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한 시기이다. ‘신부’란 지위가 남달리 특별해서가 아니다. 한 개인이 지극히 평범한 실존적 선택의 시간을 온전히 확보라기 위해 ‘체포/구속’이라는 남다른 각오를 해야 하는 상황이, 우리의 현실이다. 더군다나 그는 ‘언론인’이다. 전규찬 교수가 시를 한 편 보내왔다. 비상한 시기가 아니었더라면, 김보슬과 그의 인연 또한 별로 남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미디어를 공부하는 학자와 미디어에 종사하는 PD의 관계 이상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둘을 각별하게 만드는 것은 아마 학자도 PD도 ‘촛불’을 들어야 하는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테다. 평범한 PD를 비장한 투사로 만드는 시대, 스트레이트로는 도저히 전할 수 없는 비감함이 있다. 미디어에게도 시적 허용이 필요한 시대인지도 모르겠다.

“보슬아, 행복해!”

나는 그렇게 너를 축하해주고 싶었다.
너의 결혼식장에서
네가 “일부러 그렇게 잡은 게 아니예요”라고 한
4월 19일
그날 너의 또 다른 선생과 함께
플래카드로 만들어 축하해주고 싶었다.
너의 결혼식

지금 그 플래카드를 나는
쓰레기통에 처박아야 하는가?
플래카드 펼쳐 보이며
너와 너 남편을 깜짝 놀라게 하고자 한 나의 치기를
네들이 얼마나 감동할까 혼자 흐뭇해 한 나의 헛된 상상력을
플래카드 들고 네들이 입장하는 모습을 지켜볼 때 괜히 눈물나지 않을까 한
나의 유치한 감상을 쓰레기통에 콱 처박는다.

너는 사실상 오래전부터 체포된 상태였다.
逮捕
“사람의 신체에 대하여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구속을 가하여 행동의 자유를 빼앗는 일”
너는 너의 행동할 자유를, 프로그램 만들 자유를 빼앗겼다.
엠비씨 사내에 현실적으로 구속된 상태였고
너의 신체는 울타리 안에 거의 일년 동안 묶인 상태였다
너를 퉁퉁 불게 한 그 오랜 시간의 감금

▲ 지난 달 PD수첩 동료인 이춘근 PD 연행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김보슬 PD ⓒ민중의소리
기억나니?
엠비씨 앞 쪼그만 촛불의 대오와 함께 할 때
너 와락 차문을 열고 뛰어오며 부르던
기억하고 있니?
난 널 언제나 ‘어리버리 김보슬’이라고 얘들에게 소개한다고 해도
그래도 넌 늘 ‘흐흐흐’ 여유의 웃음을 짓더라
너 지금 그 먼데서 많은 일 홀로 외로이 떠올리고 있니?

비정규직이 서러워 다시 공부하겠다더니
그러고는 진짜 떡하니 다음 해 피디가 되더니
그리고 몇 번의 결정적 일성을 날리더니
이후 다가온 위협과 감금의 시간에도 절대 여유 잃지 않더니
네 동료 잡혀가는 날 기어코 눈물을 왈칵 쏟더니
이제 결혼식 며칠 안 남겨두고 남편 될 사람과 웨딩드레스 맞추러 나가더니
이 사람아, 어떻게 네 사랑하는 남자를 두고 그리 허망하게 잡혀가니.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어제 밤 엠비씨 앞을 배회하고 있었다.
너를 봤던 정문에는 몇 명의 촛불들만 있고
비틀거리며 길 너머 회사로 들어가는 기자들 축 처진 어깨
경영본부 앞도 뜻밖으로 텅 비어 있고
괜한 패배감에 울컥 화가 나 집으로 돌아오고
그때 이미 너는 네 남자에게서 떼어져 강제 연행되었구나.

“보슬아, 잘 싸워!”
나는 이제 너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이렇게 바꾼다.
고통에 맞서, 외로움에 맞서, 억울함과 분노에 맞서
좌절에 맞서, 공포에 맞서, 절망과 회환에 맞서
슬픔에 맞서, 낙담에 맞서, 불안과 환멸에 맞서
묵묵히 너 스스로를 잘 지켜줘야 한다.
너의 진실 네가 성실히 보호해줘야 한다.

정해진 너의 결혼 아무도 막을 수 없고
2009년 4월 19일 1시에는 어디에서든지 결혼식
네들은 이미 서로 혼약을 맹세한 사이
벌써 하나 되어 미래를 함께 생산해야 할 관계
4월의 신부여, 부디 몸 잘 간수했다가
기다리는 그대의 사랑하는 사람에게 돌아오시라
그때까지 축가를 잠시 접고, 하객은 조용히 이런 못난 시나 쓰며 기다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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