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기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서울 여의도 MBC사옥 1층 로비에 섰다. 그들은 손에 들고 있는 손팻말에 적힌 구호들을 하나 둘씩 외치기 시작했다. “정권눈치 반대한다” “언론장악 획책하는 MB정부 각성하라”. 점심을 먹기 위해 나가던 MBC 관계자들이 놀란 눈으로 기자들을 바라봤다.

지난 9일, MBC 기자들이 신경민 <뉴스데스크> 앵커 교체에 반발해 노조가 아닌 기자회 차원에서 첫 제작거부에 들어갔다. 처음으로 보도국장 불신임 투표를 진행해 97%의 찬성률로 가결시켰다. 그리고 회사 쪽의 교체 결정에 따라 지난 13일 마지막 방송을 마친 신경민 앵커는 앞서 9일 기자들과 대화에서 “이런 식의 앵커 교체는 처음 본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전했다.

MBC가 “뉴스경쟁력 강화”를 위해 앵커 교체를 결정한 이튿날부터 후폭풍은 거세다. 제작거부에 보도본부 소속 앵커들과 편집 기자들, 신입 기자들까지 동참했으며, 이에 MBC는 뉴스 시간을 단축 편성하고 대체 인력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이 뿐만이 아니다. 뉴스 게시판에는 앵커 교체를 강행한 회사 쪽을 비난하는 글들이 가득하고, 신경민 앵커의 마지막 클로징 코멘트에는 약 270개의 ‘응원’ 혹은 ‘지지’ 댓글이 달렸다.

▲ MBC기자들이 14일 오전 11시30분 서울 여의도 MBC본사 1층에서 손팻말 시위를 하고 있다. ⓒ송선영
◇ 왜 교체를 강행했을까?

현재 보도국 내에서 뉴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신경민 앵커를 교체했다는 회사의 교체 이유를 곧이 믿는 이들은 거의 없다. 엄 사장은 “정치적 압력에 의한 것이 아니다”고 했지만 내부에서는 외부 어딘가의 압력에 의해 앵커 교체를 강행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현재로서는 심증은 있으나 이를 증명할 만한 구체적인 팩트가 없는 상황이다.

내부 구성원들이 강하게 반발하는 것을 알면서도, 제작거부로 뉴스 파행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앵커 교체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는 점에서, 기자들은 ‘엄기영 사장이 이러한 부분을 떠안고서라도 교체를 강행한 이유, 정치적 압력이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도 ‘정권 차원의 압력’을 앵커 교체 이유로 꼽았다.

그는 지난 13일 기자들과 인터뷰에서 “작년부터 진행되던 정권 차원의 압력이 있었을 것”이라며 “이는 (MBC가)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가운데, 단기적으로 손해를 만회하려는 시각이 담긴 경영진의 잘못된 판단, 조치”라고 지적했다. 그는 결과적으로 “공영방송의 힘과 언론의 힘을 약화시키는 데 (MBC가) 기여하게 됐다”며 “내부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문제를 완전히 방향을 잘못 잡아 결정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정치적 압력에 대한 정황은 14일 오후 발행된 MBC노조 특보에서도 드러났다.

“전영배 보도국장은 ‘청와대에서 (앵커 교체에 대한 압력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결정을 할 때 그것을 생각하지는 않았다’는 말로 오히려 외압이 있었음을 확인시켜주는 웃지 못 할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다…구성원들의 의견을 철저히 무시한 경영진과 보도국장의 전횡은 결국 ‘지금 이 시기에, 다수의 의견을 무시한 채 앵커를 교체하려는 것은 비판을 용납하지 않는 정권의 압력에 MBC 뉴스가 굴복하려 한다’는 기자들의 우려가 사실임을 증명한 것과 다름없다.”

▲ MBC 기자들이 14일 오전 여의도 MBC 경영센터 10층에서 신경민 앵커 교체에 항의하는 의미로 손팻말 시위를 하고 있다. ⓒMBC 노조
◇ 원했든 원치 않았든 “공정성 이미 훼손”

보도국 내부에서 “뉴스의 공정성 훼손이 이미 심각한 수준”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보도본부 차장·평기자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13일 발표한 성명에서 “지난 11일 아침뉴스 톱기사가 방송을 불과 30분 남겨두고 ‘박연차 회장이 지난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의 측근 기업인 천실일 회장에게 수십억을 전달한 의혹이 있다’는 기사가 갑자기 사라졌다”며 “전날 <뉴스데스크>에서 톱기사로 보도된 특종이 새벽 5시반 보도국장의 전화 한 통으로 아침뉴스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MBC노조도 노보에서 △신영철 대법관 거취에 대한 리포트 내보내지 않음 △다주택 소유자에 대한 정부의 중과세 폐지와 관련해 긍정적 반응 부각 △비정규직 개정안에 대해 비정규직 현실을 외면한 채 찬반양론 동일 비중 처리 등을 지적했다.

이들은 “정권이 불편해 할 기사를 보도국장의 자기검열을 통해 정제하거나 누락되는 사태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은 현 경영진이 공영방송에 대한 의지가 있는가 의심케 하기 충분하다”며 “결국 현 경영진이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과 같은 고교, 같은 대학, 같은 과 동문인 전영배 보도국장을 선택했던 것은 뉴스를 통해 스스로 정권에 굴복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던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맹비난했다.

▲ MBC 기자들이 13일 밤 서울 여의도 MBC본사 D 스튜디오에서 총회를 열어 "권력의 압력에 굴복한 앵커 교체를 즉각 철회하라"고 외치고 있다. ⓒ송선영
◇ 오는 6월 언론관련법 정국, 8월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 개편의 전초전

이번 앵커 교체는 오는 6월 언론관련법과 오는 8월 방송문화진흥회(MBC의 최대 주주) 이사진 교체를 앞두고 향후 MBC가 어떤 입장을 취할지를 가늠할 수 있는 하나의 척도가 되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렇기에 6월과 8월 이전,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MBC 뉴스를 재정비해 정권 차원에서 덜 부담스럽고, 덜 비판적인 보도가 나오도록 한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앵커 교체를 단순한 인사 문제로 볼 수도 있지만, 현재 MBC 내부에서 제기하고 있는 정치적 외압에 대한 우려와 YTN 노조위원장 구속, <PD수첩> 수사 등의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생각할 때 ‘정권 차원의 움직임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것도 이러한 이유이다.

◇ MBC, KBS를 닮기 원하나?

지난해 KBS 이사회는 정연주 전 사장을 해고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이병순 사장이 들어온 뒤 KBS는 어떻게 변했을까?(▷지난 6개월, KBS에선 무슨 일이?) KBS가 친정부 성향 보도로 안팎의 비난을 받기 시작했을 때, 그 비판에 가장 먼저 직면하게 된 이들은 현장에 나간 KBS 기자들이었다. 용산 촛불 현장에 나간 KBS 카메라 기자들은 시민들의 볼멘소리를 들어야 했고, KBS 기자들 또한 “똑바로 보도하라”는 시민들의 비난을 받아야 했다.

MBC가 공영방송으로서의 역할을 버리고 안팎의 우려대로 스스로 정권의 입맛에 맞추는 노력을 한다면, KBS기자들이 겪었던 것처럼 그 비난은 MBC 기자들이 받게 될 것이다. “사랑해요 MBC”를 외치며 지난해 여름 MBC 주변을 감쌌던 시민들도 하나둘 씩 떠날 수밖에 없다.

엄기영 사장은 1년 전 취임사에서 “비바람이 아무리 거세고 파도가 높다 하더라도 저는 MBC호를 우리 모두가 소망하는, 국민들이 희망하는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이끌고 가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제 엄기영 사장이 나서 MBC에 닥친 비바람과 파도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MBC를 둘러싼 여러 의혹과 우려를 말끔하게 씻어줄 때가 된 것이다. 신경민 앵커의 교체 이유가 무엇인지, MBC를 향한 압력의 실체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밝힐 때만이 내부 구성원들의 반발을 잠재울 수 있고, 나아가 새로운 마음으로 MBC호를 이끌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지금처럼 내부 구성원들이 전혀 공감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기준으로 MBC를 이끌어 간다면, 기자들이 손에서 펜과 취재수첩을 놓고 손팻말을 든 채 구호를 외치고 있는 상황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물론 시청자들과 국민들이 난파선에 계속 매달려 있을 이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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