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리뷰를 다루기에 앞서 창작뮤지컬의 몇몇 ‘흑역사’에 관해 짚어보고자 한다. 쥬크박스 뮤지컬의 잘 빠진 사례가 <그날들>이라면 창작 쥬크박스 뮤지컬이 삐끗한 대표적인 사례로는 <디셈버>로, 이 작품은 제아무리 김준수라고 해도 도저히 손을 쓸 수 없을 정도였다. 개막 전에는 김준수와 장진의 의기투합으로 기대를 한껏 모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기대를 몽땅 휘발시키고 만 졸작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두 번째로 지적할 창작뮤지컬의 실패 사례는 올 겨울에 무대화된 <아랑가>. 도미설화를 바탕으로 한 우리 문화의 뮤지컬 시도화는 높이 살 만하지만, 미니멀리즘이라는 명분 아래 진행된 극과 어울리지 못하는 안이한 무대 및 연출은, 할리우드 영화와 당당하게 자웅을 겨루고 있는 현재 한국영화의 위상과는 대극에 놓일 만큼 저열한 작품이 되고 만다.

뮤지컬 <페스트> Ⓒ스포트라이트

이번에 선보인 <페스트> 역시 <디셈버>와 <아랑가>, <보이첵>의 그릇된 궤적을 똑같이 걷고 있다. <페스트>는 알베르 까뮈의 소설을 바탕으로 나름 각색을 한 다음, 서태지의 주옥같은 명곡을 이야기의 전개 가운데 집어넣고 있는 주크박스 뮤지컬. 주크박스 뮤지컬을 만듦에 있어 기억해야 할 중요한 속담이 하나 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이 말처럼 주크박스 뮤지컬은 서사와 노랫말을 이어주는 연결이 자연스러워야 관객에게 공감과 감동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런데 부실 골조공사를 한 토대 위에 지어놓은 건물에 제아무리 아름다운 샹들리에나 인테리어를 꾸민다 한들 언제 건물에 금이 갈지 모르는 것처럼, 서태지의 음악을 바탕으로 만든 <페스트>는 뮤지컬의 서사와 연출이 총체적 난국이라고 불릴 만큼의 부실 골조공사인지라 뮤지컬에서 흘러나오는 ‘너에게’나 ‘테이크 파이브’, ‘라이브 와이어’ 등 서태지의 주옥같은 명곡들이 빛을 잃고 만다.

뮤지컬 <페스트> Ⓒ스포트라이트

이 뮤지컬의 한계는 이뿐만이 아니다. 이 뮤지컬이 과연 뮤지컬인가 낭독극인가 하는 정체성의 혼란을 야기할 정도로 지나치게 대사가 많다. 5년 전 이와 비슷한 뮤지컬을 관람한 적이 있다. 뮤지컬 <미션>이다.

뮤지컬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만큼 지나치게 대사가 많은 뮤지컬이었는데 5년 만에 다시 <미션>과 같은 뮤지컬을, 그것도 창작뮤지컬로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뮤지컬은 노래로 관객에게 감흥을 주는 장르다. 그런데 <페스트>는 이런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미덕을 아는지 모르는지 노래에 비해 대사와 연기의 비중이 지나칠 정도로 많다.

무대 소품이나 배경에 대해서도 할리우드 SF 영화 <오블리비언>과 <엘리시움>의 장면이 절로 떠오를 만큼 기시감이 든다. 새로움이나 참신함은 고사하고 서태지의 명곡을 주옥처럼 꿰어놓지 못한 <페스트>는 김광석의 노래를 빛을 잃게 만들어놓은 장진의 <디셈버>가 걸었던 망작의 길을 고스란히 걷는 것 같아 심히 안타깝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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