭스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다른 세계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강조한 홍 편집인은 “미국에 치우친 우리의 시각에 균형을 잡아줄 매체이자 반세계화운동의 실천적 기지인 르 디플로가 많이 읽힐수록 한국사회 의식지형의 변화도 추동될 것”이라고 밝혔다.

홍 편집인은 털털한 말투로 시종일관 진지하게, 한국의 치우친 이념지형을 근거로 르 디플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르 디플로 한국판은 매달 첫째주 목요일에 발행되며 정기구독을 원하는 독자는 전화 02-777-2003, 02-710-0501~2 또는 전자우편 info@ilemonde.com로 연락하면 된다. 홈페이지(www.ilemonde.com)에서는 정기구독 회원만 전문을 볼 수 있다.

다음은 홍 편집인과의 일문일답이다.

- 대중들에게 생소한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어떤 곳인지 쉽게 설명한다면?

분단으로 인해 한국사회는 미국에 치우친 의식을 갖게 됐다. 유럽 지성계의 시각이 담긴 르 디플로는 이러한 우리의 시각에 균형을 잡아줄 수 있는 매체다. 르 디플로는 자매지인 르몽드에 비해 더 좌파적이다. 사회당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하고, 심지어는 르몽드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르 디플로 한국판 역시 전면 제휴를 맺은 <한겨레21>에 대해 비판할 수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르 디플로는 실천적 반세계화운동의 기지다. 97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신자유주의를 관철하기 위해 다자간투자협정(Multilateral Agreement on Investment)을 시도할 때 MAI가 갖는 심각한 문제점이 담긴 문건을 르 디플로 기자가 폭로하면서 프랑스로서는 MAI에서 발을 빼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됐고 결국 무산됐던 적이 있다. 다보스포럼(세계경제포럼)에 맞서 세계사회포럼이 반세계화의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것에도 대단한 기여를 했다.

르 디플로 한국판은 총 40페이지인데 이중 8페이지 정도는 국내에서 생산되는 기사들로 채워진다. 남북관계, 동아시아 문제, 문화, 영화 등에 대해 진보적 시각에서 다루려고 한다.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4월호
“미국 편향적 시각에 균형을 잡아줄 수 있는 매체”

- 대중들에겐 좀 어려울 것 같다.

대중들에게 친화력을 가질 수 있도록 번역 등의 측면에서 노력하겠다. 그런데 “어렵다”고 하는 배경에는 그만큼 우리가 세계의 양상에 너무 무지했던 것도 있다고 본다. 세계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지극히 경제적 측면에서만 바라보았을뿐 세계의 정치, 사회, 문화 등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 재정적으로는 어떤가?

프랑스에서는 탄탄하다. 한국에서 과연 연착륙이 가능할 것이냐는 이야기들이 <한겨레>에서도 나왔다. 그런데 저는 이것을 단지 시장의 측면 뿐 아니라 운동이나 지적 담론 형성의 측면에서도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극적으로 시민사회와 함께 고민하면서 폭넓은 독자층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 자크 데리다, 미셸 푸코, 피에르 부르디외, 노엄 촘스키, 앙드레 고르 등 역대 필진들이 화려했는데 가장 좋아하는 필진은 누구인가?

프랑스 대표 지식인 피에르 부르디외, 이냐시오 라모레를 비롯해 르 디플로 편집장을 지낸 바 있는 끌로드 줄리앙의 글도 굉장히 좋아한다. 르 디플로의 기자들의 기사도 대단히 내용이 좋다.

“르 디플로가 많이 읽힐수록 한국사회 의식지형 변화도 추동될 것”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한국 지성계와 민주주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나. 이를 위한 복안이 있다면 무엇인가?

르 디플로는 하나의 매체이지만 운동의 측면에서 지식인, 대학생, 노동운동, 여성운동, 환경운동 등 다양한 부문의 활동가들도 같이 동참했으면 한다. 르 디플로가 많이 읽힐수록 한국사회 의식지형의 변화도 추동될 것이다. 민주주의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곳이 바로 지역인데, 지역 독자모임 등을 통해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 르 디플로 4월호에 나왔듯 “시장을 사회적 통제안에 가둬야 한다”는 칼 폴라니가 이제는 대안이라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르 디플로에서는 벌써 여러해 전부터 비교적 자주 칼 폴라니에 대해 소개해왔다. 칼 폴라니 사상의 핵심은 국가, 정부, 시장이 아닌 ‘사회’가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이 모인 사회가 문제니까. 일단 지금 상황에서는 가장 현실적으로 수용할 수 있고 참조할 만한 길이라고 본다.

“한국사회, 좌우에 대한 정명조차 안돼있어”

- 신문시장에서 조중동이 ‘우파’, 경향·한겨레가 ‘좌파’로 분류되고 있다. 한국의 이념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상대적 개념으로 ‘진보신문’ ‘보수신문’을 가를 순 있겠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몰상식한 신문’과 ‘상식적 신문’으로 구분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분단이후 친일세력을 청산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진보, 보수의 개념이 엄청나게 왜곡됐다.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엉뚱한 말이 나오는 것은 한국사회에서는 좌우에 대한 정명 자체가 안돼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우파는 극우적이고, ‘좌파정권’이라고 칭하는 정부도 자유주의 보수정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일제 부역세력을 청산하지 못한 상황에서 분단이 이어지고 있다 보니까 사적 안위와 영달을 위해서 민족을 배반한 세력들이 지배세력으로 남게 됐다. 그래서 우리는 국가의 지배세력에게서 공공성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정치, 언론, 대학 모두 공공성을 기반에 두지 않고 자신들의 사적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려는 집단이 버렸다. 그런 면에서 조중동은 극우신문이자 공기라는 탈을 쓴 사익추구집단이다. 족벌자본을 극대화하고 자신들이 속한 자본권력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언론을 무기로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신문은 사회의 거울이라는데, 이들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것 자체가 한국사회가 몰상식한 사회임을 반영하는 것이다.

- 많은 한국인들이 ‘시장=경쟁=세계화=대세=번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순환구조의 모순점을 꼬집는다면?

한국인들은 워낙 단답형, 선택형에 익숙하다 보니까 굉장히 단편적으로 세상을 인식한다. 분단 이후 국가주의 교육 등을 통해 보수적 의식을 주입받아 ‘매트릭스’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한국에서는 절대다수다. 매트릭스에서 벗어나지 못하니까 계속 이런 상황에 머무르는 것이다. 한미FTA를 반대하면 “그럼 쇄국하자는 것이냐”고 묻는데, 이런 시각을 모두 교정해야 한다. 줄여서 얘기하면, 세계화는 곧 미국화다. ‘지구촌’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낭만적 개념에 불과한 ‘지구촌’이란 단어로 세계화를 포장하는 것에 대해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 기여할 수 있는 게 바로 르 디플로다. 다른 세계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

- 마지막으로 개인적 질문을 하나 하겠다. 오랫동안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왔는데, 프랑스에 있을 때보다 행복한가?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등의 책이 프랑스에 대한 환상을 심어줬다는 비판도 있었는데.

아무래도 내가 속한 사회에서 사는 것이 사회적 존재로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 각종 사회 문제들 때문에 부대끼지만 그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 아무리 프랑스에 20여년 있었을지라도 나는 30년 가까이 사회화 과정을 한국에서 보냈기 때문에 한국어로 사고하고 추론하고 소통한다.

프랑스 사회에 대한 비판은 프랑스인의 것이라고 본다. 내가 보기에도 프랑스가 완벽하지는 않다. 다만 민주주의, 주체적 자아 등의 문제를 총체적으로 놓고 봤을 때 프랑스는 우리가 참조할 만한 사회인 것은 분명하다. 내가 비판적인 부분은 덜 다뤘지만 20년간 프랑스의 이주노동자로 살았던 사람으로서 (우리 사회가) 그정도만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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