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일, 김연아 선수가 첫 등교를 한다는 소식을 뉴스에서 들었습니다. 본관으로 총장님께 먼저 인사를 드리러 간다는 내용도 확인했습니다. ‘피겨 여왕이 학교에 오다니’ 하는 호기심에 가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 시각 저는 학생들에게 열심히 유인물을 나눠주고 있었습니다. 지난 3년 간 계속된 징계의 굴레가 다시 시작되려 했기 때문입니다.

▲ 김지윤 고려대 학생
저는 고려대 사회학과 4학년에 재학중인 학생입니다. 저는 2006년 4월 고려대에서 출교를 당했습니다. 그때부터 끝없는 징계의 굴레가 시작됐습니다. 2007년 10월 법원에서 출교무효판결이 나왔고 다음해 1월 출교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져 복학의 길이 열렸지만 상벌위원회는 저에게 퇴학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다시 퇴학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지난해 3월 복학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돌아간 대학에서 새내기 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고 졸업을 1년 앞둔 지금도 학업과 사회진출 준비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불도저를 멈추기 위한 활동에도 적극 참가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2월 퇴학무효판결이 나왔습니다. 고려대 재단은 항소하지 않았습니다. 3년 만에 고통스러웠던 징계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징계의 굴레는 졸업을 해도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최근 상벌위원회에서 저를 포함해 당시 출교를 당했던 7명의 학생에 대한 무기정학을 결정했습니다. 2006년 출교 당했을 때부터 지난해 법원 판결로 복학할 때까지 학교에서 쫓겨났던 기간을 무기정학으로 기록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총장님의 최종 승인만을 남겨두고있는 상황입니다. 졸업한 학생 3명도 이 징계를 피해갈 수는 없었습니다.

학교 측 관계자는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법원이 징계가 과하다고 판결했기 때문에 수위가 한 단계 낮은 무기정학을 내렸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분명히 “출교처분을 받은 이래 근 2년 동안 학업을 중단하였고, 그동안 이에 항의하는 뜻으로 고려대학교 본관 앞에 천막시설을 설치하여 그곳에서 생활해 왔는 바, 그것만으로도 벌써 상당한 처벌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출교와 퇴학은 “증거가 부족”하고, “학생들과 처장단 교수들 사이의 오래된 불신과 학생들을 대등한 대화상대로 여기지 않는 처장단 교수들의 권위적 태도 및 학생들에 대한 관용과 배려의 부족 역시 이 사건 감금행위의 발생 및 유지에 기여한 것으로 보여, 이 사건 감금행위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원고들을 비롯한 학생들에게만 물을 수는 없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출교와 퇴학이 “비교육적 처사”고 “징계권의 남용”이라고 판결했던 것입니다.

저희가 2년 동안 말했던 억울함을 법원은 인정했는데 정작 학교는 ‘나 몰라라’합니다. 한순간 일부 교권주의적 교수들과 재단이 잘못 내린 결정 때문에 2년 동안 천막농성을 하며 받아야 했던 정신적 고통은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을까요? 하지만 학교는 저희의 고통과 억울함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것인지 무기정학이라는 낙인을 찍으려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무차별적 공권력 사용으로 국민들의 분노와 비판을 입막음하려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고려대 재단과 일부 보수적 교수들은 징계라는 칼날을 벼리고 학생들의 저항과 목소리의 싹을 자르려 하고 있습니다. 법도 학칙도 무시하면서 말입니다.

지난해 여름, 촛불이 거리를 물들였을 때 고려대 학생들은 동맹휴업을 하고 광화문으로 모였습니다. 고려대 재학생들은 ‘고려대학교 교우’ 이명박 대통령의 잘못된 정책을 비판했습니다. ‘이명박 OUT’을 외쳤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등록금 인하와 이명박 반대를 주장하는 총학생회가 당선했습니다. 최근 등록금 인하 투쟁이 벌어지는 등 진보적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MB어천가를 불렀던 재단은 비상식적 징계를 동원해서라도 학생들을 위축시키고 싶었을 것입니다. 3년 전 처음 출교가 내려졌을 때 학생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도 시위 나가면 출교되는 거 아냐?”

만일 학생들의 고통과 억울함에 대해 학교가 한번만 더 생각했더라면, 저도 맘편히 후배 김연아 선수를 보러 갈 수 있지 않았을까요? 기자회견을 마치고 총장실에 면담을 청하러 갔다 나오며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비지니스 프렌들리’가 아니라 ‘스튜던트 프렌들리’ 고려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학생들을 ATM기계처럼 보는 등록금 인상에 맞서 싸웠고 대학을 기업처럼 만들고 무한경쟁만을 강요하는 ‘대학 경영’에 반대했습니다. 삼성 회장 이건희에게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파는 일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가해 미운털이 박히기도 했습니다. 비록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징계의 덫에 걸렸지만 끝까지 싸우려고 합니다. 고려대의 진정한 전통은 민주주의 파괴 속도전을 벌이는 청와대가 아니라 독재에 항거해 거리에서 싸웠던 선배님들의 정신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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