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서울 낮 기온이 22도란다. 바야흐로 봄이다. 윤중로엔 벚꽃이 만개했다. 봄의 도래, 그 당돌한 흐름을 따라 어물쩡 그러나 확실히 국민스포츠의 고전적 레퍼토리가 부활했다. 북한, 연예인 그리고 노무현까지. 국민스포츠가 뭐 별거겠는가, 온 국민이 즐기면 그뿐이지. 북한에 대해 논쟁하고, 탐닉한 연예인의 사생활 정보 공유하다가 노무현 욕 몇 마디로 끝나는 술자리 안 가져본 사람 있는가? 안 해봤다고, 안 해봤으면 말을 하지 말고.

지난 일요일 북한은 로켓을 쏘아 올렸다. 월요일엔 국회에서 장자연 리스트에 등장하는 ○○일보 ○ 사장의 실명이 공개됐다. 그리고 화요일엔 노무현이 박연차의 돈을 받았다고 시인했다. 난감하다. 망측했다. 난세이다. 요 며칠 확실히.

하지만, 난세는 영웅을 낳고, 국민스포츠는 소외 종목을 만드는 법이다. 일, 월, 화를 지나며 언론사 사회부는 좁은 지면에 넘치는 기사로 거의 마비에 가까운 업무 폭주를 담당하고 있고, 기자들은 뭐에 홀린 듯 우르르 사건에 몰려다니며 분초를 견디고 있으리라. 그렇다면, 누가 이 분답한 혼란을 즐기고 있을까? 얼핏 3명이 떠오른다. 청와대 김모/장모 행정관, 신영철 그리고 강희락이다.

그런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청와대 김모 행정관

▲ 4월 8일자 경향신문 12면.
청와대 행정관 성접대 의혹을 수사해온 경찰은 청와대 김모, 장모 행정관에게 뇌물수수 혐의를 추가하는 것으로 수사를 사실상 마무리했다. 성매매 혐의는 청와대 김모 행정관, 방통위 신모 과장에게만 적용했다. 경찰은 조직적 로비는 아닌 것으로 사실상 결론지었다. 단순히 청와대 김모 장모 행정관, 방통위 신모 과장, 티브로드 문 팀장 4명의 ‘회합’ 자리 정도였으며, 향후 도움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접대를 했다는 것이다.

뇌무수수 혐의를 며칠이나 늦게 추가하긴 했지만, 경찰이 수사를 허투로 한 게 아닌 것을 전제로, 이번 사건을 재해석해보면 이렇게 된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가입자 수를 보유하고 있는 케이블방송사 티브로드의 팀장과 청와대 행정관, 방통위 과장 등은 수시로 어울린다. 조직적 로비를 위한 특별한 자리는 아니었다니까, 아마 개인적 친분을 위한 일상적 자리였을 테고, 당연히 아무 부담없이 자주 만났을 것이다. 누구의 선호 취향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들은 2차로 룸살롱을 가는 매우 ‘호사’로운, 게다가 철저히 비윤리적이기까지 한 음주행태를 공유하고 있다. 룸살롱 계산은 티브로드의 문 팀장이 했다. 하룻밤 유흥비 180만원이었다. 그들은 사이좋게 2차를 나갔다. 상식적 판단 체계, 인지적 사고력은 애당초 없었거나, 고주망태가 되어 작동하지 않았다. 그러곤 우연찮게 단속 나온 경찰에 ‘딱’ 걸렸다. 경찰청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재수 없게’'. 경찰은 ‘안마시술소’라고도 했다가, 보고를 못 받았다고도 했다가, 외상값을 갚은 것이라고도 했다가 하여간 횡설수설 갈피를 못 잡고, 종횡무진 물타기를 했다.

만만찮은 일이다. 청와대의 윤리의식의 수준이 어떠한지, 적나라하게 절개된 사건이었다. 세상이 만만해도 유분수가 있지, 어떻게 현직 청와대 행정관이 시내 한 복판에서 관련 업무 영역의 기업체 관계자에게 성접대를 받을 수 있냐 말이다. 그리고 그걸 또 경찰은 요리조리 숨기고 매만져서 사건을 축소/은폐하려 했던 정황이 역력하다.

한 5박 6일 정도는, 끝장을 보겠다는 심정으로 개탄을 해주는 것이 마땅할 텐데, 어쩌랴 행정관 따위에게 관심을 갖기엔 전직 대통령의 수수 사실이 워낙 큰일 이니,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먼지가 된 신영철

▲ mbn 뉴스 화면 캡처.
오늘 오후,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재판 개입’ 의혹을 논의하기 위한 첫 번째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 회의가 열린다. 그런 사건이 있었나 싶다. 그 사건, 이제 기억도 안 나려고 한다. 물론, 오늘이 첫 회의이니 결론이 나긴 힘들 게다. 사법부에 계신 분들이 쉽사리 의사 결정을 하는 분들이 아니다. 그 사이 신 대법관이 재판에 참여했는지 모르겠다. 어제(7일), 서초동 법원 앞에서는 시민단체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법부의 독립성 훼손과 직권남용을 저지른 신 대법관의 즉각적인 사퇴만이 사법부의 권위를 회복하며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이 강조됐다. 하지만 사태는 녹록하지도, 낭만적이지도 않다.

관련한, 한겨레 보도는 의미심장한 멘트를 품고 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양윤석 법원공무원노조 서울중앙지부 지부장은 “대법원이 신 대법관의 행위가 재판 개입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이미) 말해 놓고 징계위원회가 아닌 윤리위원회에 넘긴 것은 (신 대법관의) 버티기를 위한 시간 끌기로 보인다”고 했다. 그렇다. 버티기, 장기화 국면으로 돌입했다. 앞서 말했듯, 불과 한 달도 안 된 사건인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사법부의 스타일로 볼 때, 결론은 4월을 훌쩍 넘겨, 5월 2일 촛불 1주년 마저 지나 본격적으로 더워질 때쯤이나 나지 않을까 싶다.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잊혀지게 만드는, 전형적인 시간 끌기 전략은 이미 진행 중이다.

봄날을 보네는 강희락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누가 뭐래도 이 국면의 최대 수혜자는 바로 강희락 경찰청장이다. 그는 2001년 여름, 당시 경찰 출입기자 중 누군가들에게 모텔키를 나눠준 바 있다고 자백했다. 그것은 기자들을 향해, ‘성접대라고 하면 너희도 나을 게 없다’는 지긋한 경고였다. 그러니까 강 청장의 발언은 정황상 성접대로 의심되는, 한국 사회의 관례상 2차로 예상되는 행위가 경찰과 기자 사이에 있었노라는 고백이었다. 현장에서 발언을 직접 들었던 기자들은 덜컥 비보도를 합의했다.

프레시안이 문제를 폭로했고, 이후 일부 인터넷 미디어들이 보도에 가세하고 강 청장이 국회에 불려가는 일까지 벌어졌지만, 여전히 안개속이다. 그나마 청와대 행정관 성접대와 신 대법관 재판 개입 의혹이 보도 의지라도 있다면, 이 사건에 관한한 언론은 일체의 미동도 않고 있다. 적극성은커녕 소극적 반응조차 자제하고 있는 형편이다. 취재력을 발휘하라고, 기껏해야 시기는 2001년 여름, 대상은 경찰청 출입기자와 당시 시경캡을 포함하여 스무명 남짓이라고까지 일러준 바 있으나 대답 없는 메아리, ‘동수’와의 대화일 뿐이다. 이쯤 되면 어떻게 봐야 할까, ‘강 청장은 지난 2001년 여름 기자들이 한 일을 알고 있다’쯤 되려나. 하여간 그는 오늘, 가장 환하게 웃고 있을 테다.

봄날은 간다. 무심히도. 눈을 감으면 문득 두려운 날의 기억도.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