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트리피케이션. 2000년대 이후 서울의 홍익대 인근, 삼청동, 신사동 가로수길 등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으로, 도심이 번성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오름에 따라 원주민이 내몰리는 사회문제다.

4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를 위한 법제도 개선방안을 토론하는 '제3회 도시정책포럼'이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정동영 국민의당 의원의 주선으로 마련됐으며, 이원재 문화연대 사무처장 사회로 박배균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교수의 기조발제, 장경석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박성규 한국부동산연구원 연구원의 발제로 진행됐다.

▲국회 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제3회 도시정책포럼'. ⓒ미디어스

고성장 시대 끝났는데 여전히 관성은 유지…'도시권' 생각해봐야

박배균 교수는 기조발제에서 "한국의 도시화 과정은 서구의 도시화 과정과 매우 다르게, 국가의 영토성 확립을 위한 각종 사업들로 진행됐다"며 "압축적 도시화, 공업단지·아파트 단지·수출자유지역 등의 예외적 공간, 댐·원자력발전소 등의 위험경관을 창출하는 특징을 가진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현재 발전주의 시대가 지났음에도 발전주의 도시화의 관성이 그대로 유지되면서 투기적 도시화로 인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며 "국가가 민간자본의 개발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개발 사업에 대한 국가의 규제를 최소화하고, 도시 중산층이 주택 소유를 통해 부를 축적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전했다.

박 교수는 "저성장 시대가 다가오고 기존의 부동산 임대차 관련 장치(전세금, 권리금 등)이 작동하지 않으면서, 세입자들의 취약성이 증가했다"며 "그러한 상황이 투기적 자본에 의한 선택적 개발을 낳았고, 일부 이른바 '뜨는' 상권을 중심으로 상업 젠트리피케이션 문제가 발생하며 임차 상인들의 위기가 심화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배균 교수는 이러한 현상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도시권(Right to the city)을 제시했다. 박 교수는 "재산권을 중심으로 형성된 국가주의적이고 보편적인 정의론에 기반한 자유주의 권리론을 거부하고, 정의·인권의 본질적 공간성에 기반을 둔 도시권이 발동할 때"라며 "도시권의 관점에서 임차 상인들의 '도시에서 장사할 권리'를 기본적 생존권이자 인권으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상가임대차 보호법도 이제는 임차 상인 보호법으로 이름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박교수는 "'상권'이라는 것은 상인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며 "세입자의 권리보다 재산권이 과도하게 우월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권리금은 임차 상인의 권리를 지키는 유일한 현실적 장치"라고 설명했다.

끝으로 그는 "탈발전주의 도시 패러다임을 모색해야 한다"며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대안으로 "재산권보다는 도시권 관점에서 임차상인의 권리를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장경석 입법조사관은 "상가임대차에 관한 제도는 판매·유통경제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기 때문에 임대차시장에 대한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한데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을 구비하고 있지 못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실제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은 국토부가 아닌 법무부가 소관하고 있어, 실태를 조사할 수 있는 수단이 전무한 실정이다.

박성규 연구원은 "집에는 누가 들어노는지 관심이 없지만, 상가엔 누가 들어오는지 관심이 많다"며 "이 문제의 출발점은 권리금 상승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가수 리쌍이 고용한 용역들에게 우장창창을 철거당한 후 오열하는 서윤수 대표. (자료=도시정책포럼)

'우장창창' 서윤수 대표, "성장의 과실을 조금만 함께 나누는 것이 경제민주화"

최근 가로수길에서 벌어진 가수 리쌍의 우장창창 강제철거는 젠트리피케이션의 대표적 사례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서윤수 우장창창 대표는 "항상 상가 관련해 법적 논쟁이 발생해 기사화 되면 따라다니는 댓글이 있다"며 "바로 건물주는 보지도 못한 권리금을 왜 건물주한테 내라고 하냐는 댓글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그 비판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바닥권리금에 대한 오해이고, 사실 저조차도 좋지 않게 생각했던 것이 현실"이라고 전했다.

서윤수 대표는 "2000년대 초반으로 놓고 생각을 해보면 신촌, 압구정에 상권이 있었는데, 그런 입점료를 못내는 젊은 상인들이 홍대, 가로수길에 가서 노력해서 상권을 살린 것"이라며 "그런데 장사가 잘되니 그곳에서 쫓겨나는 현상들이 발생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한 것이다"라고 전했다. 그는 "저뿐이 아니라 예전부터 발생을 해왔던 일인 것"이라며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그는 "제가 입점해 있던 건물이 1999년에 6억7000만 원이었는데 2007년 당시에 53억 원이 됐다"며 "그런데 사람들은 건물주가 시세차익으로 가져간 46억 원은 문제삼지 않으면서 임차인들이 권리금이라고 주장하는 4억 원에 대해서는 문제를 삼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건물주가 46억 원의 시세차익을 벌어들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상인들의 노력의 대가는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건물주들의 거래를 통해 빼앗겼다"고 비판했다.

서윤수 대표는 "김종인 박사가 경제민주화는 '경제성장의 과실이 골고루 민주적 과정을 통해 분배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며 "상권이 발달하는 데 혹은 지가를 상승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상인들이 그 성장의 과실을 조금만 함께 나누자는 게 우리 상인들이 외치는 경제민주화이며, 그 물음에 대한 정확한 대답이 될 것 같다"고 밝혔다.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성공한 성동구 사례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성동구의 성공적인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사례를 소개했다.

성동구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방지하기 위한 조례를 정하고, 조례에 근거한 정책을 만들었다. 그 정책은 ▲지속가능발전구역 지정 ▲주민협의체 통해 입점 업체 제한 ▲건물주, 임차인, 성동구 간 상생협약 체결 ▲교육과 지원을 통한 임차인 대항력 상승 ▲구 재정과 공공기여를 통한 안심상가 확보 ▲도시계획을 활용한 지역 자산화 확대를 골자로 한다.

성동구는 이 정책을 근간으로 서울숲길, 방송대길, 상원길 등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선정해 지속가능발전구역으로 지정했다. 이어 주민협의체를 통해 입점 가능 업체를 제한했고, 이는 대기업 프랜차이즈 상점가 형성을 막았다.

또 건물주와 팀장급 이상 간부공무원을 매칭해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협약을 추진했고, 실제로 건물주와 임차인의 55%가 상생협약을 맺었다. 아울러 약자인 임차인을 위해 법률지원단을 운영하면서 부동산중개업자 교육과 함께 임차인권리인식 교육을 진행했고, 젠트리피케이션 발생지역의 상가건물을 매입해 안심상가를 확보하고 있다.

이러한 성동구의 성공적인 젠트리피케이션 방지에 전국 37개 지방자치단체가 MOU를 체결하고 협의회를 구성해 벤치마킹에 나서고 있다. 아울러 정부도 성동구의 조례를 기반으로 자율상권구역을 지정하는 등의 정책을 펴고 있다.

정원오 구청장은 이 정책에 대해 "젠트리피케이션의 최초 피해자는 상인이지만, 최종적으로는 건물주와 지역주민 모두에게 피해가 돌아간다"며 "결국 일부 투기 세력만 이익을 보고 나머지는 모두 피해를 당하게 돼 시작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원인이 되는 임대료 상승을 막아야 한다"며 "우리 헌법 제23조 2항에 재산권은 공공복리에 적합하게 사용해야 한다고 돼있는데 법률이 미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래서 우리 성동구는 조례를 정하는 작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정원오 구청장은 "하지만 아직은 불안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법률이 개정될 필요가 있다"며 "성동구 조례를 기반으로 하는 정책과 법안들이 자리잡기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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