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발전 국민위원회(미디어위)가 출범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지난달 13일 상견례를 시작으로 공식 활동을 개시하여 모두 5차례의 전체회의와 7차례의 운영소위가 개최되었다.

그동안 미디어 전반에 걸친 총론과 신방 겸영 및 대기업의 방송사업 진출에 대한 여야 추천위원 간의 기조 발제과 산발적인 토론이 진행되는 등 소정의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위원회 출범 초기부터 회의 공개 여부와 지역 순회 공청회 개최 및 여론 조사 실시 여부 등을 둘러싼 공방으로 여야 추천 위원 간에 원활한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해 전체회의와 운영소위의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하는 아쉬움이 큰 기간이었다.

▲ 지난 3월23일 출범한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회의에서 위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여의도통신
미디어위원회의 탄생 과정을 돌이켜 보면 그 아쉬움은 더욱 크다. 작년 연말에는 한나라당의 일방적인 언론관계법 강행 처리 시도로 인해 국회가 온통 폭력으로 얼룩졌고, 지난 2월 임시국회에서는 ‘영일대군’으로 불리는 현직 대통령 형님의 밀어붙이라는 한마디에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문방위) 고흥길 위원장의 언론관계법 날치기 상정 시도로 국회가 또다시 난장판이 됐다. 이후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집요한 압박을 이기지 못한 김형오 국회의장이 본회의 직권상정 카드를 앞세워 야당을 전방위로 압박하면서 국회가 파국 일보직전까지 몰리는 상황이 연출됐다. 결국 막바지 벼랑 끝에서 별다른 대안이 없던 민주당이 김형오 국회의장이 내민 시한부 합의 처리 안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면서 언론관계법 처리는 100일 후를 기약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사회적 논의기구라는 떡고물 하나를 챙기게 된 것이다.

비록 언론노조와 시민사회단체들이 줄기차게 요구해 왔던 무기한적 사회적 합의기구는 아니지만 국회 다수당이 막가파식으로 처리해 버리려는 언론관계법을 공론화하고 국민여론을 수렴할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미디어위의 출범은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기에 한정된 기간 동안 활동하게 될 미디어위는 언론관계법의 실상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고 좀 더 정확한 국민 여론을 수렴하여 그 결과를 국회 입법 과정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논의 과정을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완전 공개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을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한 다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절차에 따라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할 것이다. 그리고 미디어위는 이런 과정에서 도출된 모든 의견들을 모으고 정리해서 국회에 넘기고 국회는 수렴된 의견을 입법 과정에 적극 반영함으로써 지난번과 같이 국회가 온갖 폭력으로 얼룩지는 난장판이 되는 것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위원회 안에서의 논의과정을 살펴보면 쟁점법안에 대한 합리적인 합의안 도출이 결코 쉽지 않음을 여실히 느끼게 된다.

우선 여당 추천 위원들은 70%에 육박하는 국민들이 언론관계법에 반대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한 듯 회의 공개와 지역 순회 공청회 및 여론조사 실시 등 미디어위가 당연히 수행해야 할 임무에 대해 매우 소극적이거나 방어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쟁점법안에 대해서도 여당 추천 위원들은 정확한 근거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방송사의 1인지분 한도를 49%까지 확대해야 한다’, ‘방송사업에 진출할 수 있는 대기업 기준을 아예 철폐해야 한다’, ‘사후규제로 방송사 통제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등 한나라당이 제시한 안보다 훨씬 파격적인 주장들을 하고 있어 차라리 한나라당 문방위 위원들과 논의하는 것이 낫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생각마저 들게 하고 있다.

또한 몇몇 여당 추천 위원들이 특정 언론사에 대한 개인적 반감이나 적개심을 회의장에서 여과없이 표출하고 야당 추천 위원에 대한 흠집내기를 시도하며 지난 회의 결과에 대해 흔쾌히 인정하지 않는 등 비신사적인 모습까지 보임으로써 전체 회의 분위기를 망가뜨리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 없다.

우리사회에서 재벌과 조중동 등 수구족벌 신문이 국민의 신뢰을 얻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사회 감시자 또는 심판자 역할을 수행해야 할 ‘뉴스를 할 수 있는 방송’을 이들이 소유하는 문제는 특정 정당이 다수당이 되었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사안이 결코 아니다. ‘삼성방송’에서 삼성본관 철거에 따른 석면 오염 문제를 정확하게 보도할 수 없고, ‘조선방송’에서 자사 사주가 연루되었다고 알려져 있는 장자연리스트 문제를 공정하게 보도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재벌과 수구족벌 신문은 방송 뉴스를 탐하기 전에 투명한 기업 경영과 국민적 신뢰 구축을 위한 노력을 선행해야 할 것이며,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은 이들에게 방송을 집권 선물로 안겨주려는 시도를 중단하고 국민의 여론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 추천 미디어위원들도 자신을 추천해 준 당에 대한 부채감에서 벗어나 개인의 양심에 따라 사회적 정의를 위해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해 줄 것을 당부하고자 한다.

이제 미디어위의 활동 시한이 2달 밖에 남지 않았다. 남은 기간 동안만이라도 위원회에 참여하는 모든 위원이 정파적 이해관계를 떠나 고흥길 문방위원장의 말대로 백지상태에서 사회적 논의기구가 갖고 있는 역사적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고 우리 사회에서 언론이 진정으로 수행해야 할 역할과 민주주의의 가치에 대해 고민해 보았으면 한다.

이러한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이 미디어위의 위상과 역할을 폄훼하고 6월 임시국회 표결처리의 명분용으로만 국한하려 한다면 언론노조 차원에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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