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트가 횡행하는 시대는 그 자체로 불행하다. 드러난 사실보다 감춰진 진실에 더 집착하는 풍토는 기본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그건 정보의 만개, 세계 최고의 정보 유통망을 갖고 있다 뽐내는 나라에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다. 더군다나 진실의 은폐가 언론 때문이라면 더더욱. 그래서 말이다. 강희락 리스트를 까라.

몇 주째 사회가 리스트 몸살을 앓고 있다. 박연차 리스트는 궁극까지 까질 성질의 것이 아니다. 권력끼리 할퀴고 악다구니를 피는 폼새만 피곤하다. 검찰은 수사의 ‘속도’와 ‘방향’ 그리고 ‘범위’를 조절하고 있다. 수사 경과로 볼 때 결국, 종착점은 ‘노무현’일 수밖에 없다. 생각만하면 생각대로 될 일이 아니다. 아무리 막 돼먹은 정권이라도 금기는 있다. 아마도 난리법석이 일어날 테다. 검찰이 어디까지 갈지 지켜볼 일이지만, 경험적으로 보건대 대충 어느 선에서 마무리될 확률이 높다. 촛불 든 국민을 사탄의 무리쯤으로 여기던 안하무인 추 목사님도 말했다지 않은가. “대통령 패밀리까지는 건드리지 말자고”.

그렇다면 장자연 리스트는 어떠한가? 유력 일간지, 스포츠 신문, 인터넷 신문 대표가 두루 연루되어 있다고 한다. 그들의 신분은 지금 모두 피고소인이다. 허나, 장자연 사건을 통해 무죄 추정의 원칙과 피고소인의 인권 보호에 획기적 깨달음은 얻은 것으로 보이는 경찰이다. 수사는 더디고, 피고소인은 힘이 막강하다. 죽은 자가 혐의를 입증할 순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결정적 리스트가 있다. 바로, 강희락 리스트이다. 그는 작심한 듯 발언했다. “나도 여기(경찰청) 공보관 끝나고 미국 연수 준비하면서 기자들이 세게 한 번 사라고 해서 기자들 데리고 2차를 갔는데, 모텔에서 기자들에게 열쇠를 나눠주면서 ‘내가 참, 이 나이에 이런 거 하게 생겼나, 별 생각이 다 들더라”고 했다. 구체적 시기, 특정한 인물이 보편의 상식에서 성접대로 추정되는 향응을 제공받았다. 제공자는 경찰이고, 제공받은 자는 기자이다. 시기는 2001년 여름이다. 대상은 당시의 경찰청 출입기자와 시경캡으로 좁혀진다. 대략 20명 내외의 기자들이 리스트에 있다.

▲ 4월 4일자 경향신문 4면.
왜 어물쩡 넘어가려 하는지 모르겠다. 개인이나 시민단체는 경찰에 정보공개를 청구하라. 미디어스도 지금 명단을 확인중이다. 그리고 그보다 앞서, 언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자칫하단 참을 수 없는 오욕의 대상으로 도매금 될 우려가 있다. 하루빨리 결백한 당시의 누군가가 나서 증언을 해야 한다.

리스트에 올랐을 곳은 서너개의 방송사, 중앙일간지 10개 정도이다. 지금이라도 내부에서 당시에 누가 경찰청에 출입하고 시경캡을 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일부 확인된 명단을 보니 당사자들이 여전히 사회부, 국제부, 논설위원실에 있다. 강 청장의 변명대로 호프 한잔 먹고, 피곤해서 모텔키를 받은 별 볼일 없는 사건이어서 침묵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오해를 어서 풀어라. 아니면 세간의 추정대로 권력과 언론이 음탕한 관계로 뒤엉킨 세월이 너무 오래인지라 그냥 쉬쉬하고 어물쩡 넘기려는 것인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언론이여, 스스로 강희락 리스트를 까라. 지난 정부에서 출입처를 폐지하겠다고 했을 때, 촛불을 들면서 저항했던 그대들이었다. 이유가 이런 것이었나? 밥에 곁들여 술 얻어먹는 거야 세상의 인심이라 쳐도, 이건 아니지 않은가. 성접대나 받는 주제들이, 최소한의 윤리적 각성, 사회적 상식도 준수하지 못하는 처지들이, 일말의 자정 능력도 발휘되지 않는 동업자들이, 얼어 죽을 뭔 놈의 고상한 척이라고 언론의 권리, 표현의 자유를 운운하는가. 이번 사건을 어물쩡 넘긴다면 자격이 없다. 언론의 사회적 권력은 거세되는 것이 옳다.

언론 개혁의 가치를 중시하는 한겨레/경향, 공영방송의 본분에 충실한 MBC, 아니면 공정방송의 기치를 들었던 YTN이라도. 어디라도 상관없다. 내부의 썩은 살을 도려내지 않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치명상이 되는 법이다. 읍참마속의 단호한 심정으로 카르텔을 깨라. 더 잘 알고 있겠지만, 복잡한 취재 따위가 필요하지 않은 간단한 문제이다. 당시 시경캡 하던 기자 서넛만 만나면 된다. 경찰청에 출입했던 기자들과 마주해보기만 하면 된다. 검/경의 수사 리스트만 붙들고 피고한 척, 답답한 척 하지 말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간명한 리스트부터 보도하라.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 이런 대사가 있다. “이 리스트는 선의 극치입니다. 이 좌우 여백은 죽음으로 우릴 지켜주는 방패막입니다.” 강희락 리스트는 이렇다. “이 리스트는 악의 극치입니다. 이 좌우 침묵은 우리 밥그릇을 지켜주는 방패막입니다.” 속단하지 말라. 그 리스트가 외부의 힘에 의해 벗겨지는 순간, 당신들의 밥상 자체가 엎어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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